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의 함정]① '잘못 끼운 첫 단추'..입지·임대료 논란에, 서민·중산층 빠져

이진혁 기자 2015. 10. 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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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열린 1호 뉴스테이 ‘e편한세상 도화’ 착공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입주 예정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8월말 인천 남구 도화동에 문을 연 뉴스테이 ‘e편한세상 도화’ 견본주택에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대림산업 제공

정부가 중산층의 주거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꺼내 든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사업 추진에 팔을 걷어부쳤다. 하지만 비싼 임대료와 낙후된 입지 탓에 정작 주 수요층인 중산층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란 평가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민간사업자에게 과도한 특혜를 준다는 비판까지 나오면서 뉴스테이 정책의 당초 취지마저 흔들리고 있다. 뉴스테이는 과연 무주택 세입자들의 전월세난을 해결하고 중산층의 주거 혁신을 이끌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조선비즈가 뉴스테이 정책의 겉과 속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1호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인 ‘e편한세상 도화’가 들어서는 인천 남구 도화지구. 지난달 17일 열린 착공식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뉴스테이 사업이 앞으로 장기적·안정적 거주가 가능한 민간 임대주택 공급을 늘려 중산층 주거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중산층 주거안정의 해법으로 꺼내 든 뉴스테이 정책에 힘을 보태기 위해 박 대통령이 착공식에 직접 참석하는 이례적인 모습까지 보였다.

9월 말에는 국토교통부가 뉴스테이 사업 활성화를 위한 전담부서를 마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에는 주택국 주택정책과에 태스크포스(TF) 형태로 있었던 뉴스테이지원센터를 뉴스테이단으로 바꿔 조직을 확대·개편한다는 내용이었다. 업계는 정부가 뉴스테이 정책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봤다.

정부가 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해 올 1월 발표한 뉴스테이 정책. 이미 1호 사업장은 입주자를 모집했고 연말까지 1만4000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 하에 야심차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수요자와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월세 전환 가속화라는 시대 흐름과 중산층 주거 안정이라는 목표를 잡기에 역부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뉴스테이 사업이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말한다.

◆ 중산층 없는 중산층 주거안정 대책

뉴스테이 사업은 정부가 그동안 해오던 임대주택 공급 역할을 민간 업체에 맡긴 것이다. 입주 대상을 중산층으로 정했다는 점에서도 국민임대주택과 차이가 있다. 월세 비중이 늘면서 중산층의 주거 부담이 커지자, 정부가 임대료 상승 폭(연 5% 이내)을 정해 8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중산층 임대주택’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건설 부동산 업계는 수요자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문제점이 많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중산층의 주거 특성을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정책을 내놨다는 것이다.

가장 문제점으로 떠오른 것은 입지였다. 중산층의 경우 생활·교통·교육 환경 등 주변 입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뉴스테이 사업지는 사업성이 좋지 않아 개발을 미뤄뒀던 지역이 많다.

서울 중구 신당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수도권 택지개발지구에 사업지가 있어 주변 인프라가 갖춰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곳들이다.

1호 뉴스테이 사업장인 도화지구도 인천대의 송도 이전으로 상권이 침체된지 오래다. 정책을 서둘러 준비하다 보니 중산층을 끌어들일 만한 입지를 확보하는 데 사실상 실패한 셈이었다.

이 때문에 뉴스테이에 관심을 뒀다가 청약에 나서지 않은 소비자도 있다. 직장인 김승훈(32)씨는 “인천 도화지구 뉴스테이는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해 청약하려 했으나 서울에 직장이 있는 상황에서는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고가 임대료도 문제가 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희국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서울 용산구의 경우 전용면적 84㎡가 보증금 7000만원, 월세 186만원으로 책정됐다. 무주택 서민들이 입주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영등포구 문래동 롯데푸드 공장 부지는 전용면적 84㎡가 보증금 1억원, 월세 119만원으로 산정됐다. 경기도 위례, 동탄, 김포한강신도시 전용면적 84㎡도 보증금 3000만~1억원, 월세 77만~94만원이라는 가격이 나왔다. 중소득층인 소득분위 5~8분위의 월 소득이 292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임대료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이 나올 만 하다.

뉴스테이 참여 업체들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임대료 연간 상승률인 5%를 계속 유지할 경우 주변 시세보다 비싸질 수 있고, 기업이 이사나 청소, 유지보수 등을 하는 뉴스테이의 특성상 서비스 요금까지 더해져 오히려 월세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김재언 KDB대우증권 부동산세무팀장은 “임대주택이라는 특성상 수요자들 사이에서 웬만하면 임대료가 부담스럽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초기 임대료 규제가 없기 때문에 뉴스테이에 대한 진입 장벽을 지금보다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건설사 챙겨주기 비판도

뉴스테이 정책이 건설사의 먹을거리를 챙겨주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정부는 뉴스테이 사업자를 모집하기 위해 임대료 상승률과 의무임대기간(8년)을 제외하고 규제는 웬만하면 다 풀었다. 민간 임대사업자에게 택지를 공급하고, 건설촉진지구 도입으로 개발 절차를 2년에서 1년으로 앞당겼다. 용적률 상향 등의 인센티브도 제공하는 한편, 기업형 임대 리츠에 대한 융자금리 인하, 대출한도 상향, 국민주택기금 출자 등의 지원책도 제공했다. 이 때문에 뉴스테이 사업 진출에 회의적이었던 대형 건설사도 최근에는 잇따라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업성이 있다면 정부가 가만히 있어도 민간사업자들이 알아서 뛰어들 수밖에 없고,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시장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옳은데, 정작 정부가 나서 민간사업자에게 먹을거리를 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뉴스테이 사업장 중 다수가 애초 민간 건설사들이 분양사업을 하려다 사업성이 낮아 내버려둔 곳이 많다고 보고 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뉴스테이를 운영하는 동안 현금을 받을 수 있고, 8년 뒤 분양으로 전환하는 만큼 자본 차익도 거둘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특혜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한화건설이 시공하는 수원 권선 꿈에그린 뉴스테이의 경우 단지 인근에 공군 비행장이 이전할 예정인데다 주변에 다른 아파트 단지들이 개발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또, 2017년 개통 예정인 수인선 봉담역, 고색역과 지하철 1호선 수원역과도 거리가 멀어 교통이나 주거환경이 좋지 않아 사업성 문제로 분양사업이 중단됐던 곳이다.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국책감시팀 부장은 “자체 조사 결과 대한주택보증에서 책정된 건축비가 실제보다 비싸게 책정돼 있고, 토지 역시 헐값에 계약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민간 사업자들이 5~6%의 수익률보다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정부가 주력 사업으로 추진하려는 상황에서 투자자나 건설사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양쪽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공급자 위주의 지원을 쏟아낸 측면이 있다”며 “뉴스테이는 분명 공공성을 가진 민간 임대주택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임차인을 위해 질적인 상품 개선, 주거비용 절감, 주거환경 개선 등의 원칙을 갖고 운영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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