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에서 알바, 700만원 '도둑'맞았습니다

용설란 2015. 10. 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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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도둑들] 도둑맞은 나의 임금, 건강, 학점, 자존감

[오마이뉴스 용설란 기자]

드문드문 보이는 빨간 고춧가루, 누르죽죽한 면발 사이로 국물이 보인다. 길거리 어딘가의 토사물이 생각나는 그것은 컵라면의 잔재다. 손님들이 먹고 버린 수저, 젓가락, 이미 국물이 말라붙어버린 컵라면 용기를 세면대로 옮겨두었다. 세면대 바닥의 스테인리스 스틸들이 검게 죽어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내가 만화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유

 자료사진.
ⓒ MR. LIBRARY DUDE
2012년 7월부터 거의 만 3년 동안 나는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황금 같은 주말 밤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12시간을 꼬박 지새워야 했고, 시급은 최저임금이 인상될 때마다 올랐지만 야간수당은커녕 최저임금을 아슬아슬하게 웃돌 정도였다. 매장을 혼자 관리해야 했는데 야간이라고 손님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불타는 금요일, 토요일에 손님이 밀려들어도 다음날 낮 장사를 위해 매장 청소는 꼭 해야 했다. 주중에는 학교를 다녀야 하니 월요일 수업에서 졸다 C를 맞아도, 피로해 몸져누워 F를 맞아도 몸 관리를 못한 탓이지 아르바이트 탓을 할 순 없었다. 그 일이 생명줄이니까. 학교를 다니면서 주 24시간~36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으니까.

대학을 다니다 보면, 부모님께 생활비(용돈)도 다달이 50만 원씩 받고 어학연수도 가는 친구들도 많은 것 같지만, 내 경우는 아니다. 수능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모든 생활비를 스스로 충당해야 했기에 일을 쉬어 본 적이 없다.

이곳은 이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발견한 집이었다. 아르바이트 중계 사이트로 알바를 구해봤지만, 서류에서 탈락될 확률도 크고 무엇보다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력서 보내고 기다리고, 면접 오라고 연락이 와서 직접 갈 때 즈음이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 그 집 말고도 다른 집 면접 일정과 겹치거나 이미 다른 집에 나가기로 했는데 더 마음에 드는 집에서 연락이 오는 등 일이 깔끔히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좀 귀찮더라도 나는 아르바이트가 필요하면 이틀 정도는 날을 잡고 일자리 많은 곳에서 발품 팔았다. 그러다 운 좋게 사장이 가게에 나와 있는 상황이라면 그 자리에서 면접을 보는 편이 더 나았다. 이렇게 하면 나도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가늠해 볼 수 있기에 '알바'라고 막 대할 확률이 높은 사장들을 미리 걸러낼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이 만화방도 그랬다.

만화방에 바친 3년, 결과는 '대참사'

평소에 만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지원한 것이었는데, 결과는 대참사였다. 우선, 만화방 아르바이트는 절대로 만화책을 다루는 일이 아니다. 그곳에 몰려드는 단골 또는 단골이 될 수도 있는 '뜨내기손님'들을 접대하는 것이 주 임무다. 친구 따라 왔지만 "뭘 볼지 모르겠다"며 추천해 달라고 하는 손님도 간혹 있었지만, 성인이 돼서 일부러 시간을 내 만화방에 올 정도라면 대부분 자기가 뭘 볼지 아는 사람들이다. 만화방에는 단골들이 많았고 자연히 만화방 아르바이트는 책 일이 아니라 사람 다루는 일이 되었다.

만화방에 온 사람들 중 일부는 여타 다른 가게 진상과는 다른 쿰쿰한 냄새를 풍겼다. 결국 '만화는 이런 사람들이 주로 보는 거구나'라는 편견까지 생기게 됐다. 그런 손님들을 자주 보다 보니 나는 만화가 싫어지게 되었는데, 손님들 때문에 내 덕질을 도둑맞았다.

그리고 또 하나, 야간노동의 특성상 밤새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주 2~3일은 밤에 활동하고 나머지 평일은 학교에서 공부해야 했는데 거의 언제나 제 몸이 아니었다. 금요일 수업을 듣고 밤 9시까지 출근해서 오전 9시까지 일을 하다 보면 거의 24시간 깨어있게 되었다. 낮에 잠을 잤지만 너무 자주 깼다. 이틀간을 더 야간 출근해서 월요일 아침 9시에 퇴근을 했는데, 그 날 수업은 조느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월요일에도 6시 수업 끝나고 집에 갈 때 즈음이면 사실상 그 날도 24시간 깨어 있는 셈이었다. 수요일이 돼야 몸이 좀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해가 갈수록 몸이 축나는 것이 느껴졌다. 성적은 바닥을 쳤고, 월요일 수업을 없애보려고 비싼 등록금 주고도 듣고 싶은 수업을 못 듣기도 했으나 할 수 없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주 24시간~36시간을 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고 평일에 6시간씩 일을 한다면 그룹과제나 공부에 더 타격을 입을 것 같았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 생활 리듬을 그렇게 망쳐놓았던 것이 타격이 더 컸다. 일을 하지 않는 날에도 언제나 일의 영향을 받았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해도 사장은 야간수당은커녕, 12시간 일하는데 (법적으로 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식대도 주지 않았다. 매장에서 파는 라면을 먹을 수 있었는데, 2개는 먹을 수 없었다. 매장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금액 한도가 있었고, 사장은 CCTV로 감시를 했다. 배달음식이나 김밥을 사먹으려면 1시간 시급이 넘거나 거의 다 바쳐야 했기에 그것도 옳지 않은 것 같았다. 결국 위장병이 생겼다.

불타는 주말이라 야간이라도 손님이 많았고, 혼자서 손님 상대하랴 매장 청소하랴 너무 힘들었다. 일상적인 평일 생활, 건강, 학점 모두 손해를 입는데 오천 얼마 받고 일하라니. 하지만 또 이게 아니면 딱히 더 좋은 조건에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현실. 그냥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3년 동안 일하면서 구두계약만 했지 근로계약서 같은 것도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휴수당, 초과근무수당, 휴일근무수당, 연차휴가미사용수당…. 이런 것들은 모두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 알바가 제기하기에는 인정머리 없는 이야기, 잘릴 것을 각오하고 해야 하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잘리면, 또는 여기든 아니든 지금 있는 이 가게에서 잘리면 길바닥에 나앉을 것이라는 공포가 나에게는 항상 있었다.

빼앗긴 3년, 도둑맞은 임금 700만 원

 자료사진
ⓒ pixabay
면접 당시 사장은 정이 많아 보였다. '알바생에게도 똑같은 사람 취급을 해 줘야 한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었다. 난 언제나 그 말이 싫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부터가 이미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해야 좋은 사람이니까. 나 이렇게 교양 있는 사람이에요'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 시작한 지 만 3년이 다 되어갈 때 즈음, 죽자 사자 버티고 있는 나에게 사장은 손님들이 다 듣고 있는 매장에서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인신공격성 말을 했다. 사장이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배출하면 다 받아주는 화장실 하수구가 된 것 같았다. 그런 말까지 들으면서 일할 순 없어서 그 뒤 일주일이 지나 관뒀다. 

그동안 못 받은 주휴수당과 퇴직금, 해고예고수당을 달라고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처음에는 신고를 할지 말지 많이 망설였다. 일단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신고와 경찰과 법이라니 더럭 겁부터 났다. 그런데 이런 취급을 당하고 나가는데 그냥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는 주휴수당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 전 알바에서 최저임금 미만으로 받을 때에도 사람은 인정으로 사는 거라는 마음에 그냥 넘어갔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는가? 왜 내 권리라고 법에서 정해놓은 것도 눈치 보면서 못받아먹어야 하는지. 밤새 고민하다가 전부터 알았던 후배가 조합원으로 있다는 '알바노조'에 도움을 청했다.

진정이 접수되자, 사장은 입을 싹 닦고 내가 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계약한 것보다 대부분 초과근무를 했는데 일을 쉰 날이 많다는 등 근로감독관에게 거짓말을 했다.

근로감독관 말로는 근로계약서가 없어서 증명할 수 있는 뭔가가 없는데 내가 주장하는 근로조건과 사장이 주장하는 근로조건이 다르다는 것. 사장과 나 사이의 조정기간이 길어졌다. 

알바노조를 통해 노동법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되었고, '생각보다 이런 대우에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내가 너무 유별난 게 아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노동부에 진정을 넣은 뒤, '마감 기간이 연장된다' '어떤 서류를 제출해라' '죽어도 싫던 삼자대면을 해야 한다' 등등 위기가 닥쳤는데 그럴 때 노조가 있다는 게 큰 힘이 됐다. 

네 달간의 조정기간을 거쳐 노동청에서 700만 원의 체불임금이 발생했다는 판결을 받게 되었다. 야간 알바를 하면서 사장에게 도둑맞았던 나의 임금, 나의 건강, 나의 학점, 나의 자존감.

체불임금으로 건강과 학점과 그동안 받은 모멸감은 보상받지 못하겠지만 우선 내가 일한 대가는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노동청에 체불임금확인원을 발급받으러 가야한다. 아직까지도 체불임금이 입금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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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공모 '도둑들' 응모글입니다. 글쓴이는 알바노조 조합원 입니다.

- 알바노조 http://www.alba.or.kr 02-3144-0935
- 알바하다 궁금하면? 알바상담소 http://cafe.naver.com/talka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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