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보다 먼저 공개된 일본 영화들..'핑크와 그레이'·'라이치 히카리 클럽' [20회 BIFF]

라효진 기자 입력 2015. 10. 7. 01:26 수정 2015. 10. 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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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핑크와 그레이’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라이치 히카리 클럽’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20돌을 맞은 BIFF에는 예년만큼 풍성한 영화들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너는 착한 아이’ ‘해안가로의 여행’ ‘핑크와 그레이’ ‘극장령’ ‘라이치 히카리 클럽’ ‘모두가 초능력자’ 등 옆나라 일본의 재기발랄한 영화들이 다수 초청돼 영화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죠. 일본에서보다 먼저 공개된 일본 영화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영화 두 편을 꼽아 봤습니다.

色이 다른 영화, ‘핑크와 그레이’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신작 ‘핑크와 그레이’는 이 영화는 일본 아이돌 뉴스의 멤버 카토 시게아키가 지난 2012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뉴스의 소속사 후배인 아이돌 헤이 세이 점프의 나카지마 유토와 떠오르는 개성파 배우 스다 마사키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나카지마 유토는 후일 인기 연예인 시라키 렝고라는 예명을 쓰는 스즈키 싱고, 스다 마사키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좀처럼 뜨지 못하는 배우 가와다 다이키 역할입니다. 카호는 이 두 사람의 첫사랑 샐리로 분했죠.

영화는 세 사람의 어린 시절 행복한 한때부터 출발합니다. 다이키와 싱고는 배우를 꿈꾸며 무작정 상경하고, 샐리는 미대에 진학합니다. 훤칠한 외모의 싱고가 점점 주목받는 한편 다이키에게는 ‘한 방’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죠. 그러던 중 다이키와 싱고는 동창회에서 톱스타와 별 볼일 없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동창회에서 서먹한 재회를 하고 비로소 묵은 앙금을 털어냅니다. 싱고는 회포를 더 풀어 보자며 다이키를 자신의 고급 맨션으로 초대합니다. 다이키는 예전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싱고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싱고는 각기 다른 6통의 유서를 남긴 채 싸늘한 시신이 되어 다이키를 맞이하죠.

이처럼 세 소꿉친구의 사연이 차곡차곡 쌓이며 싱고의 자살은 관객들에게 더욱 극적으로 다가갑니다. 원작 ‘핑크와 그레이’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나 영화 ‘핑크와 그레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유키사다 감독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뒷부분은 흑백 화면으로 처리됐습니다. 건조한 화면의 색채 덕에 드라마는 오히려 강렬해지죠. 나카지마 유토의 파격적 베드신에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할 반전도 있습니다. 거기에 청춘의 공허함을 잘 담은 OST까지 이 영화를 빛냅니다.

유키사다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며 “한국에서도 개봉할 수 있도록 영화가 마음에 드신다면 SNS 등지에 감상을 적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핑크와 그레이’, 한국에서 정식 개봉된다면 반드시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새빨간 선혈과 새하얀 리치의 대비, ‘라이치 히카리 클럽’

우리나라에서는 ‘리치’라고 부르는 과일을 일본에서는 ‘라이치’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모인 중학생들의 이야기 ‘라이치 히카리 클럽’에서는 미의 상징을 과일 리치로 여깁니다. 어두운 색의 껍질 속에 달콤하고 매끈한 과육이 담긴 것이, 이들이 동경하는 은밀한 순수를 느끼게 합니다.

공장, 굴뚝, 그을음뿐인 황폐한 마을에서 결성된 비밀 결사 ‘라이치 히카리 클럽’에서는 두목 제라(후루카와 유우키 분)의 지휘 아래 리치를 동력으로 하는 인공지능 기계, ‘라이치’를 만들어냅니다. 이들은 그 전부터 추잡하다고 경멸해 온 어른들을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하곤 했죠. ‘라이치’는 제라의 기준에 부합하는 미소녀를 이들의 아지트에 강제로 끌고 오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라이치에게 잡혀온 미소녀는 서면 작약, 앉으면 모란, 걸으면 백합이라는 말이 꼭 맞는 아름다움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결코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죠. 그녀가 마음을 여는 대상은 오로지 기계 라이치입니다. 또 라이치는 소녀를 통해서 입력된 적 없던 희노애락을 배워 갑니다. 사실 낯선 존재가 인간을 만나 감성을 얻게 되는 이야기는 숱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 가운데서도 유독 그로테스크한 배경에서 펼쳐지죠. 때문에 기계와 인간 사이에 싹튼 애정은 더욱 강하고 깊숙이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듭니다.

이 영화는 미소녀와 라이치가 절대미를 추구하는 제라에 맞서는 과정을 전체 내러티브의 주요 골자로 합니다. 제라의 “라이치, 라 라이치, 라 라 라이치”라는 대사가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죠. 하지만 그 외에 8명의 중학생들에게도 사연은 얽혀 있습니다. 이를 따라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를테면 제라와 쟈이보(마미야 쇼타로 분)의 야릇한 관계, 세 소꿉친구 타미야(노무라 슈헤이 분)·카네다(후지와라 키세츠)·다프(마사키 레이야)의 눈물 대신 피가 솟는 우정과 같은 이야기들이죠.

‘선생을 유산시키는 모임’ ‘퍼즐’ 등 컬트적 영화로 정평이 나 있는 감독 나이토 에이스케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만화가 후루야 우사마루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1980년대 극단 도쿄 그랑기뇰이 상연한 연극이 최초의 뿌리죠. 워낙 역사도 오래 됐고 인기가 많은 연극인지라 마니아들의 우려도 컸을 터입니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할 듯합니다. 우선 새빨간 선혈과 새하얀 리치의 속살이 대비되는 등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영화 미술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후루카와 유우키의 오만한 독재자 연기도 압권이죠. 다만, 피가 많이 튀는 영화이니 노약자는 관람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라효진 기자 surplu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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