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분 먹이고, 몸 더듬어도.. 대학원생, 나는 여전히 노예다

심희정 기자 2015. 10. 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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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분 교수가 지난해 말 한 디자인 관련 행사에 참석한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나는 여전히 노예다.”

서울의 한 공과대학 박사과정 대학원생 A씨는 7일 자신의 처지를 ‘노예’에 빗대 표현했다. 조교 업무나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통장으로 들어오는 임금을 맘대로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임금은 A씨 명의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그 통장에 있는 돈을 쓰려면 교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가 근무 대가로 받은 돈은 연구실 운영비에서 구멍 나는 부분을 메우거나 다른 대학원생의 임금으로 쓰인다고 했다.

A씨는 “연구실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며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원생이 불이익을 받을까봐 여전히 부당한 대우를 참고 지낸다”고 말했다.

경희대는 지난 6일 대학원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수·학생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대학원생의 개인 존엄권과 자기 결정권, 학업 연구권, 저작권, 근로권 등을 보장하고 대학의 연구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에서다.

지난해 10월에는 카이스트가 국내 대학원 중 처음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발표했고, 같은 달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는 전국 14개 대학원 총학생회와 함께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내놨다. 지난 8월에는 서울대 인권센터가 대학원생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권리장전과 학업연구근무지침 권고안 가안을 냈다.

이처럼 국내 첫 대학원생 권리장전이 발표된 지 1년이 지났고 각 대학도 잇달아 인권선언에 동참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대학원생들은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학원생 B씨는 “권리장전은 들어본 적도 없고 실제로 처우가 좋아지지도 않았다”며 “교수한테 밉보일까봐 안 좋은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다”고 했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전국 대학원생 235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1071명(45.5%)은 언어·신체·성적 폭력, 차별, 사적노동, 저작권 편취 등 부당 처우를 당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 중 65.3%는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서’(48.9%)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43.8%) 등을 이유로 꼽았다.

학생들은 대학원생의 인권 향상을 위해서는 교수의 태도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이 인권센터를 두고 있어도 학생이 직접 상담신청을 하지 않는 이상 인권 침해를 알아채기 어렵고,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학교 차원에서는 당사자의 사과나 시정조치를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경희대 일반대학원 박진홍 총학생회장은 “강제적 장치를 마련하기에 앞서 대학원 전체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교수와 대학원생이 서로 존중하고, 지금까지의 잘못된 관행을 당연한 것이 아닌 창피한 것으로 여기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온라인 편집=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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