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일출 본 순간, 지난 여행은 잊혀졌다

노시경 입력 2015. 10. 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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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기행7] 엘승타사르하이(элсэн тасархай) 사막 기행

[오마이뉴스 노시경 기자]

▲ 엘승타사르하이 사막 초원 옆으로 살결 고운 모래사막이 펼쳐진다.
ⓒ 노시경
나는 몽골의 작은 사막지대인 엘승타사르하이(элсэн тасархай)의 신비한 모래지형을 만나러 가기로 하였다. 나는 아내, 몽골 친구와 함께 풀이 자라는 초원과 나란히 자리를 잡은 사막으로 들어갔다. '엘스'는 작은 모래 언덕을 말하는데, 사막이 없는 곳에서 온 나에게는 이 작다는 표현이 선뜻 와닿지 않았다. 내게 엘승타사르하이의 사막은 너무나 커 보이는 데다, 신비롭기까지 했다. 이 사막은 주변 초원과 조화를 이루며 한껏 멋을 내고 있었다.

사실 나는 지구의 여러 사막 중에서도 몽골 사막에 묘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아시아 여러 민족들이 넘나들었던 몽골의 사막은 나에게 역사적 상상력을 키우게 하였고, 분명히 분위기 넘치는 사막일 거라고 상상해왔다.

나는 오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이 몽골의 '자연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 모래 언덕 주변의 풍광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모래 언덕 정상에서는 가끔 모래가 바람에 흩날리며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몽골 사막을 맨발로 걸었다, 이렇게 부드럽다니

▲ 모래언덕의 장관 몽골에서는 작은 모래언덕이지만 볼수록 신기한 곳이다.
ⓒ 노시경
사막 위를 걸으니 운동화 속으로 자꾸 모래 알갱이들이 들어온다. 나는 신발을 모래 언덕의 정상에 벗어두고 맨발로 걸었다. 한낮의 태양은 모래를 데우며 작열하고 있었다. 발에 닿는 모래 표면의 감촉은 조금 뜨거웠지만, 모래 속으로 발을 파 묻어보니 표면과는 달리 시원했다. 엘승타사르하이의 모래 알갱이들은 그 어느 해변에서 느꼈던 모래보다도 부드러웠다. 마모될 일이 없는 육지의 모래가 어떻게 이렇게 고울 수가 있을까?

몽골 친구가 차 트렁크에 박혀 있던 노란색 플라스틱 썰매를 가지고 왔다. 우리나라 눈썰매장에서 타는 썰매와 똑같이 생긴 썰매다. 차 트렁크에 짐을 쌓아두는 선반인 줄 알았는데 눈썰매였던 것이다. 나는 모래언덕의 경사가 심해 썰매 타기가 부담된다는 아내를 설득해서 가장 높은 모래 언덕으로 향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의 정상까지 힘들여 올라갔다. 모래 속에 발이 자꾸 빠지니 모래 언덕을 오르는 것은 꽤 힘들었다.

모래 미끄럼을 타기 전에 사막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사막 주변에는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로도 없고, 자동차도 보이지 않으며, 사람의 기척도 없다. 모래 언덕의 정상 주변은 정말 초원과 사막만이 보이는 광활한 곳이었다. 번잡한 게 아무 것도 없는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 돌산 엘승타사르하이 사막지대에서 일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노시경
모래 언덕 위에 직접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생각보다 경사가 아주 심했다. 모래썰매를 처음 타보는 사람은 조금 겁이 날만도 한 경사였다. 나는 아내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 모래썰매의 줄을 잡아당기고 발을 모은 후 발로 땅을 박차고 모래 언덕을 내려갔다. 모래가 눈앞에서 흩날리기 시작했다. 모래썰매는 가속도가 붙으며 쏜살같이 아래로 내려갔다. 착지를 부드럽게 하기가 쉽지 않아서 나의 썰매는 바닥에 꽂히 듯이 내려앉았다. 어린 아이들이 타면 정말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드는 곳이었다.  

나는 모래 언덕 아래까지 내려간 뒤에 모래썰매가 정말 재미있다고 아내에게 크게 이야기했다. 내가 모래썰매를 타는 것을 본 아내도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내가 내려갈 때에 모래가 튀는 것을 본 아내는 낙타를 탈 때 사용했던 마스크를 얼굴에 썼다. 몸으로 하는 놀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내지만, 운동신경은 괜찮은 편이어서 썰매는 중심을 잃지 않고 평지까지 내려갔다. 아내도 한 번 타고 내려오더니 즐거운 표정이다. 모든 야외 활동은 시작하기 전까지 마음이 복잡할뿐이지, 일단 시작만 하면 즐거운 법이다.

▲ 사막 오르기. 모래언덕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상당히 힘들다.
ⓒ 노시경
▲ 사막 썰매 타기. 경사가 심한 모래언덕에서 썰매는 순식간에 평지까지 내려간다.
ⓒ 노시경
모래 언덕을 신나게 내려오다 보니 사진기 렌즈 곳곳에 모래 알갱이가 튀었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탔어야 했는데 사진을 찍으려는 욕심으로 어깨에 메고 탔다가 모래알이 렌즈 곳곳에 묻은 것이다. 나는 새로 산 렌즈 군데군데에 박힌 모래알을 하나씩하나씩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고운 모래알이었지만 새로 산 렌즈에 붙으니 큰 사탕같이 보였다.

직접 경험해 보니, 높은 모래 언덕을 걸어서 계속 올라가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여러 번 모래 언덕 정상에 올라가면 다리에 힘이 다 풀릴 것 같았다. 나와 아내는 조금 낮은 모래 언덕 쪽으로 이동하여 몇 번의 썰매를 더 즐겼다. 몽골 친구가 썰매를 타기 전에 이야기한 대로 한낮의 강한 태양이 모래 언덕 위에 이글거리는 시간에는 썰매를 오래 타기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썰매타기를 조금 더 즐기다 모래 언덕에서 철수했다.

다음날 나는 이른 새벽에 모래 언덕을 다시 찾았다. 몽골 사막에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하얀 분말가루 같이 부드러운 사막이 아침에는 어떤 모습일지, 일출 시간에 햇빛을 받은 사막의 모래 알갱이들이 다른 색깔로 보이는지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는 게르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잠든 아내를 남겨두고, 사진기만을 들고 나왔다. 초원을 가르는 바람이 얼굴에 부딪쳤다. 새벽의 하늘에도 몽골의 보름달은 밝게 떠 있었다. 새벽에도 보름달이 너무 밝았다. 지난밤에 보름달 때문에 몽골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계속 머리 속에 맴돌았다.

사막의 새벽, 모래가 백열등처럼 빛났다

▲ 사막의 일출. 게르 외에는 인간의 흔적이 없는 곳의 일출이 너무 신비하다.
ⓒ 노시경
모래 언덕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황량한 지구 한복판에 나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게르를 떠나 모래 언덕 주변의 돌산으로 향하는 길은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비현실적인 풍경들이다. 그동안의 여러 여행에서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낯선 모습이다.

나는 게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뜬금없이 우뚝 솟은 돌산에 올랐다. 내가 봐도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곳이었다. 거기엔 여지없이 몽골의 성황당, '어워'(Ovoo)가 있었다. 나는 어워를 지나 노란 이끼가 가득 낀 바위 여러 개를 올라 돌산의 정상에 올라섰다.

▲ 어워. 누가 보아도 신령스러워 보이는 이곳에 역시 나무에 두른 어워가 설치되어 있다.
ⓒ 노시경
해가 얼굴을 내밀지는 않았지만, 이미 주변은 어슴푸레 밝아 있었다. 새벽에는 주변이 먼저 밝아진 다음에 해가 솟아오른다는 사실을 어렸을 적 성산 일출봉에서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돌산 바위에 앉아 차분히 일출을 기다렸다.

잠깐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짙은 주황색의 둥그런 해가 대지 너머에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풀이 듬성등성 자라는 초원과 사막이,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초원 위에 자리한 게르 2채만이 이곳이 몽골이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했다. 주변에는 인간의 흔적이 없으니 나는 장엄한 일출을 대자연 속에서 홀로 즐기게 되었다.

몽골 초원의 아침 공기는 싱그러웠다.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날이 밝자 어디선가 날아온 새들이 지저귀고, 먹잇감을 노리는 초원의 매도 하늘 위를 맴돌고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을 안으면서 몽골의 시뻘건 태양이 초원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아침, 지구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태양이겠지만, 아무도 없는 초원에서 나는 나만의 태양을 만난 것 같은 기쁨에 빠졌다. 

돌산 아래에는 냇물로 목을 축이던 말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여러 말이 달리는 말발굽 소리는 영화에서 듣던 소리와 달리 훨씬 더 우렁찼다. 초원을 울리는 것처럼 퍼져 나왔다. 이렇게 넓은 초원에서 유목민이 기르는 말들이 자유롭게 뛰어 노는 모습이 놀라웠다.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태양의 강렬하고 깨끗한 빛이 말들의 탄탄한 어깨 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 사막의 해돋이.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주변은 새소리로 가득하다.
ⓒ 노시경
돌산 뒤편의 사막도 아침 해를 만나고 있었다. 나는 사막 쪽으로 발길을 돌리다가 신비한 색의 향연을 목격했다. 한낮의 태양 아래 이글거리기만 하던 모래가 방금 솟아오른 태양 앞에서 백열등 불빛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태양에 빛나는 모래 알갱이들은 여인의 뽀얀 살결같이 부드럽고,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모래는 마치 태양을 숭배하러 나온 신도들같이 태양 앞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느꼈던 나의 경험과 감각들은 이곳 몽골에서 망각되고, 다시 조립됐다. 초원과, 태양과, 사막은, 우주 안에서 촘촘하게 박혀 살아가는 한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큰 우주 앞에서, 온 세상을 비추는 태양 앞에서, 나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태양과 사막, 초원과 같은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몽골인들의 삶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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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5년 7월2일~9일까지의 기록입니다. 여행기는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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