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노는 키즈카페 3곳 중 1곳 술 판다는데..
지난 4일 저녁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로 북적인 서울의 한 키즈카페(kids cafe). 몇몇 테이블 위에는 소시지 등 안줏거리와 함께 500㏄ 생맥주 잔들이 올려져 있었다. 미끄럼틀 옆 테이블에 앉은 부모들은 이미 생맥주 8잔 이상을 비운 상태였다. 키즈카페 관계자는 "손님 중 10~20%는 맥주를 꼭 시킨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이곳을 찾은 주부 강모(30)씨는 "아이들이 뛰어노는데 옆에선 술 마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얼굴을 찡그렸다.
어린이 실내 놀이터와 부모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가 결합한 게 키즈카페다. 그런 키즈카페에서 술을 판매해 일부 부모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3월 전국 366개 키즈카페 실태 조사를 했더니 116곳(32%)에서 술을 파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116곳 모두 맥주를 팔았고, 8곳은 소주를, 2곳은 와인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키즈카페에서 술을 파는 것은 부모들의 요구 때문이다. 서울 강북의 한 키즈카페 매니저는 "아이들 생일파티라도 할라치면 부모들은 사실상 몇 시간 동안 할 게 없다. 전화로 '맥주 파느냐'부터 물어보는 손님들도 많다"고 했다. 인천에서 지난해 키즈카페를 개업한 김모(42)씨는 "개업할 때 인테리어 업자가 '요샌 키즈카페에도 맥주 정도는 기본'이라고 해 생맥주 기계를 들여놨다"며 "술 안 파는 키즈카페에선 가방 안에 캔맥주를 숨겨와 컵에 몰래 따라 먹는 부모도 적지 않다"고 했다.
키즈카페에서 술을 파는 게 불법은 아니다. 키즈카페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휴게음식점'이나 '일반음식점'으로 업종 신고를 하게 돼 있는데, 식품위생법상 일반음식점은 주류를 판매할 수 있다. 주류를 판매할 수 없는 휴게음식점으로 신고한 일부 키즈카페도 "왜 술을 팔지 않느냐"는 일부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일반음식점으로 바꾸는 추세다.
시민들 의견은 엇갈린다. 3세 아이를 둔 설모(31)씨는 "부모는 뛰어노는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가볍게 한두 잔이라고는 하지만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 잔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실제 술 파는 키즈카페엔 "어른들이 술 마시는 모습이 아이들 교육에도 좋지 않다. 다른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술 판매를 제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가 종종 들어온다.
반론도 만만찮다. 다섯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주부 이모(31)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친구들과 맘 편히 맥주 한잔할 곳이 없다. 술집에 아이를 데려갈 수도 없고 아이를 맡기기도 마땅찮다"고 했다. 두 살배기 딸을 키우는 주부 윤모(28)씨는 "아이를 동반한 손님을 받지 않는 '노키즈존' 카페들이 늘어 갈 곳이 점점 없어지는데 아이와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맥주 한잔 못 마시게 하는 것은 너무 심한 것 같다"고 했다.
새누리당 김제식 의원은 지난해 11월 키즈카페에서 술 판매를 금지하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키즈카페에서 부모의 음주 행위는 아이들의 건전한 놀이 분위기를 저해하고 안전사고가 났을 때 적절히 대처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소관 부처인 식약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키즈카페 운영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키즈카페로 봐야 할지, 일반 식당으로 봐야 할지 애매한 형태의 업소도 늘고 있다. 아이를 맘 놓고 맡길 곳이 없자 일부 일반 식당도 매장에 놀이시설을 만드는 추세다. 지난달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어린이 놀이시설을 갖춘 레스토랑을 연 김모(37)씨는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을 맘 놓고 맡길 곳이 없다는 생각에 놀이 공간을 갖춘 가게를 오픈했다"고 했다.
식약처는 오는 12일부터 20일까지 전국 키즈카페의 식품 안전을 일제 점검하기로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술 판매 금지를 법제화하는 것은 현실적 어려움이 많지만, 술 마시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보이는 지금 상태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계도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키즈카페(kids cafe)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실내 놀이터를 갖추고 부모들이 음료 등을 마시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카페. 식품위생법상 일반음식점이나 휴게음식점으로 분류된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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