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노블리스 오블리주]"한국인 포기하겠다"는 아들 방치하는 공무원

방성훈 2015. 10. 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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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祿 받는 공무원 아들 30명 한국 국적포기군 복무 마치고도 국적선택 가능높은 도덕성 요구되는 공무원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외면

[세종=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아들은 2011년 5월 육군에 입대해 2013년 2월 병장으로 제대했다. 윤 장관은 “군 복무와 관련해선 아들이 오히려 나 때문에 피해를 많이 봤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아들이 입대할 당시 윤 장관이 고위공직자 신분이었던데다, 심지어 청와대에서 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군대식 용어로 소위 ‘뺑끼’를 부리며 꾀를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경제부처의 1급 공무원 이모 실장은 20대 아들만 둘이다. 첫째 아들은 이미 군대를 다녀왔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둘째 아들도 2학년을 마치고 귀국해 육군에서 군 복무 중이다. A씨는 “둘째 녀석이 졸업할 때까지 군대를 가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학비를 더이상 지원해주지 않겠다며 강제로 군대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처럼 아들의 군 복무를 장려하는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아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군대를 가지 않겠다는 데 말리지는 못할 망정 이를 방치한 공무원들도 있어 눈총을 사고 있다. 공직자의 경우 높은 사회적 신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윤리적 의무,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된다.

백군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병무청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이 2012년 2842명, 2013년 3075명, 2014년 4386명으로 해마다 급증했다. 올해도 7월까지 2374명이 외국 국적을 취득해 병역을 면제받았다.

특히 이 중에는 4급 이상 공직자 26명의 아들 30명이 포함됐다. 해당 공직자들은 대부분 외국 유학 시절 태어난 아들이 현지에서 공부한 뒤 취업하면서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만 18세는 취업을 하기에 이른 나이인데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은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도 가능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한국과 다른 나라의 국적을 보유한 남성은 ‘만 18세 3개월’ 이전에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38세까지 자동으로 병역의무 대상자가 되며, 군 복무를 마친 뒤 2년 안에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과 한국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이모(37)씨는 지난 2000년 8월 자진 입대해 2002년 10월까지 2년 2개월 동안 군 생활을 했다. 그는 제대 후 미국 로스쿨에 진학할 때 학비가 부담돼 미국 국적을 택했다.

이씨는 “당시엔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대를 다녀와도 이득이 전혀 없었지만, 나는 한국인이고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기업에 취업하려는 국회의원, 장차관, 재벌 등 사회 지도층의 자녀가 많은데, 인턴만 계속하며 입대를 미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기업이 보증을 서주지 않아 취업(비자 발급)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백 의원에 따르면 이씨처럼 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보유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도 자진 입대한 경우가 지난 해에만 436명에 달했다. 고위공직자 아들 중에서도 4명은 외국 영주권자이면서 자발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했다.

윤영돈 인천대 윤리학 교수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도덕성 역시 우리 사회를 작동시키는 중요한 규범이다. 윗물이 맑지 않으면서 아랫물도 맑아야 한다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면서 “선진국일수록 국민들은 사회 지도층에게 더 큰 도덕적 의무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고위공직자도 저렇게 하는데..’라는 부정적인 모델을 제시하면 공동체 의식이나 사회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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