은으로 살을 긁어 독을 뺀다? 차마 그렇게는..

김희선 입력 2015. 10. 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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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둘 여대생의 중국유학일기 23] 중국에서 경험한 의료와 약재

[오마이뉴스 김희선 기자]

저는 32살 늦깎이 중국 유학생입니다. 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올해 7월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 기자 말

 이화원 호수에 펼쳐진 연꽃
ⓒ 김희선
가을비가 내린 후로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여름만큼 따가웠던 가을 햇볕은 금세 한풀 꺾이고 제법 가을향기가 돈다. 환절기에는 면역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알레르기로 연신 재채기를 하며 콧물을 흘리는 사람이나 어김없이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이가 많다.

불행히 나는 둘 다에 해당한다. 아침에 나를 깨우는 건 알람이 아닌 코막힘에 따른 두통이다. 눈이 벌겋게 충혈 돼서 훌쩍이며 걸어가는 꼴은 좀비가 따로 없다. 감기는 연례행사처럼 절대 비켜가는 법이 없다. 약을 먹지 않으면 한 달은 고생해야 그나마 사람몰골로 돌아온다.

외국에서 아플 때만큼 난감한 경우는 없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을 때 병원에서 깨지는 돈은 깜짝 놀랄 수준이다. 장기간 체류하면서 건강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은 무척 위험한 모험이다. 물론 큰 사고 없이 지내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반드시 대비책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사고는 언제나 한순간에 찾아온다

 중국 일반 가정에서 즐겨 먹는 간식. 견과류와 과일, 사탕이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다.
ⓒ 김희선
해외에서 감기 등 가벼운 증상보다 난감한 것은 돌발 사고다. 주변 한국인 중 넘어져 이가 깨진 사람이 있었다. 타지에서 이렇게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돈과 수고가 갑절로 든다. 대부분 고국에서 치료받으려고 귀국까지 아무런 조치 없이 지낸다. 그러나, 이러면 치료 시기가 늦어져 더 애를 먹기도 한다.

한 번은 한국인 유학생이 교외로 놀러갔다. 돌아가는 길에 취기 오른 중국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흥이 오른 중국인이 자기가 차를 가져왔으니 학교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거절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탑승한 게 화근이었다.

음주운전이었던 중국인은 결국 사고를 냈고, 큰 참사를 불렀다. 중국인 몇 명은 죽기까지 했다. 다행히 한국인 사망자는 없었지만 몇 명은 큰 부상을 입어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상태가 심각해 급한 치료를 하고 한국으로 후송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가벼운 치료는 그 비용이 엄청났다. 보험이 없었던 탓에 엄청난 금액의 병원비를 청구 받았다.

학교도 발칵 뒤집혔다. 이후 유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보험에 들게 한 것은 물론 학교를 벗어날 경우 선생님에게 미리 보고해서 행선지 파악을 용이하게 할 것을 당부했다. 또한 개인 승용차에 타는 것에 대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것을 공고했다.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중국인과 타지에서 큰 사고를 당한 한국인들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사건이었다.

아프면 무조건 링거?

 약재로도 많이 쓰이는 연밥. 내가 사 먹었던 것은 떫은 맛이 났었다.
ⓒ 김희선
내가 자주 복용했던 약은 감기약과 진통제였다. 사람에 따라 필요한 약품이 다르기 때문에 자주 먹는 약을 미리 파악해 넉넉히 챙겨가는 것이 좋다. 익숙하지 않은 해외에서 아플 때 병원을 가거나 약을 구입하기란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다.

재학 중일 때 오랜 기간 한국에 가지 않아 감기약이 똑 떨어진 적이 있었다. 약학과를 다니던 중국인 친구가 약을 이것저것 가져다주었다. 한국 약이었다면 이틀이면 나았어야 했을 감기가 어찌된 일인지 일주일이 넘어도 좀체 차도가 없었다. 한 번 걸리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컨디션이 악화되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약은 떨어져가고 호전이 되질 않아 중국인 친구를 앞세워 병원을 찾았다. 빨리 낫고 싶은 마음에 주사도 맞고 전문의에게 약을 처방받을 요량이었다. 의사는 친구와 몇 마디 나누더니 링거를 맞게 했다. 콜록거리며 두어 시간 링거를 맞고 돌아왔지만 정작 감기는 며칠을 더 머물고 자연치유 되었다. 우리 돈으로 삼 만원이란 돈만 날린 채.

약을 먹지 않았더라도 자연히 나았을 시간이라 괜히 고생을 한 것이 억울했다.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니 중국인은 감기에 걸려도 약을 잘 먹지 않는다고 했다. 병원에 데려다 달란 나에게 약 대신 뜨거운 물과 휴식을 권했던 여러 중국인 친구들이 생각났다.

링거 피해자(?)는 나뿐만 아니었다. 장염에 자주 걸리는 친구도 약이 떨어져 병원을 찾았는데 나처럼 링거를 맞았다고 한다. 결과 또한 나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의 경험담도 하나 둘 터져 나왔다. 증상은 모두 달랐지만 처방은 링거로 통일됐다. 대한민국 군대에서 만병통치약으로 불렸다던 마법의 알약(?)이 이런 건가 싶었다.

중국 전통 치료법, 효과만큼은 만점

 친구가 부항을 뜨고 있다.
ⓒ 김희선
중국 양약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한방치료는 꽤 좋았다. 빨갛고 둥그런 흔적이 몸 여기저기에 새겨진 중국인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바로 부항 자국이다. 부항은 중국인들이 애용하는 한방치료 중 하나다.

어깨가 뻣뻣하게 뭉쳐서 부항을 뜨러 갔다. 작은 항아리 안에 불을 살짝 넣었다 빼고 입구를 잽싸게 등에 붙이니 살들이 항아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바로 오른쪽 어깨 쪽에 통증이 밀려왔다. 시술사가 안 좋았던 부위는 아프고 색깔이 진하게 변한다고 설명했다.

십 여분 후 항아리를 모두 떼어난 후 거울을 보니 다른 쪽은 약간 빨갛게 부어오른 정도였지만, 아팠던 부위는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확실히 뭉침이 풀려 개운했다. 중국인이 왜 흔적을 남기면서까지 애용하는지 십분 이해가 갔다. 그러나 작지 않은 자국 크기와 이 주가 흘러도 빠지지 않았던 색깔 탓에 자주 방문하지는 않았다.

은이나 옥 등으로 살갗을 긁는 '과사(刮?)'라는 치료법도 있다. 신기하게 몇 번 긁지 않아도 피부가 새빨갛게 일어난다. 어르신들은 독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시원하다며 머리나 목을 도구로 연신 긁는다. 친구가 호기롭게 나서서 시술을 받았다가 아프기만 하다고 울먹이니, 어르신 한 분이 나이를 더 먹고 다시 시도하라며 토닥여준다. 느낌이 궁금했지만 피가 비치는 피부를 보니 차마 시도할 자신이 없어 구경으로 대신했다.

앞서 말했던 장염으로 링거를 맞았던 친구는 뜻밖의 장소에서 해답을 얻었다. 치료 목적으로 안마를 하는 곳이었다. 수십 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장인이었는데 안마로 인해 손가락 끝이 개구리 손처럼 납작하게 넓어졌다고 했다. 실제로 안마를 받으면 짜릿한 전기가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장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손놀림 역시 예사가 아니어서 한 번 받으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극찬을 하던 친구는 장소를 기억하지 못해 몇 년째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재미

그렇다고 중국약이 모두 나에게 맞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한국에서 쓰던 것들이  중국에 없어서 생활 자체가 너무 불편했었다. 방법이 달라 몰랐을 뿐인데 없다며 무작정 불평을 늘어놨었다. 서서히 적응해가며 원하는 것과 맞는 것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는 재미 또한 적지 않다.

발목을 접질렸을 때 '운남백약'이라는 스프레이를 추천 받았었다. 한약 특유의 독한 냄새가 단점이었지만 효과는 '직방'이었다. 어머니가 특히 좋아하는 중국약도 있다. 자궁에 좋고 녹용으로 만든 약이다. 가격도 저렴해서 한국에 들어갈 때는 필수로 사가지고 간다.

어떤 한국 유학생은 치아 교정을 중국에서 했다.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 덕에 선택했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중국 의술을 얕봐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나도 알아봤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산한 진저우의 뒷골목.
ⓒ 김희선
여자라면 생리통으로 고생한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진통제 대신 '대추홍설탕차'를 마신다. 설탕의 한 종류인 홍설탕과 말린 대추, 생강을 같이 끓여낸 차로 자궁에 좋다고 한다. 향긋한 대추 냄새와 달콤함이 어우러져 부드럽게 넘어간다. 직접 끓여 마시기도 하지만 뜨거운 물에 간편하게 타먹을 수 있는 과립형태의 인스턴트도 많이 판매된다.

하루는 생리통으로 앓아누운 적이 있었는데 친구가 '대추홍설탕차'와 튀긴 대추를 한가득 갖다 주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대추를 오독오독 씹어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외로움을 채워준 고마운 친구 덕에 몸까지 낫는 듯했다.

오히려 한국에 오니 중국에서 손쉽게 구하던 것들이 없어 다시 불편해진다. 하지만 곧 익숙해 질 것이란 걸 안다.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때로 불편하긴 해도, 15억의 인구가 하루하루 별 탈 없이 사는 곳. 그곳이 바로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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