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낯선 남자가 문을 두드렸다

김나은 입력 2015. 10. 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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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도둑들] 순간 느낀 공포감.. 복도를 서성거리던 그 사람

[오마이뉴스 김나은 기자]

 한밤의 객-1602호
ⓒ 김나은
똑똑똑.

오전 3시, 알 수 없는 사람이 현관문을 두드릴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그날은 잠이 오지 않던 금요일 새벽이었다. 나는 소파에 기대 VOD 서비스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조디악>을 보고 있었다. 집에는 나 혼자였고, 밤은 어둡고 깊었다.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데, '똑똑똑'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노크 소리였기에 전혀 상관없는 화면이었음에도 노크 소리를 영화 속 소리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렸다. 똑, 똑, 똑. 영화는 조디악이 호숫가에서 남자와 여자를 묶고 칼로 난자하는 장면으로 채워지고 있었고, 의문의 손이 현관문을 두드렸으며, 나는 나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있음을 느꼈다.

여자 혼자 있는 집의 문을 두드리는 이 남자

"누구세요?"

싸한 기분에 영화를 멈추고 물었다. 문 건너의 사람은 대답이 없었다. 묘하고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새벽, 가족들이 없는 집에서 알 수 없는 사람과 문 하나를 두고 흐르는 정적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초인종이 아닌 노크 소리는 얼마나 묘한 것인가. 나는 누구인지 한 번 더 물음으로, 침묵을 깼다. 누구세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인터폰 모니터를 확인했다.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인터폰 가까이에 몸을 대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남자였다.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렸다.

'모니터를 켠 것을 알았을까?'

인터폰의 모니터를 껐다.

'대답해야 하나? 저 남자는 누구지? 여자 목소리인데, 괜히 소리를 냈나? 나 혼자인 걸 알았을까?'

여러 의문과 그간 뉴스를 채웠던 범죄들이 떠올라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든 해야만 했다.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나는 현관문으로 가 도어락 외의 모든 잠금장치를 걸면서 남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누구세요. 대답하지 않으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대답이 들렸다.

"경진이네 집, 아닌가요?"

경진. 내 주변의 그 누구도 경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아닙니다."

아니라는 말에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움직이는 기척이라든가 승강기가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었다. 남자는 여전히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나 역시 가만히 서서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남자와 내가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남자가 승강기 버튼을 눌렀는지, 땡-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복도는 비어 있었다.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남자가 완전히 떠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베란다로 가서 아파트 입구를 내려다보았다.

깊고 짙은 어둠 속에서도 아파트 입구는 선명히 보였다. 1분.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고 하여도 16층에서 1층까지는 1분 안에 도착한다. 남자의 모습은 10분이 넘어가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복도로 나가 승강기의 숫자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 나갈 수도 없었다.

상상은 때로 현실보다 더 큰 공포를 안겨준다고 누가 말했던가. 나는 가늠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상상 속에서 몇 번이고 피를 흘렸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순찰차 하나를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경찰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곧 경찰차가 도착했고, 두 명의 경찰이 차에서 내려 아파트 입구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는 거실로 갔다.

결국, 경찰을 불렀다

곧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자를 발견했고, 집으로 올라가서 나의 확인을 받겠다는 경찰의 전화였다. 전화를 끊고 얼마 후,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고 마주한 경찰들의 얼굴에는 조금의 허무함과 안도감이 묻어 있었다. 그 얼굴을 통해 나는 위험한 일이 아니었구나, 예감할 수 있었다.

경찰들이 아파트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한 남자와 계단에 앉아있는 여자를 발견했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남자는 같이 술을 마신 경진이라는 여자를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던 것이었고, 새벽이었기에 초인종을 누르면 실례가 될까봐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고 했다. 여자의 주소는 우리 집인 1602호가 아닌, 옆 동의 1604호였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나는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극한까지 몰아치던 공포가 술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란 걸 알았을 때 느끼는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경진이라는 여자는 경찰의 인도 아래 집에 갔고, 그렇게 1604호와의 일은 끝일 줄 알았다.

몇 달 후 역시 새벽, 한 술취한 아저씨의 소란이 나와 가족들을 깨웠다. 술에 취한 아저씨가 우리 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계속해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아저씨는 만취 상태였고, 현관을 두드리며 계속해서 문을 열라는 소리만 질러댔다. 한 번의 해프닝을 겪었던 나는 바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다.

곧 경찰이 도착했고, 경찰은 아저씨의 소란을 제압했다. 복도로 나와 마주한 소란의 주인공은 '경진'이의 아버지였다. 예전의 자신의 딸처럼 술에 취한 아저씨는, 그날의 자신의 딸처럼 경찰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같은 집에서 두 번이나 벌어진 새벽 해프닝에 나는 다소 짜증이 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하시며 술에 취하면 저럴 수도 있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 말에 그런가, 생각했다. 그러고 며칠 뒤, 집 앞에 음료수 상자 하나가 놓였다. 누가 보낸 건지 적혀 있지도, 확인하지도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어디에서 보낸 건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음료수 상자를 마지막으로 1604호 사람들이 우리 집을 찾아오는 일은 더는 없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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