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리포트] '폭탄 돌리기' 아베노믹스 2막이 부럽지 않은 이유

김민구 입력 2015. 10. 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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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일본)=이진석 해외통신원] 일본 직장인들은 지난달 19부터 23일까지 단비 같은 연휴를 보냈다. 일본에서 주말과 대체 공휴일이 겹친 5일 연휴가 9월 달력에 실린 것은 2009년 이래 6년 만이었다. 4월 29일 ‘쇼와(昭和)의 날’로 시작되는 1주일간의 ‘골든 위크’(golden week) 보다는 이틀이 짧아 ‘실버 위크’라고 불리는 연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실버 위크가 끝난 다음날 ‘아베노믹스 제2막’을 선언했다. 연휴 직전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 반대 여론을 연휴로 희석한 뒤 일상이 시작되자마자 장밋빛 경제전망을 민심 달래기 카드로 내놨다.

아베노믹스 제2막은 1억 명 경제 활동으로 국내총생산(GDP) 600조엔(약 5914조5000억원)을 창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일본 인구가 약 1억2000만명이니 사실상 경제활동인구 수 전원에게 일자리를 주는 목표나 마찬가지다. 2014년 일본 GDP가 약 490조엔인 점을 감안하면 회사원들의 월급을 20%쯤 올린다는 얘기나 진배없다.

그러나 최근 일본경제가 내놓는 각종 지표를 살펴보면 아베가 내건 목표가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일본 대졸자 취업률이 97%에 육박한다는 발표는 그 진상은 미뤄놓고도 취업률 60%를 밑도는 미국과 한국 입장에선 꿈 같은 얘기다. 아베 내각 출범 당시 8000대에 머물던 닛케이지수가 현재 2배가 넘는 1만8000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숫자를 이용할 궁리를 한다. 일본 국민 상당수가 반대하는 개헌을 밀어붙이면서도 아베 정권이 유지되는 이유는 이 숫자에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말 기자회견에서 아베노믹스 성과를 강조했지만 실제 일본 2분기 실질 GDP 개정 값은 연율 환산으로 1.2% 감소한 마이너스 성장으로 나타났다. 최근 발각된 도시바(東芝)의 회계분식 사건은 아베노믹스와 묘하게 겹친다. 밖으로 보이는 숫자를 만들어내는 건 어쩌면 너무도 쉬운 일일 지도 모른다.

양적완화는 언젠가 돌아올 부메랑이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비해 세수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14년 소비세를 기존보다 3% 포인트 올린 8%로 개정했고 2017년에는 10%까지 올릴 계획이다. 일본 거주자 모두에게 고유의 식별 번호를 부여하는 ‘마이넘버’ 제도는 사회보장 지출 감소와 함께 과세를 늘리기 위한 수순이다. 이 제도에는 외국인 장기체류자도 포함된다. 필자 주변의 많은 재일 외국인들은 수 년 내 곧 ‘유리지갑’이 될 지도 모른다는 통지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베 총리의 아베노믹스 제2막은 비판의 화살을 받고 있다. ‘경제 최우선’, ‘육아 지원’, ‘사회 보장’이라는 ‘세 개의 화살’을 내세웠지만 진정한 성장의 기폭제가 되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목표치를 내세웠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없다. 심지어 언제까지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없다.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안보법안 통과로 멀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한 공수표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50년 후에도 인구 1억명이 유지되는 사회” 같은 발언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지워질 얘기다.

실버 위크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한 일본 직장인들은 모이기만 하면 신(新) 아베노믹스를 화제로 삼는다. 당장 손에 쥘 월급봉투가 중요한 이들에게 이보다 큰 이야깃거리가 없다. 안타깝게도 이들 얼굴빛이 마냥 낙관적이지는 않다. 위태로운 폭탄 돌리기의 술래가 자신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희망이라도 있음을 우리는 부러워해야 할까.

김민구 (gentl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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