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수육 21분' 줄어든 보조금은 누구 몫?

김주한 입력 2015. 10. 6. 00:04 수정 2015. 10. 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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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우리가 흔히 '단통법'이라 부르는 이 법이 지난 10월 1일로 시행된 지 1년이 됐습니다. 국회에서 1년간 논의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단통법은 혼탁한 이동통신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어 신뢰를 회복하고 가계통신비를 절감하겠다는 게 애초 도입 취지였습니다. 이 목적이 얼마나 달성됐을까요?

■ 단통법은 ‘호갱님’법?

단통법 시행 이전에는 소비자들이 휴대전화 가격을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출고가만 있었을 뿐입니다. 이동통신사와 스마트폰 제조사는 마케팅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데,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고 발품을 팔면 더 많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고 정보가 없으면 판매점에서 제시하는 보조금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똑같은 스마트폰을 사는데 누구는 보조금을 50만 원 받고 누구는 10만 원만 받는 식이었죠. 이처럼 아무런 정보 없이 휴대전화를 남들보다 비싸게, 또는 제값 주고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 '호갱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동통신사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 과도한 보조금으로 고객을 유치하고 다른 통신사 고객을 빼앗아 오는데 열을 올렸고, 부족한 부분은 '호갱님' 주머니로부터 채웠습니다. 보조금 과당 경쟁이 고스란히 통신비로 전가됐다는 지적도 잇따라 나왔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통법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단통법은 단말기 보조금 상한액을 최대 33만 원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 시행 이전에 '호갱님'이었던 사람들한테는 좋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던 소비자들에겐 보조금이 줄어 단말기 가격 부담이 커진 셈입니다. '싸게 살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됐다', '호갱 없애자는 단통법 때문에 전 국민이 호갱이 됐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 겁니다.

■ 가계 통신비 얼마나 줄었나?

단통법이 국회 소관 상임위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돼 논의가 한창이던 2014년 2월 26일 윤종록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은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단통법의 효과와 관련해 단말기에서 약 30~40만 원, 요금선택제에서 약 24만 원, 그래서 총 50~60만 원 사이의 통신비 절감 효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달 공개한 자료를 통해 단통법 이후 가계 통신비가 낮아졌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7~9월 45,155원에서 지난 8월에는 39,932원으로 11.6% 줄었다는 근거도 제시했습니다.
가계 통신비, 과연 그만큼 줄었을까요? 단통법 시행 1년을 앞두고 휴대전화 판매점 밀집지역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신촌 등을 돌면서 만나본 실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정도는 완전 달랐습니다. 통신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단말기 가격이 보조금 축소로 사실상 비싸졌기 때문입니다. 카이스트(KAIST) 경영대 이병태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통신비 11.6% 절감 자료는 통계청 표본 가구 설문에서 나온 만큼 정밀도가 매우 떨어진다면서 자신이 2014년 1분기와 2015년 1분기 이동통신사들의 재무제표를 비교해 다시 계산해본 결과 통신비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0.6% 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는 단통법 보완책의 하나로 '선택약정할인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보조금을 일시불로 받는 대신, 매달 통신요금을 20%씩 24개월 약정 기간 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소비자들은 보조금과 요금 할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보조금보다 요금 할인제가 소비자들에겐 더 이득입니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의 월 5만 9,900원 요금제에 가입하면서 삼성전자 갤럭시노트5를 구입할 경우 보조금은 157,000원이지만, 20% 요금 할인을 택할 경우 24개월간 모두 316,000원을 아낄 수 있습니다. 159,000원을 아낄 수 있는 셈입니다. 요금 할인율은 당초 12%였지만 지난 4월부터 20%로 상향 조정됐고, 이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 지금은 총 218만 명에 이릅니다. 선택약정할인제도가 입소문을 타고 확산되고 있지만, 실제 휴대전화 판매점에선 이 요금 할인 제도를 설명해주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요금 할인보다 보조금을 주는 게 이동통신사들에게는 더 유리하기 때문이죠.

■ 여전히 혼탁한 이동통신 시장

단통법 시행으로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이동통신사 홈페이지에 공개됐습니다. '호갱님' 차별 없이 어떤 매장에 가더라도 같은 가격으로 휴대전화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통신사들은 단통법 이전처럼 막대한 현금을 보조금 명목으로 뿌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마케팅 비용을 아낀 이동통신사들은 올해 지난해보다 2배 많은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이동통신사만 배부르게 하는 법 아니냐는 지적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미래부는 여전히 이동통신사의 이익률은 해외 사업자에 비해 크게 낮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동통신사들도 20% 요금 할인제가 확대되면 수익이 줄어든다고 하소연입니다. 그렇다면 단통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일까요?
게다가 편법 보조금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이동통신사는 직영점이나 대리점을 통해 휴대전화 판매점에 판매 수수료를 지급하는데, 일부 판매점에선 단말기 구매자와 '프리랜서 판매자 계약'을 맺고 구매자에게 추가 수수료를 지급합니다. 즉 소비자가 구매자인 동시에 판매자도 되는 셈입니다. 다단계와 비슷한 개념인데, 구매자 입장에서는 공시 보조금 외에 추가 수수료를 더 받을 수 있습니다. 통신사가 판매자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은 합법인 만큼 이통사들은 단통법을 피해 가는 이런 편법까지 동원해 더욱 지능적으로 보조금을 더 주고 있습니다.
공교롭게 단통법 시행 1년이 되는 날 SK텔레콤의 영업정지가 시작됐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4년 아이폰 대란 당시 SK텔레콤이 현금 페이백 형태로 2,000여 명에게 평균 228,000원가량의 초과 지원금을 지급했다며 단통법 위반 혐의로 과징금 235억 원과 함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처분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그런데 영업정지 첫날, KT와 LGU+는 기다렸다는 듯이 SK텔레콤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불법 지원금도 불사하고 이전투구를 벌였습니다.

■ ‘수육 끓이는 시간 21분’

SK텔레콤 영업정지 첫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이상한 암호 같은 글이 등장했습니다. '수육'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6를 의미하고 '21분'은 이 단말기를 21만 원에 내놓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갤럭시S6의 경우 6만 원대 데이터 요금제를 선택할 때 정상 판매가는 60만 원에 가까운데 이를 21만 원에 판매한다는 것은 30만 원 이상 지원금이 추가로 지급됐다는 얘기입니다. SK텔레콤 가입자를 유치하면 한 건에 33,000원의 리베이트를 추가로 주겠다는 내용의 문서가 일선 대리점에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단통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사가 단독으로 영업정지를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단통법 덕분에 시장이 투명해지고 시장 과열이 덜 할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간 셈입니다. SK텔레콤은 영업정지 첫날 하루 동안 가입자 6,066명을 잃었습니다.

■단통법, 이대로는 안돼!

단통법이 시장을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소비자들이 단말기를 싸게 살 수 있는 선택권이 줄어들었고, 고급 단말기가 잘 팔리지 않아 제조사들도 피해가 작지 않은 상황인 데다, 보조금을 묶어놓았기 때문에 애플 같은 외국산 스마트폰이 국내 시장에 신제품을 내놓을 때 국내 제조사가 가격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졌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소비가 위축되다 보니 소규모 영세 판매점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보조금 상한선을 정해놓고 그 이상 지급하면 불법으로 규정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합니다. 상당수 전문가는 보조금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단통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국회에는 벌써 단통법을 개정하자는 내용의 법안이 5건이나 발의돼 있습니다.

[연관 기사] ☞ [뉴스9] 단통법 시행 1년…“통신비 절감 체감 안 돼”

김주한기자 (telecas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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