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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인의 야구는 구라다] 커쇼 300K, 커브, 로맨틱, 성공적

조회수 2015. 10. 7. 09: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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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쇼 300K, 커브, 로맨틱, 성공적

비관적이었다. 그의 시즌 마지막 등판 말이다. 플레이오프 스케줄을 감안하면 허용된 투구수는 겨우 40~50개 정도였다. 그렇다면 기껏 3~4회 정도? 그 안에 대문자 K를 6개나 수집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이었다.

하지만 금새 착각이란 걸 깨달았다. 행성 최강의 병기는 이미 작정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플레이볼과 동시에 RPM을 최고치로 올렸다. 첫 타자부터 유린이 시작됐다. 1회 2개, 2회도 2개. 3회 선두타자까지 아웃 카운트 7개 중에 5개를 K로 엮었다. 수비수들 몇 명은 월차를 써도 될 것 같았다.

마지막 카운트 다운. 3회 2사후 멜빈 업튼 Jr가 희생양이 됐다. 1회에도 K를 기부했던 그는 이미 저항력을 상실했다. 공 3개로 간단히 끝났다. 관중들이 모두 일어섰다. 등번호 22번은 사자 갈기를 휘날리며 덕아웃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의 팀 감독은 낯선 광경에 놀랐다. "내가 이 팀에 온 지 5년 됐는데, 경기중에 그의 웃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엄청난 계약이 속출한다. 야구는 점점 비즈니스가 돼 간다. 효율과 경제성을 따르게 됐다. 그러면서 더 이상은 볼 수 없는 장면이 많아졌다. 300K가 그 중 하나다. 벌써 13년전. 그나마 낭만의 끝자락이 남아 있던 시기다. 랜디 존슨, 커트 실링을 추억하는 날이었다.

2층에서 반지하로 떨어지는 낙차

그가 엄청난 투수라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200이닝을 넘기며 리그를 씹어 드시던 2010~2013시즌에도 삼진 숫자는 많아봐야 250개 미만이었다(2011년 248개가 최다.) 그런데 올 들어 갑자기 생산력이 급증했다. 뭘까? 구속이 빨라졌나? 새로운 구질이 추가됐나? 아니다. 이유는 한가지다. 커브였다.

다저스 입단 당시만 해도 그의 세컨드 피치는 커브였다. 루키 시즌(2008~2009년)만 해도 포심과 커브의 투 피치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2010년 슬라이더를 본격적으로 장착하면서 오늘날의 언터처블이 됐다.

이후 그는 슬라이더에 점점 심취했다. 구사 비율이 20%를 훌쩍 넘기더니, 작년같은 경우는 29.4%로 30%에 육박했다. 반면 커브에 대한 의존도는 10% 초반대에 머물렀다. 왜? 슬라이더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그러던 그가 올 시즌 전반기 난관에 부딪혔다. 여기저기서 털리기 시작하더니, 그에게는 낯선 4점대 ERA(평균자책점)가 기록됐다. 이후 볼배합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포심(직구)의 비율이 낮아지고, 대신 커브 구사율이 높아졌다. 급기야 '슬라이더 투수'가 된 이후 가장 많은 18.2%까지 비율을 끌어올렸다.

물론 많이 던졌다는 사실만으로 분석되면 곤란하다. 그건 지상 최강의 투수를 너무 단순하게 평가하는 일이다. fangraphs.com이 PITCHf/x(투구추적시스템)을 이용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그의 커브는 괄목할 진화를 이뤘다. 특히 떨어지는 폭(zMov)에서 변화가 눈에 띈다. 예전에는 잘해야 -9.0~9.1인치(약 23㎝) 정도였는데, 올 시즌은 훨씬 커진 -10.2인치(25.1㎝)의 낙차를 보인 것이다. 이는 포심의 상승 무브먼트 +11.1인치와 견주면 플러스/마이너스 합계 21.3인치의 차이가 되는 것이다. 즉 타자 입장에서는 54㎝ 가량의 낙차를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대신 좌우 변화폭(xMov)는 2.8인치에서 1.1인치로 줄였다.

그의 커브는 특히나 좌타자에게 공포였다. 그걸 경험한 타자의 고백이다. "그건 마치 2층 위에서 땅에 있는 내 얼굴에 대고 던지는 것 같았다." 낙폭이 커진 지금은 땅이 아니고, 반지하 쯤으로 내려보냈을 것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그가 커브로 잡은 삼진의 갯수는 98개. 포심(107개)보다 조금 적고, 슬라이더(95개)보다 조금 많다. 하지만 구사한 비율로 환산하면 다른 구질에 비해 2~3배는 더 삼진에 기여한 셈이다.

얼마전 CBS SPORTS는 FanGraphs의 구종별 가치분석(the Pitchf/x pitch type values)에 따른 'RUNS SAVED(RA)'를 매겼다. 그리고 각종 스카우팅 리포트 등을 고려해 올시즌 최고의 구종을 선정했다. 여기에 의하면 그의 커브는 15.1의 RA를 얻어 리그 1위로 기록됐다. 스트라이크 넣기 가장 어려운 공이지만, 커브로 내준 볼넷이 1개도 없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게다가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 부분은 바로 피홈런이다. 이제까지 8번의 정규시즌에서 던진 커브는 모두 3천개가 넘는다. 이 중 홈런을 허용한 것은 단 3개 뿐이다. 그나마도 작년에 처음 1개를 맞았고, 올해 2개로 조금 늘어났다.

- 커쇼의 커브 관련 데이터

전설이 되기 위한 마지막 조건

하지만 난공불락일 것 같은 그의 커브에는 여전히 결정적인 유감이 남아 있다. 가을에 유난히 약했던 기억 때문이다. 2009년 리그 챔피언십 때 맷 할러데이. 지난 해 역시 NLCS 때 랜달 그리척(1차전), 맷 애덤스(4차전)에게 결정적인 한 방을 허용했다.

올해도 그는 '가을의 고전'을 앞두고 있다. <…구라다>는 이번에도 다저스와 카디널스가 1라운드를 통과해 또한번 리그 챔피언 자리를 놓고 맞붙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의 커브가 다시 한번 도전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300K는 ML 13년만의 대기록이다. 하지만 LA 팬들에게는 훨씬 까마득하다. 그들의 마지막 기억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적인 샌디 쿠팩스다. 세번이나 300K를 넘어선 그의 주무기 역시 어마 무시한 커브였다. 윌리 스타젤은 "그의 커브를 치는 건 마치 포크로 커피를 떠먹는 것과 같다"고 묘사했다.

LA는 커쇼에게서 쿠팩스의 향수를 찾으려 한다. 큰 키의 왼손잡이 백인 투수, 거기에 클래식한 커브까지…. 300K는 그 일부를 채워줬다. 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게 남았다. 반지다. 쿠팩스의 커브는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정상에 세번이나 올려놨다. 이제 커쇼가 해낼 차례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스포츠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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