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일째 농성..쫓겨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글·사진 백승목 기자 입력 2015. 10. 6.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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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현실화 요구, 용역업체 거부로 일자리 잃어 분통

‘청소 못한 날 478일째.’

6일 오후 울산 동구 울산과학대 정문 앞. 10㎡ 남짓한 천막 안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8명의 청소노동자들이 “임금을 현실화하고 일자리를 보장하라”며 항의농성을 하고 있었다. 천막 옆에는 농성일수를 알리는 작은 푯말이 보였다. 1년3개월을 넘기고 있었다. 오순남씨(60)는 “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도록 15년 동안 열심히 청소를 했다”면서 “임금 몇푼 올려달라고 한 것뿐인데, 아예 일자리를 빼앗아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농성 중인 청소노동자들은 여성 6명과 남성 2명. 평균 나이는 63세이다. 처음 농성을 시작할 때 이들을 고용한 청소용역업체 소속 동료 20여명이 동참했지만, 농성기간이 길어지면서 하나 둘씩 살길을 찾아 떠났다. 한 여성 농성자는 “학교 측이 대학 시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통제해 멀리 떨어진 상가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과학대 청소용역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들이 지난 7월20일 대학에서 쫓겨난 뒤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학교정문 옆 천막농성장.

대학 정문 앞 왕복 2차로의 진입로에는 흰색 실선이 가로질러 그어져 있었다. 대학 측이 학교 소유 부지 경계선을 측량해 학교 부지 안에서는 농성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농성 여건이 열악하지만, 농성자들의 얼굴에는 ‘끝까지 해보자’는 듯 지친 표정이 별로 없어 보였다. 청소노동자들이 처음부터 대학 문밖에서 농성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청소용역업체가 임금 현실화를 외면하자 대학 측이 해결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지난해 6월16일부터 대학본관 내부와 건물 앞뒤쪽에서 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는 대학의 요청에 따라 법원이 퇴거명령을 하면서 농성자들은 결국 지난 7월20일 학교 밖으로 쫓겨났다. 이 과정에서 대학본관 내부에서 농성을 한 노동자들에게는 1인당 660만원의 강제이행금이 부과됐다.

농성자들의 요구는 애초 시급 5210원을 7910원으로 2700원 인상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소속 청소용역업체와 교섭하는 과정에서 790원 올린 시급 6000원으로 낮춰 요구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성자들은 “기존의 시급으로는 한 달 평균수입이 108만원 정도여서 생활이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대학 측은 지난 6월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했던 청소용역업체 2곳과 계약을 해지하고, 새 업체와 계약했다. 농성자들의 고용승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김순자 민주연대노조 울산과학대지부장은 “청소용역업체가 2~3년마다 바뀌었지만 고용승계가 안된 적은 없다”면서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대학 측이 탄압했다”고 밀했다. 대학 측은 “농성자들의 불법행위에 정당한 법적 대응을 했다”면서 “새 용역업체가 선정되고 입사설명회를 열었지만, 농성자들은 원하는 조건이 아니라며 취업지원을 하지 않아 고용승계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백승목 기자 smbae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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