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찌뿌둥해도 '물리치료'.. 실손보험은 골병
출판사에 다니는 오모(39)씨는 얼마 전부터 어깨가 아파 정형외과에 갔다가 의사에게 도수(徒手) 치료를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다. 도수 치료란 맨손으로 하는 통증 치료인데, 일반적인 물리치료보다 효과가 좋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의사 진료 후 만난 병원 상담 실장은 도수 치료 가격이 1회에 10만원이지만, 오씨가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의료비를 실비로 돌려주는 보험)을 통해 90%를 돌려받을 수 있으니 1만원만 내라고 했다. 오씨는 "실손보험에 가입하고 그동안 병원에서 큰돈을 쓴 적이 없는데 도수 치료 몇 번만 받으면 그동안 낸 보험료 본전을 뽑을 수 있겠다 싶었다"며 "당분간 매주 한 번씩 도수 치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수 치료는 건강보험에서는 보장하지 않는 이른바 '비급여 항목'인데 실손보험으론 보장된다. 예전엔 자동차 사고 등으로 허리나 목이 많이 아픈 사람들이 주로 도수 치료를 받았는데, '실손보험 있으면 싸게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목·어깨가 뭉친 직장인 등이 많이 찾고 있다.
◇도수 치료 때문에 실손보험이 운다
도수 치료는 이전까지 급여 항목이었다가 2006년 비급여 항목으로 전환됐다. 현재 병원이 마음대로 진료비를 정할 수 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정형외과·신경외과·재활의학과 등에서 회당 치료비가 10만~20만원, 많게는 30만원 정도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도수 치료가 물리치료보다 몇천원 정도 비싼 8000원 선이었는데 비급여로 분리된 후 도수 치료만 가격이 올라 비싼 치료가 됐다"고 말했다.
흔히 물리치료라 불리는 복합운동 치료는 지난 10년 사이 가격이 5660원에서 6619~7035원으로 최대 24% 올랐다. 반면 도수 치료는 2004년 8490원(당시 건강보험 수가) 수준에서 현재는 10만~20만원을 받는 병원이 많아졌다. 진료비가 최대 2200% 상승한 것이다. 한방의 비슷한 치료인 추나(推拿)요법(실손보험 비보장)이 1회당 3만~5만원 정도인 것과 비교해도 도수 치료비는 매우 비싸다.
실손보험의 통원 치료 한도가 25만원 정도라는 점을 감안해 한도가 보통 2000만~3000만원인 입원 치료를 권하는 경우도 있다. 하이힐을 신고 가다 발목을 삐끗한 자영업자 김모(37)씨는 정형외과를 찾았다가 입원을 권유받고 36일 동안 입원해 하루에 3번꼴로 모두 108번의 도수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비급여 진료비는 약 1053만원이 나왔고, 김씨는 전액을 실손보험으로 돌려받았다.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17일 동안 입원해 매일 20만원짜리 도수 치료만 2번 정도씩 받고 628만원을 실손보험으로 받아간 사례도 있다.
◇실손보험금 청구 30%가 정형외과… 업계 "비급여 관리 시급"
비급여 항목인 도수 치료는 진료비 파악을 위한 '코드'가 없어 도수 치료로 나간 보험금을 정확하게 측정할 길이 없다.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때 진료비가 10만원 이하면 진단서가 필요 없고, 이 금액이 넘어가도 진단서에는 '척추측만증' '만성 염좌' 등 증상과 치료법만 적으면 된다.
보험 업계에 따르면 청구된 실손보험금 중 정형외과가 차지하는 비중(2014년 기준)이 28.5%로 모든 진료 과목 중에 가장 높다. 반면 건강보험에서는 내과(31.3%)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고 정형외과는 7.6%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실손보험 손해율(거둔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료 비율)이 120%를 넘어서고 있는데, 특히 회당 10만원이 넘는 비싼 도수 치료가 주범(主犯)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잉 도수 치료는 보험회사의 손해에 그치지 않고 실손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선량한 가입자들의 부담으로 전이된다. 자동차보험과 달리, 실손보험은 지급된 보험금 전체를 기준으로 모든 가입자의 보험료가 올라가거나 내려가기 때문이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도수 치료 남발로 인한 보험금 누수와 보험료 인상을 막기 위해선 비급여 진료비의 관리와 통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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