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탈출→ 경인 도심→ 수도권 변두리로 '전세난민 도미노'

강아름 2015. 10. 5.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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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 한국인]

서울 인구 순유출 8월까지 8만

경기 구리·일산 서구·군포 등

서울보다 전셋값 상승폭 더 커

공공임대 확대 등 장기대책과 함께

전월세 동결 때 세제혜택 등

발등의 불 끌 단기대책도 필요

직장인 천모(45)씨는 두 달째 주말마다 경기 지역에서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 30대 초반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전세로 신혼 생활을 하다 치솟는 보증금을 못 견뎌 강서구로 옮긴 지 4년 만에 결국 탈(脫)서울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천씨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억원이면 전세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 계약이 끝나는 2년마다 10~20%넘게 폭등하는 보증금 탓에 더는 서울 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천씨가 가진 돈으로는 경기 지역에서도 전세를 구하는 것이 좀체 쉽지 않다. 천씨는 “나 같은 전세난민이 경기, 인천 지역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이곳도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며 “2억원 남짓의 돈으로 가족 4명이 살기에 적당한 물건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올 들어 세입자들의 ‘서울 엑소더스’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서 집을 못 구한 세입자들이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수도권 지역으로 탈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인구가 몰린 경기와 인천은 공급에 비해 수요가 넘치면서 전세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이 탓에 이 지역 주민들 역시 임대 재계약과 이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의 전세난이 수도권의 전세난에 기름을 붓는 악순환이다.

서울 주민들이 외곽으로 떠나는 현상은 통계로 뚜렷이 확인되고 있다. 4일 통계청에 따르면 8월 한 달간 서울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긴 순이동인구(전출자-전입자)는 1만2,911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5,663명)보다 2배 이상(128%) 늘었다. 올 들어 8월까지 누적으로 보면 총 7만8,351명이 서울을 떠났다. 반면 경기와 인천은 같은 기간 각각 6만9,406명, 6,927명이 순유입됐다. 서울에서 빠져 나온 인구 대부분을 경기나 인천 등의 수도권 지역에서 흡수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새 터를 찾아 떠나 온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경기와 인천의 일부 지역들은 서울보다도 전셋값 상승폭이 더 커지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서울 주택의 전세가격은 이미 작년 한해 상승률(4.27%)을 크게 웃도는 6.37%까지 뛰었는데, 경기 구리(8.53%)와 일산 서구(8.32%), 군포(7.88%), 인천 서구(7.33%) 등은 상승폭이 서울을 앞지르고 있다. 경기 남양주에서 중개업을 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남양주와 구리 등은 재건축사업으로 이주 절차를 밟고 있는 강동구 인근이다 보니 임대 수요가 최근 들어 많아졌고, 이런 상황이 전세와 월세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년까지 경기도와 인접한 서울 강남 4구에서만 2만 가구가 이주 예정이라 이사 인구 쏠림과 임대료 상승은 당분간 계속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다른 문제는 서울 전세난민과 월세 유랑민의 수도권 정착으로 기존 경기와 인천의 주민들의 경우 지역 도심에서 외곽으로 떠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은 “서울발 전세난이 빠르게 수도권으로 확대되고 있다”면서 “서울 사람들은 수도권 도심으로, 수도권 주민들은 경기와 인천 외곽의 다세대ㆍ다가구 주택으로 밀려나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주민들은 주거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교통 여건과 학군을 포기하고 수도권으로 진입하고 있고, 서울 외 수도권 지역 주민들은 도심에서 변두리로 쫓겨나 편의시설을 포기해야 하는 등 질적 하락이 동반된 연쇄 작용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도미노식 전세난민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중장기 대책과 단기 대책이 적절히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긴 안목의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당장 발 등에 떨어진 불을 끄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공공임대주택 확대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며 극심한 전세난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정부의 올바른 처신이 아니다”며 “우리나라 임대시장은 민간이 담당하는 게 80~90%나 된다는 점을 감안해 집주인이 계약 갱신 때 전월세를 올리지 않으면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세제혜택을 주는 등의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mailto: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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