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日 국회·정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

유석재 기자 입력 2015. 10.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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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학회·독도연구보전協 학술대회

동해상에 일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이 울릉도 동쪽을 통과하는 지도가 있다. 국경선은 독도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꺾여 반원 형태를 이룬다.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지도는 지난해 공개된 '일본영역참고도(日本領域參考圖)'로, 1951년 8월 일본 정부가 제작했다.

8일 오후 1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독도학회와 독도연구보전협회의 학술대회 '일본 아베 정권의 독도 침탈정책 강화 추세와 한국 독도 영유권의 명증(明證)'이 열린다. 발표자 중 한 사람인 정태만 독도연구포럼 대표는 '일본영역참고도'가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일본영역참고도'는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조약 조인 직전에 만들어졌으며, 조약 비준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이 지도를 조약의 부속 지도로서 국회에 제출했다. 일본 국회 또한 이 지도를 부속 지도로 해서 조약을 승인했다. 정 대표는 "일본 정부와 국회 모두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발표자인 김수희 영남대 독도연구소 교수는 1905년 일본 정부가 독도를 침탈할 당시의 논리인 '무주지(無主地·임자 없는 땅) 선점론'이 이미 1876년부터 '울릉도 침략' 움직임과 함께 시작됐음을 밝힌다. 당시 일본인 무토 헤이가쿠(武藤平學)는 송도(松島)란 섬을 개척하자는 안건을 일본 외무성에 제출했는데, '송도'는 다름아닌 울릉도였다. 외무성은 이 안건을 보류했지만, 이를 계기로 해군 제독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가 1878년 군함까지 동원해 울릉도에 침입했다. 만국공법상 무주지에서 3년을 거주한 뒤 거주자의 국가가 '영유'를 선언하면 그 나라 땅이 된다는 것을 노렸기 때문이다. 이 침입은 3년 만에 조선 정부에 발각돼 실패했으나 이후 독도 침탈의 논리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박현진 국제해양법학회 이사, 유하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발표자로,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나선다. 문의 (02)880-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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