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TPP에 머뭇거렸을까?

CBS노컷뉴스 장규석 기자 2015. 10. 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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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되면서 그동안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주도해왔던 우리나라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TPP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TPP가 뭐길래..

TPP의 가장 큰 특징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호주와 뉴질랜드, 멕시코, 페루, 베트남 등 12개 나라가 협정에 가입했다. 그리고 여러 나라가 하나의 통상 규범에 묶인다는 점에서 양자간 1:1 협정인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와 차별화 된다.

FTA로 보면 우리나라는 FTA 강국이다. 전세계 54개국과 FTA로 연결돼 있다. 그런데 FTA는 나라 대 나라, 즉 일대일로 협상을 해서 통상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사실 우리도 그동안 열심히 자유무역협정에 나선 결과 TPP 가입국 12개 나라 중에 일본과 멕시코를 빼고 10개 나라와는 이미 FTA가 체결이 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04년 한-칠레 FTA 이후 여기까지 오는데 10년 이상 걸렸다. 그런데 일본은 이번에 TPP에 가입하면서 단번에 미국을 포함해 12개 나라의 통상장벽을 낮췄다. 그간 관세장벽에서 열세에 놓여있던 일본이 TPP 가입으로 순식간에 우리와 대등하게 수출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다자간 무역협정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는 대표적 사례다.

게다가 TPP는 FTA와 달리 물품 뿐만 아니라 서비스, 공정거래분야, 지적재산권, 전자상거래 등 비관세 장벽에 대한 다양한 규범을 포함하고 있어서 양자간 FTA보다 한층 발전된 무역협정이라고 볼 수 있다.

◇ 미국의 통상 신(新)질서 구상과도 맞닿아

또, 이것은 미국 주도의 통상질서 확보와 연결돼 있다. 미국은 태평양으로는 TPP, 그리고 대서양을 마주보는 유럽연합(EU)과는 TPP와 유사한 TTIP로 불리는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TTP로 탄력을 받은 일본이 그간 지지부진했던 EU와의 FTA를 타결하게 되면, 미국-유럽-일본을 연결하는 거대한 자유무역지대가 생겨나게 된다. 결국 중국을 견제하고, WTO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미국 주도 통상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전략이다.

서강대 국제대학원 허윤 교수는 "미국은 미국-EU-일본의 삼각 경제공동체를 완성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되면 굳이 WTO를 통하지 않아도 된다. 오바마가 이끄는 미국의 전략은 확고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중국은 미국의 TPP에 대응하기 위해, 인도와 아세안 국가 등이 참여하는 다자간 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을 주도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다소 추동력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허 교수는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성공을 거두면서 RECP보다는 AIIB 중심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 주도의 TPP는 이번에 타결에 성공하면서 국제 신(新)통상질서로 가는 전환점으로 급부상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서는 이같은 흐름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TPP는 어떻든 참여해야 하는 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 TPP 조기 참여 왜 못했나...

사실 다자간 무역협정은 효과가 강력하지만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달라서 이를 조율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지난 2008년에 미국이 TPP 협상에 참여할 때까지만 해도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비관론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또 2013년 3월에 일본이 참여를 선언하면서 TPP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한-중 FTA 논의를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불확실성이 큰 TPP보다는 제 1교역국인 중국과의 FTA가 더 시급하다고 정부는 판단했다.

게다가 중국이 처음에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TPP에 엄청난 반감을 갖고 있었다. 이는 우리가 초창기에 TPP 참여를 선언할 수 없었던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러던 것이 2013년 6월 미-중 정상회담 직후, 중국의 입장이 한층 누그러진다. 그래서 우리 정부도 2013년 11월에서야 TTP 참가 1단계인 관심표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12개 나라가 서로 협상안을 놓고 본격 조율에 들어간 상태였다. 우리나라가 끼어들면 또 다른 이해관계자가 하나 더 생겨서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초기 협상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 TPP 발효 이후, 한국의 대응 방향은?

결국 TPP가 발효된 이후에야 우리나라는 가입을 타진할 수 있게 됐다. 이미 정해진 룰에 맞춰서 들어가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불이익은 피할 수 없다. 대신 불이익을 최소화 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일단 TPP가 타결은 됐지만 미국이나 일본 의회 내에서 여전히 반발이 큰 상황이다. 그래서 의회 비준에 시간이 걸리게 되고 결국 TPP가 발효가 되려면 적어도 2년 이상 꼬박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말인즉슨 우리에게는 아직 전략적으로 판단할 시간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TPP 가입을 조급하게 결정하기 보다는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6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재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TPP 협상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밝혔다. 협정 발효 이후에라도 참석할 수있는 길을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같은 날 미국은 우리나라와의 TPP 논의 기회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사실 중국 견제 차원에서 미국은 한국의 TPP 가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찌보면 중국과 미국사이에서 우리가 눈치를 보는 입장이지만, 거꾸로 우리는 두 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인 위치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김영귀 지역무역협정팀장은 "장기적으로는 우리도 새로운 질서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정치 외교적 의미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경제적 실익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일단 세부적인 TPP 협상 문안이 나오는대로, TPP가 기존에 우리가 미국과 맺은 한-미 FTA와 비교해서 더 강력한 조치가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려서, 최대한 우리 국익에 맞게 협상 전략을 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또 농업이나 일부 서비스 분야 등 TPP 가입으로 피해를 보게 되는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조정하기 위한 국내의 정치적 역량 또한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CBS노컷뉴스 장규석 기자] haho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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