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문신 소년범 "규칙의 즐거움, 기타로 배웠어요"

엄보운 기자 입력 2015. 10. 6. 03:04 수정 2015. 10. 6. 17: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재범률 확 낮춘 음악치료] "선생님 말씀대로 치다보니 좋은 소리 나는 경험.. 짜릿" "난 시간 때우다 갈 거니까 건들지 마라"던 거친 소년.. 연주 반복하며 '순한 양' 돼 재범률, 50%대서 10%대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육관 1층 녹음실. 덩치 크고 팔에 문신도 있는 사내아이 넷이 모여 앉아 기타 현을 튕기고 있었다. 원곡 템포의 절반 정도 속도로 가수 윤도현의 '나는 나비'를 느릿느릿 연주했다. 간혹 음정을 틀렸지만 서로 눈빛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연주를 이어갔다.

가장 체격이 크고 팔에 용 문신을 한 김호민(가명·17)군은 "F 코드에서 G 코드로 옮길 때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하겠다"며 선생님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김군을 가르치는 이화여대 음악치료클리닉 윤주리 박사는 "지금은 순한 양처럼 기타를 잡고 있지만, 처음 왔을 땐 술에 취해 '시간만 때우다 갈 거니까 건드리지 마라'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내뱉던 아이였다"고 했다.

김군은 담배나 술을 사기 위해 친구들 돈을 빼앗다가 작년 11월 경찰에 붙잡혀 소년범(少年犯)으로 서울서부지검에 송치됐다. 친부(親父)는 "나는 모르겠으니 알아서 하라"며 나타나지 않았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할머니가 지방에서 올라와 "엄마 없이 자란 아이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검찰은 '음악치료클리닉 수업을 빠지지 않고 다니겠다'는 조건으로 김군의 기소를 유예했다.

지난 5월 처음으로 음악치료클리닉을 찾은 김군은 꼬박꼬박 연주실에 나오긴 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가르치려 들면 "단소나 리코더로 애들을 때려본 적은 있어도 불어본 적은 없다"며 건성이었다. 그랬던 김군이 기타에 '불순한'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끝까지 연주할 실력이 되면 기타를 사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김군은 "'기타를 받으면 중고로 팔아 돈을 벌 수 있겠구나'란 생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고 했다.

'벚꽃엔딩' 곡을 연주할 수 있을 때쯤 되자 약속대로 새 기타가 김군에게 쥐어졌다. 무주YG재단(연예기획사 YG가 세운 비영리재단)이 후원한 기타였다 하지만 김군은 기타를 중고시장에 팔지 않았다. 그는 "새 기타를 얻으려고 기타를 치는 사이 나도 모르게 기타가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뭐든 내가 잘하지 못하는 걸 남 앞에서 하는 건 쪽팔렸어요. 그런데 기타는 잘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계속 배우고 싶었어요."

김군은 자작곡도 만들기로 했다. 이화여대 음악치료학과 정현주 교수와 박사과정 선생님 2명이 작곡을 도왔고, 작사는 김군이 해왔다. 자기가 때리고 돈을 빼앗은 피해자 친구들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을 가사에 담았다. "미안하단 말로 해결 안 되는 거 알아. 하지만 말할게. 미안하단 말도 하지 않을 순 없어. 난 뭐 때문인지 화가 났고, 사실 두려웠고, 그렇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어."

김군 스스로 자기 안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에 놀랐다고 했다. 2013년부터 이화여대 음악치료학과와 함께 '음악치료 조건부 기소유예'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서울서부지검의 김병구 부장검사는 "소년범 교정에서 중요한 건 재범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 했다. 국내 전체 소년범 재범률은 51.4%이지만, 2013년부터 지금까지 이화여대에서 음악치료를 받은 소년범 52명 중 다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8명(15.4%)에 불과하다.

재범률을 낮출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한 서울서부보호관찰소도 이 프로그램을 지난 3월부터 도입, 지금까지 10명을 이화여대에 보냈다.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소년범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 3~4주 지나면서부터 태도에 뚜렷한 변화가 보인다"며 "본드를 마시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던 손에 기타를 쥐여주면 아이들이 변한다"고 했다.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음악치료 수업을 들었다는 김군은 "규칙을 따르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알 것 같다"고 했다. "한 번도 규칙을 따르는 게 즐거웠던 적이 없었어요. 어길 때 짜릿했지. 그런데 기타는 달랐어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제법 괜찮은 소리가 나요."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