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 안녕하십니까] '재취업·소득' 절벽.. '치킨집' 내몰리는 50대

이우중 입력 2015. 10. 7. 19:08 수정 2015. 10. 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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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대별로 본 '행복과 불행'] 50대 은퇴자의 힘겨운 개인사업생계형 창업 생존율 16% 불과.. '치킨집' 차렸다 낭패 보기 일쑤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지난해 중소기업체에서 은퇴한 배모(57)씨는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은퇴 후 재취업의 문을 몇 차례 두드리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재직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재취업 자리는 엄두도 낼 수 없어 경력과 무관한 단순 업무직도 마다 않고 지원했지만 자신을 채용하는 곳은 없었다. 배씨는 고민 끝에 부채를 정리하고 남은 퇴직금으로 프랜차이즈 가게를 열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다.

배씨는 “주위에 먼저 은퇴하고 가게를 차린 친구들을 보면 답은 반쯤 정해져 있는 것 같다”며 “사업으로 큰 성공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주변에서 보면 퇴직금까지 날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불안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그래도 자식들이 자리 잡을 때까지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퇴직하고 닭 한 번 튀겨 볼까”…은퇴자들의 ‘묻지마 창업’

은퇴자들에게 최후의 보루로 남아 있는 창업시장은 사실상 포화상태다. 현직 경력과 무관한 분야로 무작정 뛰어들다 보니 대개는 치킨집이나 편의점 등이다. 그러다 보니 창업의 위험성이 더욱 크다는 지적이다.

7일 국세청에 따르면 2004∼2013년 개인사업자의 창업은 949만건에 달했다. 하지만 793만개 업체가 폐업해 생존율은 16.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년층의 한 구직자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자영업자의 생존율이 낮은 이유는 은퇴자들이 창업하기 쉬운 ‘레드오션’에 몰려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치킨집이다. 통계청이 최근 16개 업종에 대해 조사한 프랜차이즈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치킨전문점 수는 2만2629개로 편의점(2만5039개) 다음으로 많았다. 통계청이 집계한 ‘치킨전문점’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가맹점으로 등록된 상표만 대상으로 한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치킨전문점은 원래 표준산업분류상 피자, 햄버거와 함께 하나의 항목군으로 분류됐지만 수가 점점 늘어 지금은 치킨집만 따로 떼어내 집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치킨집까지 포함하면 3만개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치킨전문점 숫자는 10년 동안 연 평균 9.5%씩 늘어나 현재 약 3만6000개에 달한다. 이 연구소는 KB카드 개인사업자 가맹점을 상대로 치킨집 현황을 분석했다. 닭갈비, 찜닭, 삼계탕, 닭꼬치 등을 파는 곳은 제외한 숫자다.

은퇴자들마다 ‘나도 닭 한 번 튀겨 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수만개의 닭집들이 주문을 받기 위해 싸우는 TV광고가 현실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폐업률 중 치킨집, 커피전문점 등 음식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22.0%로 가장 컸다.

◆은퇴자 창업, 업종별 쏠림 막고 재취업 일자리 창출해야

50대 은퇴자들은 사업에 실패하면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게 된다. 올해 상반기 개인사업자를 상대로 한 신규대출은 51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8조7000억원)에 비해 34% 증가했다. 사업에 실패한 은퇴자들은 퇴직금만 날리는 것이 아니라 빚더미에 올라앉을 가능성도 높다는 의미다.

KB경영연구소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내수 경기 부진에 따른 자영업자의 소득 여건 악화와 은퇴 후 창업 활동 증가로 자영업자의 부채 규모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 은퇴자 창업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2013년 중소기업청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은퇴자의 82.6%가 ‘생계 유지를 위해서 자영업을 택했다’고 답했다. 어쩔 수 없이 생계형 자영업을 선택했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2007년 79.2%, 2010년 80.2%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경제학부)는 “이미 포화된 시장에 ‘나는 성공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무작정 뛰어드는 창업자가 많아서 문제”라며 “무분별한 창업자를 막기 위한 근본적 대책은 이들을 위한 재취업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재취업 일자리 창출 자체가 쉽지 않은 만큼 현실적으로는 업종 쏠림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업들이 책임지고 퇴직자들에게 은퇴 이후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며 “은퇴 1∼2년 전부터 기업에서 창업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은종 단국대 교수(경영학)는 “소상공인들이 생존 가능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도록 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처럼 힘있는 자본이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조치가 시장경제원리와 배치된다는 문제가 없지 않지만 대기업이 빵집 같은 골목 상권을 침범하는 데 대한 국민적 반감이 형성돼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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