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나갔더니.."아버지가 준 건물 있다"

2015. 10. 6. 20: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재산부터 보여주는 미혼만남 백태

“안녕하세요?” “이거 먼저….”

직장인 김아무개(34)씨는 지인의 주선으로 소개팅 자리에서 나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상대 남성에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이 남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A4 용지는 자기소개서 겸 이력서 겸 재산 목록이었다. 출생지와 키, 몸무게, 가족관계, 출신 학교, 병역, 건강 상태, 종교, 정치 성향은 물론 소유한 아파트와 자동차 시세, 예금·적금액까지 적혀 있었다. 연봉에는 ‘세후 실수령액’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대 있었다. 맨 아래 줄에는 ‘비록 장남이지만 부모님 부양 의무 없음. 두 분 모두 별도의 월수입이 있음. 약 ○○억원 재산 보유’라고 적혀 있었다. 당황한 김씨가 “이런 건 왜 작성해 오셨느냐”고 묻자, 이 남성은 “저에 대해 참고사항이 되실까 싶어서 적어 왔다”고 답했다고 한다.

첫 만남부터 부동산·연봉 등 공개
상대 부친 회사, 사전조사 하기도
배우자 선택시 ‘경제력’ 최우선 꼽혀
“자수성가 불가능해진 사회 반영”

직장인 정아무개(34)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소개팅으로 만난 남성과 세번째 만나던 날, 이 남성은 정씨를 승용차에 태운 뒤 서울 강남구의 건물 앞으로 차를 몰았다. 이 남성은 “아버지가 주신 제 건물”이라며 세입자 수 등 건물 정보를 상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정씨는 “남자가 자신감이 부족하고 아버지 재산에 의존하는 것이 싫었지만 ‘이런 돈 많은 남자를 언제 만나볼까’ 하는 생각에 만남을 몇 차례 더 이어갔다”고 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직장인 ㄱ(31)씨는 소개팅이 들어오면 상대 남성에 대한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한다고 했다. 두 달 전에는 아버지가 중소기업 사장이라는 한 남성을 소개받았는데, 소개팅 자리에 나가기 전 전자공시 시스템에 들어가 해당 중소기업의 경영 상태까지 살펴봤다고 한다.

결혼을 앞둔 남녀가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거나 상대방의 재산을 먼저 살피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2012년 한 결혼정보회사가 남녀 6만7852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경제력·외모·가정환경·성격 중 배우자 선택 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조건으로 경제력(2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에 대해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6일 “사랑도 결혼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늘고 있다. 극단적 배금주의”라고 했다. 개인의 노력으로 자수성가가 불가능해진 사회구조를 반영한 세태라는 분석도 나온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이 점점 재테크 수단이 되고 있다. 상속을 통해 얻은 자산 없이는 안정된 삶이 불가능한 사회가 결혼이라는 인격적 만남을 단순한 자산 결합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과 비슷한 계급의 결혼 상대를 만나 계급재생산을 하려는 풍조로 보이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계층화현상 공고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고영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
‘타워팰리스 1억 수표’ 신고자, 보상금 얼마나 받을까?
일베, ‘성매매·음란·차별·비하’ 등 유해 게시물 최다
[화보] ‘바람 타는 새’ 참매의 85일 육아 일기
[화보] 황당! 파리와 밀라노에서 이런 패션쇼가…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