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조달러 경제규모 '공룡 FTA'..중국 견제 '오바마의 승리'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5년간의 집중적인 협상 끝에 타결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거대 자유무역협정(FTA) 경제권이 탄생하게 됐다.
이 협정에 참여하는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멕시코, 베트남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의 경제규모는 2013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27조5000억달러로 전 세계의 40%를 차지한다.
내용적으로 이 협정은 관세 철폐 등 무역협정 수준을 넘어 투자보장, 지적재산권, 환경, 노동 규제 등 매우 포괄적인 규정을 담고 있다. 한·미가 2007년 양자 간에 체결했던 FTA의 규정을 상당 부분 담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이번 협정으로 자동차, 농산물, 정보기술(IT) 등 1만8000개 품목에 대한 관세가 12개국에서 폐지된다. 지적재산권은 미국과 호주 등 사이에 막판까지 난항을 겪은 바이오테크 의약품과 관련된 것으로 미국 제약업계가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하려는 것이다.
미국이 자국 지재권 기간을 국내법의 12년 기준에서 다소 양보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그럼에도 미국 제약업계의 승리로 보인다. 미국은 뉴질랜드 등의 낙농제품에 대한 수입을 완화했다. 또 자동차 부품과 관련, 원산지 규정을 점차 완화하는 데 합의해 일본의 대미 자동차 수출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TPP는 무역협정으로는 처음으로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국영기업들에도 상거래 규칙과 노동, 환경 기준을 따르도록 했다. 또 많은 논란이 되어온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절차와 관련한 규정도 대폭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담배회사의 ISDS 제기 자격이 배제됐다고 보도했다. 금연 캠페인을 펴온 단체들은 이러한 조항이 들어간 것을 “역사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협정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제약업, 농업, 자동차 등 거대자본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목적도 있음을 강조해왔다. 이는 미국 내 노조와 환경단체 등 민주당 핵심지지층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FTA의 전례를 들어 전 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열악한 처우를 받고, 지구 환경이 파괴된다며 반발한 것을 무마하기 위해 부각한 논리이다. 특히 중국이 지난 8월 아시아 지역의 개발도상국 인프라 개발을 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이 지역 리더십이 추락하며 이 논리는 막판에 더욱 많이 동원됐다. 오바마는 TPP를 자신의 외교정책인 아시아·태평양 재균형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TPP 협상에 필요한 무역협상촉진권(TPA)을 국내적 논란 끝에 지난 7월 의회에서 받았다. 그럼에도 대선 국면에 진입한 미 의회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서 이 협상에 대한 비판이 계속 나오고 있어 최종 발효될 때까지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버니 샌더스, 힐러리 클린턴 등 양당의 대권주자들이 정도나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이 협정에 비판적이다.
이번 협상은 철저히 비공개리에 진행됐으며 이날 12개국의 공동기자회견 발표 때에도 협정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세계 경제와 환경, 노동자들의 삶을 좌우할 협정이 몇몇 거대 자본과 국가 관리들에 의해 밀실에서 진행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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