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목욕은 친척집서.."물 마르니 인심도 말라"

권순재 기자 2015. 10. 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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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타는 충남 르포

가을 가뭄이 전국을 태우고 있다. 특히 충남 서북부지역의 상황은 심각하다. 광역상수원인 보령댐이 가뭄으로 고갈될 위기에 놓이면서 이달부터 주변 지역 주민 등을 대상으로 제한급수가 시작됐다. 광역상수원의 고갈 위기로 제한급수가 진행되는 것은 2009년 강원 광동댐에 이어 두 번째다.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일부 마을에선 생활용수 확보 대란이 벌어졌다.

6일 오전 충남 보령시 미산면 도화담리 보령댐 상류는 계속된 가뭄에 바닥이 말라 갈라져 있었다. 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수몰 전 마을 도로와 집터 등이 고대 유적지처럼 드러나 있었다. 바닥에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했던 어망이 뒹굴었고, 물에 잠겨 있던 나무는 공룡 화석처럼 기이한 모습이었다. 미산면 용수리 보령댐 용수로(남는 물을 방류하는 수로) 주변도 낮아진 수위에 바닥 일부분이 드러나 있었다. 댐 가장자리에서 물고기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산과 물이 만났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에는 마른 풀들만이 그 경계를 대신하고 있었다.

언제 비 오려나… 중부지방이 사상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올봄부터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은 중부 내륙지역은 식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6일 충남 보령댐의 저수율이 20%대로 떨어지면서 댐 상류가 개천의 모습으로 변했다. 보령댐은 8일부터 8개 자치단체에 제한급수를 시작한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보령댐 저수율은 이날 현재 22.3%다. 이는 보령댐에 물을 채운 1998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홍국표 한국수자원공사 보령권관리단 대리는 “보령댐 상류는 지난 8월부터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보령댐 수위가 하루 평균 7∼8㎝ 정도 내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한급수를 실시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남은 사용량을 예측하면 내년 3월 정도까지만 용수를 공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령댐은 보령·서산·당진·서천·청양·홍성·예산·태안 등 8개 시·군에 하루 20만t의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현재 저수량은 2610만t이다.

국토교통부는 한국수자원공사, 충남도와 협의해 8월18일 보령댐 경보 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높였다. 경보 단계는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4단계로 나뉜다. 8개 시·군은 1~7일 각 가정 등에 보내는 용수 공급량을 줄이는 제한급수 적응훈련을 하고 있다. 이들 시·군은 8일부터 가뭄이 해소될 때까지 시·군별로 생활용수 감축 목표를 설정한 뒤 용수 공급량을 조금씩 줄여 하루 최대 20%까지 감축하는 방식의 제한급수를 실시한다.

계속된 가뭄으로 상수도시설이 부족한 마을의 고충은 더 심해지고 있다. 6일 오후 태안군 소원면 의항3리. 전체 72가구 중 40가구에만 상수도가 보급돼 나머지 32가구는 지하수에 의존해 살고 있다. 하지만 지하수는 지난 3월부터 이미 고갈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임시방편으로 인근 400m 거리에 있는 송현저수지에서 물을 길어와 빨래 등을 했지만 최근 저수지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지하수가 고갈된 가정은 아직 지하수가 남아 있거나 상수도시설을 갖춘 이웃에 물을 빌려 써왔다. 하지만 이달부터 제한급수가 시작되면서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우리집도 제한급수 때문에 넉넉지 않다” “수도요금이 많이 나와 어렵다”는 이유로 물을 주지 않는 등 인심이 팍팍해진 것이다. 현재 지하수가 고갈된 주민은 마실 물을 외부에서 구입하고 있다. 빨래나 목욕은 인근의 친척집 등을 방문해 해결한다. 이완섭 의항3리 이장은 “40년 넘게 이 마을에서 살아왔지만 지하수와 저수지가 모두 고갈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물이 마르니 인심도 말라 마을 분위기가 좋지 않고 서로 싸우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 상당수가 70∼80대인데 빨래나 목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전염병이 돌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보령댐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내년 2월까지 금강 백제보 하류의 부여대교∼국도 40호선∼보령댐 상류를 잇는 길이 21㎞의 관로를 설치해 하루 11만5000t의 용수를 보령댐에 공급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허승욱 충남도 정무부지사는 “해당 관로 공사를 위해서는 예비타당성 조사, 환경영향평가 등 17개에 달하는 인·허가 문제가 있다”며 정부의 특별 지원을 요청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한강수계인 소양강·충주댐을 비롯해 전국 9개 주요 취수원 댐의 수위는 역대 최저순위 1~3위로 파악됐다.

<권순재 기자 sj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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