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느림의 미학' 깃든 슬로시티 여행

김성환 입력 2015. 10. 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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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안 능내역. 한국관광공사 제공

가을 되면 쏜살같이 흐르는 하루가 참 무정하다 느껴진다. 시간과 속도의 굴레에서 몸도, 마음도 벗어나고 싶을 때 '슬로시티' 떠올린다. 슬로시티는 간단히 말하면 자연과 전통문화를 보호하면서 경제도 살려 따뜻하고 행복한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의 캠페인이다. 1999년 이탈리아의 몇몇 작은 마을들에서 시작됐는데 이게 세계적 캠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잘 부합하는 마을들은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슬로시티로 지정한다. 2007년 전남 신안 증도, 담양 창평, 완도 청산도가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가 됐다. 이후 국내에는 현재 11개 마을이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몇 곳 추려 소개한다. 정겨운 풍경과 맑은 사람들 마주하면 마음도 참 무구해진다.

● 경기 남양주 조안

남양주시 조안면은 2010년 11월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수도권에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수려한 자연, 다산 정약용 생가와 박물관 등 전통 유산, 깨끗한 물과 토양이 어우러져 지속 가능한 생태 도시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각종 규제에 묶여 개발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득이 됐다.

강변 거닐며 선선한 바람을 만끽한다. 남양주종합촬영소 가까이 자리한 남양주유기농테마파크는 국내 최초 유기농 테마파크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코코몽 캐릭터를 활용해 유기농 관련 각종 놀이 체험을 제공한다.

능내역은 '느린 마을' 조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간이역이다. 청록색 기와를 얹은 역사에서 곰삭은 시간의 향기 느껴진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팔당역부터 용문역까지 복선 전철이 놓이며 기억 속에 묻혔다. 그러다 자전거도로가 생기면서 찾는 이들이 늘었다. 강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참 예뻐서다. 주말이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헬멧을 쓴 라이더들이 몰린다. 지금은 기차가 다니던 때보다 더 활기차다. 역사는 새로 단장됐고 대합실도 옛날처럼 복원됐다. 중앙선 철도를 달리던 기차는 멋진 카페로 변신했다.

마현마을의 다산유적지는 능내역에서 가깝다. 다산 정약용은 1762년 한강 두물머리가 훤히 바라보이는 마현마을에서 태어났다. 벼슬살이와 귀양살이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다산유적지에는 다산 생가 여유당을 비롯해 다산의 묘와 다산문화관, 실학박물관 등이 있다.

다산유적지에서 북한강을 따라 운길산역 쪽으로 가면 한강을 굽어보는 전망이 장쾌하기로 유명한 수종사가 있다. 가는 길에 있는 물의 정원은 아름다운 습지 공원으로 자전거도로와 강변 산책길, 물향기길, 물마음길, 물빛길 등 산책로와 전망 데크가 갖춰져 있다.

▲ 영월 김삿갓유적지. 한국관광공사 제공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영월 김삿갓면은 2012년 강원도에서 처음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이름에서 짐작하듯 '김삿갓'으로 알려진 난고 김병연의 유적지가 이곳에 있다. 김삿갓면은 전체 면적의 85%가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다. 주민은 대부분 노인이고, 농업에 종사한다. 관광지라기보다 고즈넉한 산골 마을에 가깝다.

김삿갓 먼저 알현한다. 유적지는 와석리 노루목에 있다. 김삿갓은 전남 화순에서 죽었지만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떠돈 둘째 아들이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알려졌다.

들머리부터 김삿갓의 시비가 이어진다. 땔나무가 없다는 핑계로 길손을 내쫓는 개성의 인심을 비꼬거나, 한자의 운을 빌려 세상사의 흐름을 재미나게 표현한 시구 등 김삿갓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성황당 오른쪽 양지바른 언덕에는 김삿갓의 묘소가 있다. 삿갓을 쓰고 유랑한 김병연의 일생처럼 상석이나 비석을 모나지 않은 자연석으로 만들었다. 유적지 가까이에는 난고김삿갓문학관도 있다. 김병연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영월은 박물관 고장이다. 김삿갓면에도 돌아볼 만한 박물관이 있다. 김삿갓유적지 가기 전에 만나는 조선민화박물관은 서민의 삶이 녹아든 민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곳.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그려진 춘화, 중국과 일본의 춘화를 전시하며, 어른들만 볼 수 있는 '춘화방'도 있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조각과 그림, 공예품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토착 문화와 전통 예술을 엿보는 공간이다.

영월에는 단종이 유배됐던 청렴포와 그의 묘인 장릉이 있다. 이와 함께 깎아지른 기암인 선돌,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등을 연계하면 알찬 가을 여행 만들 수 있다.

▲ 백봉전망대에서 본 청풍호. 한국관광공사 제공

● 충북 제천 수산면

제천 하면 떠오르는 청풍호는 1985년에 충주댐을 건설하면서 생겨난 인공 호수다. 이 호수 동쪽에 자리한 수산면이 2012년 10월 충청북도에서 처음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청풍호, 옥순대교, 금수산, 청풍호자드락길 등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데다 산야초마을과 능강솟대문화공간 등 체험 공간이 다양해 힐링 도시의 면모를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청풍호자드락길 6코스 괴곡성벽길을 걸으면 수산면의 아름다움을 직접 볼 수 있다. 옥순봉쉼터에서 출발해 괴곡리, 다불리를 거쳐 지곡리까지 9.9km를 잇는 길인데 4시간 이상 걸린다. 트레킹 하듯 급할 것 없이 걸으면 그 자체가 힐링이 된다.

조금 쉽게 청풍호의 풍광을 즐기겠다면 길 들머리에서 백봉전망대까지만 간다. 넉넉히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옥순봉쉼터에서 옥순대교를 건너 5분쯤 걸으면 오른쪽으로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이 들머리다. 수풀이 우거진 오르막길이다. 가쁜 숨을 들이쉬며 힘겹게 발을 내디뎌야 하는 구간도 있지만, 걸음을 포기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다. 쉬엄쉬엄 40여 분 오르다 보면 다불리, 여기서 평탄한 오솔길을 따라 10분 정도 가면 백봉에 도착하고, 이곳에 청풍호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솟대 너머로 옥순대교와 옥순봉, 말목이산 등 청풍호 북쪽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제천은 약재의 고장이다. 제천산야초마을과 약초생활건강은 약초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 약초의 생김새와 효능을 배우고, 제철에 수확해서 잘 말려둔 갖가지 약초로 비누 만들기와 손수건 염색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능강솟대문화공간과 정방사도 들른다. 능강솟대문화공간은 전국에서 유일한 솟대 테마 공원이다. 오리나 기러기 등 새를 높은 장대에 올려놓은 솟대는 고조선 시대부터 이어온 문화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웠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솟대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희귀 야생화도 만날 수 있다.

금수산 자락에 자리한 정방사는 66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의상대라는 웅장한 암벽 아래 자리 잡았는데, 처마 아래 지은 제비 집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위태위태하다. 아침 무렵 정방사에서 바라보는 월악산 영봉과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 오르는 청풍호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다.

▲ 청송 덕천마을 송소고택. 한국관광공사 제공

● 경북 청송군 파천면ㆍ부동면

청송은 지역 특색 살린 산촌형 슬로시티다. 2011년 지정됐다. 경관이 수려한 주왕산과 주산지, 선조의 생활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덕천마을과 중평마을, 전통문화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청송백자와 천연 염색, 전통 한지, 옹기까지 다양한 매력이 넘친다. 고택이 많은 파천면과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부동면이 2011년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됐다.

덕천마을 중심에 자리한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부터 청송 심씨 집안이 대를 이어 살던 고택이다. 넓은 부지에 고풍스러운 멋을 간직한 사랑채와 고즈넉한 안채, 솟을대문, 행랑채, 별채, 곡간 등이 조화롭게 배치됐다.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덕천마을에는 송소고택 외에도 경의재, 창실고택, 초전댁, 청송 심씨 찰방공 종택, 송정고택, 세덕사, 소류정 등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고택이 많다.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담장과 골목을 따라 걸으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중평마을에도 고택이 많다. 마을 입구에 잘생긴 소나무가 빼곡한 중평솔밭도 걸어본다.

청송 주왕산은 가을 단풍 화려할 때 찾아도 그만이다. 물속에 자라는 왕버들로 이름난 주산지도 주왕산국립공원에 속한다. 조선 시대에 만든 농업용 저수지인데, 물속에 왕버들 20여 그루가 자라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 이어진 산길은 나무가 우거지고 주변 풍광이 좋아 걷는 맛이 있다.

▲ 담양 창평마을 돌담길. 한국관광공사 제공

● 전남 담양군 창평면

창평은 2007년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 등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지정됐다.

창평현문은 마을에 들어서는 관문으로, 웃자란 푸른 벼 너머로 창평의 자랑인 돌담과 고택이 펼쳐진다. 월봉산에서 발원한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 세 갈래 물길이 흘러들어 삼지내(삼지천)마을이라고 불린다. 창평현문 지척의 남극루에서 그 전경을 확인할 수 있다.

창평현문에서 들녘을 가로지르면 비로소 마을 돌담이다. 직진하는 큰길은 고재선가옥을 지나 창평면사무소까지 다다른다. 창평은 500여 년 동안 고씨 집성촌을 이뤄왔다. 마을에는 고재선가옥 외에 서쪽 골목으로 고정주고택, 고재환가옥 등이 옛집의 위용을 전한다. 돌담이 풍기는 정감도 만만하지 않다. 삼지천마을 옛 담장은 등록문화재 265호로 지정됐다.

창평면사무소는 한옥이다. 현판에는 면사무소 대신 창평현청(昌平縣廳)이라고 적혔다. 창평현청이 있던 자리로, 면사무소를 지으며 옛 풍경을 재현했다. 현청 주변으로 느티나무 고목 여러 그루가 운치 있다.

마을을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걷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야기 길을 걷는다. 돌담이 있는 마을 중심에서 출발해 용운지(싸목싸목길), 명옥헌(명옥헌길), 모현관(미암길)을 목적지로 삼는 세 코스다. 3~4시간 동안 슬로시티를 넓고 크게 돌아본다. 슬로시티방문자센터나 달팽이가게 등에서 자전거를 빌려 이동할 수도 있다.

창평의 골목은 미로처럼 마을을 누비며 열고 닫힌다. 길목마다 체험 공간이 있다. 방문자센터나 달팽이가게에 문의하면 당일 체험이 가능한 곳을 소개해 준다.

자료=한국관광공사 제공

김성환 기자 spam00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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