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에도 다잡은 노벨상 놓치고.." 물리연구소도 없는 한국

박희진 기자 입력 2015. 10. 7. 16:25 수정 2015. 10. 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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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규모 GDP 대비 세계 1위지만..일본과 중국에 기초과학연구 밀려
일본 도쿄대학의 가지타(좌) 교수와 캐나다 퀸스대학의 맥도널드 교수 © News1

(서울=뉴스1) 박희진 기자 = "챈스(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올해 노벨상 시즌의 막이 오르자마자 연일 이웃나라 일본이 '수상' 소식을 알리면서 한국은 '집단적 무기력'에 빠졌다. 국내 중성미자 분야의 독보적 권위자로 중성미자 분야에서 혁혁한 연구성과를 거두고도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는 '승전보'를 접해야 하는 김수봉 서울대 물리천문학 교수의 마음도 착찹하긴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7일 "기초과학 분야는 돈이 많이 드는 곳이라 한국은 절대적 열세"라며 "제대로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 교수는 지난 6일 중성미자 분야의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와 20년 넘게 이 분야에서 함께 연구해왔다. 지난 6일 중성미자 진동실험을 통해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김수봉 교수는 "일본은 100년 이상 과학 분야에 투자해왔고 한국은 이제 겨우 30년 가량 됐고 짧은 시간에 비해 양적인 팽창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제는 쫓아가는 것 말고,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김 교수는 해마다 노벨 시즌이 되면 3년전 중국과의 아찔했던 '연구전쟁'이 떠오른다. 한국 연구진이 중성미자 분야에서 크게 앞서 있었지만 중국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등 일사천리로 밀어붙여 노벨상 후보감으로 꼽히던 최초 연구성과를 한달 차이로 먼저 발표해 버린 일이 벌어진 것. 당시 '다잡은 노벨상을 놓쳤다'며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국내 연구팀은 100억원 가량이 투자됐지만 중국은 600억원이 투자됐고 연구인력도 60여명 수준인 국내 연구진과 달리 중국은 240여명에 달했다.

김 교수는 "당시 다 잡은 노벨상을 놓쳤다고 말이 많았지만 이후 중국은 당시 성과 이후로 2000억원을 추가로 투자받아 연구가 확대되고 있는데 한국은 1000억원 규모의 장비 건설 투자를 받겠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챈스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며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가 높지만 이내 막대한 투자를 해놓고 '성과'도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점이 한국 과학계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규모는 세계 1위다. 한국의 R&D 규모는 GDP의 4.15%에 해당하는 542억달러다. 투자규모로는 미국과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다. 정부 예산이 직접 투입되는 국가 R&D사업 규모도 18조9000억원에 이른다. 투자를 늘렸으니 '성과'에 목말라한다.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도 성과를 지적하면 위축되게 마련이고, 그 결과 연구도 단기 성과에 급급한 악순환이 반복된다. 끊이지 않는 연구비리 문제도 부담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역사도 짧다. 한국 기초과학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으로 시작됐고 실질적 투자는 80년대나 돼서야 이뤄졌다.

그 사이 100년 넘게 기초과학을 육성해온 일본은 '과학강국'이 됐다. 일본은 올해 노벨상 시즌에서 노벨 생리의학상 부문에서 수상한 데 이어 노벨 물리학상까지 벌써 '2관왕'을 달성했다. 물리학상 부문에선 지난해 '청색 LED' 개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데 이은 '2연패' 달성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과학 분야에서 총 21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3명이다. 메달 수 집계로 보면 종합순위 5위다.

특히 이번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고에너지 물리분야는 역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199명 중 55%인 107명이 고에너지 물리(입자물리·핵물리·천체물리 포함) 분야에서 배출됐다.

하지만 한국은 국립 고에너지 물리연구소도 없는 실정이다. 일본과 중국은 일본고에너지 연구소(KEK), 고에너지물리연구소(IHEP)를 각각 70년대 초반에 세웠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일본과 중국은 이미 1970년대부터 고에너지 물리연구소를 만들고 관련 연구를 키워웠다"며 "그 결실로 30∼40년 뒤에 이 분야 노벨상이 나오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지금 당장 고에너지 물리연구소를 세운다고 해도 2050년이나 돼야 노벨상 수상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R&D는 투자금액이 워낙 막대한데다 국가 주도로 이뤄지면서 R&D 예산이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좌우되고 연구비 집행 주기도 4~5년으로 이뤄지다보니
지속적인 투자가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김수봉 교수는 "남이 안해본거 해야하는데 연구비 집행이 4~5년 주기로 이뤄지다 보니 정해진 시간내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도전적인 주제는 못하고 늘 같은 것을 하게 된다"며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b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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