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급 男優, 게임 속 戰士가 되다
창문 틈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고풍스럽고 널찍한 공방(工房)에 차승원(45)이 걸어 들어간다. 앞치마를 두른 뒤, 수건으로 탁자 위에 있는 묵직하고 긴 칼을 정성스레 닦으면서 내레이션을 한다. 그러고선 칼을 어깨에 두른 채 공방의 문을 열고 나선다. 영화 예고편 같은 이 30초짜리 동영상은 액션 역할 수행 게임(RPG) '레이븐'의 TV 광고이다.
차승원과 정우성, 이정재, 장동건 등을 TV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지 못해 아쉬웠다면, 올해 나온 신작 온라인 게임들을 살펴보면 된다. 지난 2월 출시된 '레이븐'이 차승원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게임 광고 시장에 30~40대 A급 남자 배우 전성시대가 열렸다. '크로노클레이드'의 하정우(37), '애스커'의 황정민(45), '난투'의 정우성(42), '고스트'의 이정재(42), '이데아'의 이병헌(45), '뮤 오리진'의 장동건(43), '대륙'의 김남길(34)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중 대부분은 광고 시장에서 수억원씩의 광고 모델료를 받고, 광고도 가려 찍는 것으로 알려진 배우다.
걸그룹 멤버나 코미디언이 주로 등장한 게임 광고에 A급 남자 배우들이 나온 것은 게임에 돈을 쓰는 단골 고객들을 공략하기 위해서이다. 10대나 20대 초반보다는 20대 중반 이상이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위현종 수석 심사역은 "온라인 게임, 특히 모바일 게임에서 돈을 많이 쓰는 이용자들은 30~40대 남성 직장인이다.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광고 모델은 섹시한 여성이나 또래의 멋진 남성이다. 액션 RPG게임과 강한 남성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지다 보니 30대 이상 남자 배우들이 광고 모델로 각광을 받게 됐다"고 했다.
이런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을 수 있다. '클래시 오브 클랜'은 중후한 액션 스타인 리엄 니슨을 광고 모델로 쓰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그의 대표작 '테이큰'에 나온 대사 "나는 너를 찾을 것이다"를 광고에 그대로 차용하면서 하루 만에 조회 수 70만건 이상을 기록했다. 이 광고는 1초당 1억6000만원이라는 엄청난 광고료를 자랑하는 NFL 결승전 '수퍼볼'의 TV 광고에도 방영됐다.
최근 모바일 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대작 게임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도 게임 광고 시장이 변한 이유이다. 모바일 게임 광고 규모는 2012년 4억원에서 2014년 126억원으로 31.5배 커졌고 올해 1~8월 집행된 광고만 442억원으로 지난해의 3.5배에 달한다. 3~4년 전 아웃도어 시장의 매출이 급상승하고, 새로운 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했을 때 장동건, 현빈, 탕웨이, 소지섭 등 톱스타가 아웃도어 브랜드의 모델로 나선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과감한 마케팅과 물량 공세를 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못하고 사장(死藏)되기 때문에 A급 모델을 쓰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 업체의 한 관계자는 "원래 RPG액션 게임을 주로 하던 30~40대 남성 고객들을 붙잡아두면서 또래 여성 이용자들도 게임에 끌어들이는 게 게임 업체들의 목표이다. 걸그룹 멤버나 여배우를 썼다간 게임 이미지가 가벼워 보일 수 있고, 여성 이용자들에게 어필할 수도 없다. 결국 30~40대 남녀 모두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또래의 남자 톱 배우들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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