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12시간, 물도 아깝다는 사람들

조세형 2015. 10. 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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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킬러' 채식 전도사 되다 25]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는 동물들

[오마이뉴스 조세형 기자]

어떤 영상을 보게 됐다. 영상에서는 돼지가 작은 구멍으로 주둥이를 내밀고 필사적으로 물을 받아먹었다. 물통을 들고 있는 사람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다. 목마른 돼지에게 한 모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가 탄다.

자막이 등장한다. 2013년 7월 17일 당시 캐나다 토론토의 체감온도는 폭염으로 섭씨 45도를 넘었고, 돼지들이 갇힌 금속 트럭의 온도는 그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라는 내용.

트럭에 갇힌 돼지는 한두 마리가 아니다. 서로 물을 마시려고 주둥이를 들이밀며 절규하듯 비명을 질러댄다. 돼지는 사람처럼 땀샘이 발달하지 않아서 고온에 취약한 동물이다. 따라서 폭염은 돼지들에게 큰 고통일 수밖에 없다. 영상 속 상당수의 돼지가 탈진한 모습이다.

또 다른 자막이 이어진다. 심한 헐떡거림·기운 없음·근육의 떨림·경련 및 구토·초점이 사라진 눈·의식불명. 열사병으로 죽어가는 돼지의 증상이다. 사람들은 물통과 분무기로 돼지들에게 물을 공급하느라 분주하다.

▲ 돼지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사람들. 캐나다 동물보호단체 '토론토 피그 세이브'가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 캡처.
ⓒ TorontoPigSave
돼지 운송트럭이 외딴곳에 고립되기라도 한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무렵 화면이 바뀌면서, 트럭이 도로 한복판에 정차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잠시 후 트럭이 떠나고, 한 여성이 울먹이며 말한다. 방금 돼지들이 받아 마신 물은 그들이 고된 삶에서 경험한 유일한 사랑과 온정이었을 거라고. 그래서 가슴이 미어진다고.

이상은 캐나다의 동물보호단체 '토론토 피그 세이브'가 유튜브에 공개한 집회 영상이다(영상 보러가기 클릭). 집회자들이 물을 공급한 돼지들은 근처에 있는 도살장으로 운송되는 중이었다.

오늘날 농장동물의 사육과 도살이 잔인한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은 꽤 알려졌다. 게다가 미국·캐나다와 같이 국토가 넓은 나라의 농장동물들은 도살장까지 장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큰 고통에 시달린다. 트럭에 실려 가는 동안 동물들은 폭염이나 혹한에 그대로 노출된다. 게다가 이동하는 동안 마실 것과 먹을 것은 제공되지 않는다.  

도살장 벽을 '유리'로 바꾸려는 이유

▲ 오늘날의 농장동물의 삶 '세계 농장동물의 날'이었던 지난 10월 2일, 동물보호단체들은 광화문 광장에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알리는 피켓을 세웠다.
ⓒ 조세형
"만약 도살장 벽이 유리로 돼 있다면 모든 사람은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다."

세계적인 가수이자 채식주의자인 폴 매카트니가 한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먹어왔던 고기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떠올린다면 더는 마음 편히 육식할 수 없을 것이다.

토론토 피그 세이브는 토론토에 있는 도살장들의 벽을 '유리'로 바꾸는 것이 목표다. 이 단체가 집회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도살장에 가는 돼지들에게 물을 공급함으로써 농장동물의 고통을 증언하고 알린다. 그러면서 육식을 그만두고 농장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실천에 동참하도록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이 단체는 채식산업을 성장시키고 축산업 종사자들의 업종 전환을 돕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토론토 피그 세이브는 지난 2010년 12월 아니타 크라이츠라는 여성의 풀뿌리 운동을 통해 탄생했다. 그녀는 반려견 '미스터 빈'을 입양한 후 매일 산책을 하던 중, 도살장에 실려 가는 돼지들을 눈여겨보게 됐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했다.

아니타의 결심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에게로 퍼졌다. 수백 명으로 이뤄진 모임이 결성됐고, 이들은 도살장에 실려 가는 돼지·소·닭을 위한 집회를 정기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이 집회는 영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브라질 등으로 확산해 세계적인 운동으로 거듭나고 있다.

 농장동물에게 복지를 허하라!
ⓒ 조세형
"누군가의 고통이 당신을 괴롭힌다고 해서 도망치지 마라. 고통받는 이에게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가 도와줘라." -톨스토이 

대규모의 고통을 목격한 아니타는 괴롭다며 도망치지 않았다. 무력한 개인에 불과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며 좌절하지도 않았다. 뭔가를 하겠다는 결심으로 그녀를 이끈 것은 채식주의자였던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책이었다.

농장동물의 고통을 증언하겠다는 그녀의 소박한 결심은 도살장 트럭을 잠시 멈춰 세울 정도로 막강한 집회로 발전했다. 토론토 피그 세이브는 집회 중 닭과 양 한 마리를 구조해 각각 '머시'와 '미도우'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들은 농장동물 보호시설에서 안락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10월 2일, 내가 단식한 이유

 10월 2일 세계 농장동물의 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동물보호단체들의 공동 기자회견.
ⓒ 조세형
'세계 농장동물의 날'이었던 지난 10월 2일, 국내 주요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카라·케어는 광화문 광장에서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알리는 공동 기자회견을 했다. 공장식 축산은 최소의 생산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얻기 위해 규격화된 방식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시스템이다. 공장식 농장의 동물들은 밀집형 사육·신체 훼손·절단 등을 겪으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세계 농장동물의 날은 이러한 고통을 증언하기 위해 1983년에 시작되어 올해 32번째를 맞이했다. 날짜를 10월 2일로 정한 이유는 이날이 채식주의와 비폭력 운동을 통해 동물보호 활동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마하트마 간디의 탄생일이기 때문이다. 간디는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동물들이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날 동물자유연대·카라·케어는 도살 전 배고픔에 시달리는 농장동물의 현실을 알리고,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의미로 하루 단식을 제안했다. 대부분의 경우, 농장동물은 도살 전 12시간 동안 어떠한 먹이도 공급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도살을 앞둔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가 사료를 낭비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농장동물들은 고통스러웠던 생애의 마지막 하루마저도 굶주림 속에서 보내야 한다. 옛말에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던데, 농장동물엔 해당하지 않는 말인가 보다.

그렇다고 축산농민만 탓할 수는 없다. 생업을 위해 잔인한 사육방식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 역시 생명을 도구로 간주하는 시스템의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한 인도적인 처우를 보장하는 정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의 동참 역시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과도한 육식을 줄이고, 공장식 축산물 대신 동물복지 축산물을 선택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10월 2일 기자회견 후, 동물보호단체들은 고기를 덜 먹으면 동물의 고통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취지의 퍼포먼스를 펼쳤다.
ⓒ 조세형
매년 10월 2일의 단식은 전 세계 동물보호단체와 시민들의 연대하에 시행된다. 기자도 농장동물의 희생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날 하루 단식에 동참했다.

사람은 육식을 관두더라도 살아가기 위해 식물의 생명을 취할 수밖에 없다. 다른 생명의 희생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숙명일지라도, 그런 희생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이타심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사람에게든 동물에게든 더욱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을 하는 것이다. 

개인들의 실천이 모여 채식인구가 증가하고 채식제품과 식당이 늘어나면,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채식할 선택권이 어디서나 존중받는 사회, 어느 식당을 가든 채식 메뉴가 하나쯤은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굳은 결심을 하지 않아도, 많은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도 채식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그런 내일을 위해 실천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어느 날 아침 눈 뜨면서 오늘부터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삶을 바치겠노라고 굳은 결심을 하지 마십시오. 나눔의 생활은 특별한 사회적 혁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 직면하게 되는 작은 선택들이 모이고, 결단과 참여가 확산되고, 여기에서 박애가 비롯되면 세상은 달라집니다." - 아베 피에르 신부
○ 편집ㅣ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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