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8만원, 성남 청년들의 희망 될까

2015. 10. 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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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성남시 내년 만 24살 1만1300여 명에게 연간 100만원 ‘청년배당’ 지급 국내 첫 시작… 이재명 시장 “청년 문제 정책적으로 해결하려면 정부도 청년배당 시행하라”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지윤(24)씨는 월 72만원을 번다. 학교 밖 청소년과 학교 부적응 청소년을 위탁교육하는 성남의 한 청소년기관에서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는 일을 맡고 있다.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계약직이다. 지윤씨는 대학 졸업장이 없다. 매일 밥을 챙겨주고, 일주일에 두 번씩 요리수업을 같이 하는 동생들은 지윤씨의 옛날 모습이다. 지윤씨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16살에 검정고시로 땄다.

고졸 검정고시 출신이 일할 곳은 ‘알바’뿐

월 72만원은 혼자 오롯이 생계를 책임지기엔 빠듯한 액수다. 따로 살고 있는 아버지에게 손 벌릴 처지는 아니다. 곧 재개발될 주택가로 집을 옮겨서 월세 방값을 월 20만원에서 10만원으로 줄이긴 했지만, 언제 집을 비워줘야 할지 모르는 불안이 추가됐다. 생활비에 쪼들리다보니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책을 사는 일상이 때론 사치처럼 느껴진다. 고졸 검정고시 출신이 한국 사회에서 일할 곳은 호프집, PC방, 편의점 등 각종 아르바이트 일자리뿐이다. 지윤씨는 일반 기업에 취업 원서를 내본 적이 없다.

“나랑 비슷한 처지의 주변 친구들은 ‘내 미래는 깜깜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아요. 돈이 없으니까 뭘 못하거든요. 뭘 배우고 싶어도 배울 시간에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처지니까….” 지윤씨는 현재 사이버대학교를 다니며 청소년 교육과정을 공부하는 중이다.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가 주목받으며 대통령이 청년희망펀드를 제안하고 직접 사재까지 털어넣는 시대지만, 청년이라고 다 같은 청년이 아니다. 학교·직업훈련·직장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 설사 취업하더라도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는 불안정 노동자 등 ‘사회 밖 청년’의 상당수는 대학에 가지 않았거나 가지 못한 청년들이다. 지윤씨와 같은 청년들에게 1년에 100만원이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진다면, 그들의 삶은 달라질 수 있을까?

이 의미 있는 실험을 성남시가 전국 최초로 시행하겠다고 나섰다(제1076호 ‘잿빛청춘’ 연속보도 ‘모든 청년에게 월 10만원을!’ 참조).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10월1일 성남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19~24살 청년들에게 연간 100만원의 ‘청년배당’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예산이 한정된 탓에 2016년 만 24살인 청년 1만1300여 명에게 우선 지급한 뒤 점차 수혜 대상자를 늘려나갈 예정이다. 성남시에는 2016년 기준으로 만 19~24살 청년 6만7천여 명(3년 이상 거주자)이 살고 있다.

‘청년배당’은 일종의 기본소득에 해당한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취지다. 재산·소득·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일정 금액이 똑같이 지급된다. 노인·여성·아동 등 다른 취약계층도 있지만 특별히 청년층에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이유를 성남시는 이렇게 설명한다. “청년의 역량이 성장하지 않으면 사회 전체의 손실로 이어진다. 기초연금이 한평생을 고생한 노인들을 위한 후배당 성격의 보상이라면, 청년배당은 앞으로 고생할 청년들에 대한 선투자 개념이다.”(성남시 ‘청년배당’ 정책 Q&A 자료 중에서)

“기초연금은 후배당, 청년배당은 선투자”

‘청년배당’ 정책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우선 내년 총선 또는 차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청년층의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명 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65살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주겠다고 약속했던 공약이 사실상 최초의 기본소득 개념을 도입한 것이었다. 여당 대통령 후보가 하면 복지고, 야당 지방자치단체장이 하면 포퓰리즘이라는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건 옳지 않다. 그리고 청년들 투표 안 한다. 표를 사기 위한 포퓰리즘이라면 청년보다 어르신들한테 투자하는 게 훨씬 효과가 크다”고 반박했다.

“기초연금이 한평생을 고생한 노인들을 위한 후배당 성격의 보상이라면, 청년배당은 앞으로 고생할 청년들에 대한 선투자 개념이다.”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 Q&A 자료

무상복지 논란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청년에게 수당을 주는 방식보다 빈곤청년에게 예산을 집중해 쏟아붓거나 청년 일자리 정책에 예산을 편성하는 편이 낫다는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실제로 청년 1인당 돌아가는 금액은 월 8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정책 목표가 생계 지원이라면 저소득층에 집중하는 게 맞다. 그러나 이 정책은 취업도 못하고 해외 이민 가고 싶고 ‘헬조선’이라고 부르며 국가를 원망하는 청년들에게 작은 희망, 작은 관심이라도 주기 위한 측면이 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수입이 없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미취업 청년들에겐 월 10만원 가까운 돈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또 청년 일자리는 지방정부 차원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산업·고용 정책을 바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정부가 노동유연화라는 명목으로 청년 일자리를 뺏고 쉽게 해고하도록 만드는 게 결국 문제 아니냐?”(이재명 성남시장)

성남시 입장에선 ‘예산’이 가장 큰 고민이다. 당장 내년부터 만 24살에게 지급할 예산 113억원가량이 필요하다. 만 19~24살 전체로 시행 대상을 늘리면 예산 규모가 670억원대로 커진다. 성남시는 추가 세금 없이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해서 기존 예산을 활용할 방침이다. 시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지급 방식도 현금이 아니라 성남 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성남사랑상품권’ 또는 ‘(가칭)성남청년카드’ 형태로 정했다. 지역경제 활성화도 동시에 꾀하겠다는 계산이다.

시의회의 심의, 보건복지부와의 협의도 난관이다. 성남시는 ‘청년배당 지급 조례안’을 지난 9월24일 입법예고했고, 주민 의견 수렴을 거쳐 11월20일 열리는 성남시의회 정례회의에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성남시의회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18명, 새누리당 의원 16명 등 34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3월 ‘공공산후조리원 설치운영 조례안’이 통과될 때 새누리당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성남시는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사회복지제도 신설에 따른 복지부와의 협의도 요청했다. 복지부는 12월 중순까지 수용, 변경·보완 뒤 수용, 불수용 등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앞서 성남시가 추진하는 공공산후조리원 협의 요청에 대해 복지부는 불수용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성남시는 최대한 복지부와 협의하되, 지자체 단독 추진도 현행법상 가능하다는 태도다.

포퓰리즘·실효성 논란, 예산 등이 ‘남은 숙제’

이재명 시장은 한 걸음 나아가 박근혜 정부가 ‘청년배당’을 국가 정책으로 채택할 것을 제안했다. “청년 문제는 성남시의 노력만으로 해소할 수 없다. 청년 문제는 청년희망펀드처럼 기부를 통한 시혜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전국의 만 24살 청년은 66만5천여 명으로 연간 100만원씩 지급하면 6600억원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시장은 이명박 정부 때 22%로 인하된 법인세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인 25%로 인상하면 연평균 4조6천억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윤씨는 성남시에서 20년 이상 거주했지만, 내년에 만 25살이라 ‘청년배당’의 수혜자가 되진 못한다. “잘돼서 동생들이라도 받으면 좋죠.” 지윤씨는 해맑게 웃었다. 월 8만원은 지윤씨 주변 청년들의 깜깜한 미래를 밝혀줄 작은 희망의 등불이다.

성남=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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