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16년 만에 처음 가족여행 가봤는데.."

입력 2015. 10. 4. 10:19 수정 2015. 10. 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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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토요근무반대 집회에 나온 한 노동자의 이야기…"기브스를 해도 출근하라더라"

[미디어오늘 김유리 기자]

"지난해 처음으로 가족들과 1박2일 이상 가족여행을 가봤습니다. 주 5일제가 적용되면서 토요일에 쉬니까 가능했던 거죠. 근데 이걸 1년 만에 되돌리겠다고 합니다. 연차, 이런 것도 쓸 겨를이 없죠. 우리 자식들 졸업식에 한 번도 못 가 봤는데 첫째 고등학교 졸업식은 한 번 가 봐야할 거 아닙니까."

경기도 시흥 우체국에서 일하는 집배원 김채석(44)씨의 말이다. 김씨는 2일 서울 종로구 청계로 일대에서 열린 토요근무반대·우정노조지도부퇴진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했다. 이날 집회에는 경기 수도권을 비롯해 제주 등 전국의 집배노동자 600여명이 참석했다.

김씨는 16년을 집배원으로 살았다. 우체국 집배원으로 갓 입사했던 때 그는 "일이 많을 땐 아예 집에도 들어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만큼 열악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밤새 일이 많으면 집에 못 들어가는 거죠. 일이 늦게 끝나기도 했지만 새벽부터 일을 해야 그날 배정된 우편물을 다 돌릴 수 있거든요. 숙직실에 껴서 자고 그러다가 눈 뜨면 일하고 그런 식이었죠, 뭐."

▲ 토요근무반대·우정노조지도부퇴진비상대책위원회가 2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인근에서 토요 근무제 부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집배원 업무는 항상 과중했다. 그는 "외환위기 지나고 한 차례 집배원을 증원했는데 그 이후로는 쭉 줄기만 했지 동료가 는 적은 없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올해 초에도 하위직급 1023명을 구조조정했다. 경영 적자라는 이유였다.

집배원 수를 증원했어도 정규직은 아니었다. 우편배달을 하는 정규직 집배원 한 직급은 이후 상시·재택·위탁 등 이름만 다른 비정규직으로 나뉘어졌다. 그들은 정규직 집배원과 같은 일을 했지만 상시 집배원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 재택 집배원은 거기서 또 절반가량을 받았다. 재택 집배원의 월급은 80~90만원 수준이다.

"새벽 4시에 일하러 나가면 랜턴이 달린 모자를 씁니다. 이 땐 우편물을 집중해서 돌려야 해요. 오전 7~8시까지 이 일을 끝내고 우체국으로 다시 돌아가 등기와 택배를 다시 싣고 나옵니다. 새벽 4시에 초인종 누르고 등기에 사인해달라고 할 순 없으니까. 이렇게 일을 나누는 거죠."

이날 만난 집배원들은 대부분 '오토바이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사고도 빈번하다. 특히 눈·비 오는 날은 집배원에게는 최악이다. 김씨 역시 마찬가지다. 김씨는 "눈길에 오토바이를 몰다가 살짝만 미끄러져도 팔 부러지고 다리 부러지는 것은 예삿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설을 앞둔 때에는 오토바이 한 대에 모든 명절 선물을 싣고 다녀야 한다. 물론 우체국 택배 마크를 단 1톤 트럭도 있다. 일반 택배회사와 같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수도권을 벗어나면 그나마도 없다. 모든 택배 화물을 오로지 오토바이 하나로 감당해야한다. 여기엔 과일 상자, 해산물 상자 등등 온갖 선물이 사람의 앉은키보다 높이 쌓인다. 더 무거워지고 무게중심을 잡기도 힘들어진다. 고역이다.

"저도 몇 번이나 다쳐서 기브스를 했죠. 더 고역인 건 우체국 윗사람들입니다. 다리를 다치든 팔을 다치든 일단 출근을 하라는 겁니다. 내근이라도 하라는 거죠. 다친 사람을 데려다 일을 시킵니다. 다리 같은 곳은 하루 일하고 나면 퉁퉁 부어버려요. 나을 시간이 없는 거죠."

노동자운동연구소가 2013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집배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정규직 일반 노동자(42.7시간)보다 20시간 많은 64.7시간으로 집계됐다. 과중한 업무로 근골격계 증상을 가진 노동자는 74.6%, 사망률은 전체 노동자보다 평균 6배 높고 산재율은 4배 높았다.

집배원 업무가 명절 대목에만 바빠지는 건 아니다. 매달 10~24일 사이에는 항상 바빠진다. 각종 고지서와 지로 영수증 등이 몰릴 때에도 새벽 출근이다. 한 명당 2000통, 많을 때는 5000통이 배정되기도 한다. 하루에 돌려야 할 몫이다.

그나마 지난해 주5일제가 도입돼 토요일 근무가 폐지되면서 여가를 맛볼 수 있게 됐다.

"올해 여름 처음으로 가족들과 해수욕장에 텐트를 치고 자봤어요. 그 전에는 당일치기로 다녀온 것이 전부였거든요. 16년 만에 이제 겨우 1박 이상을 가족들과 보내봤는데, 단 한 번으로 끝나게 생겼어요. 올해 처음 가족들에게 남편·아버지 노릇을 한 것 같았는데 그게 마지막이 돼버리면 어떻게 하죠."

그는 지난 추석 때에도 추석 전날까지 일했다고 했다. 9월1일 토요근무가 부활한 이후다. 그는 "연차휴가 쓰기도 힘들었고 아이 둘의 졸업식은 한 번도 못 가봤다"며 "첫째 고등학교 졸업식은 가봐야 할텐데"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김씨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아빠, 광화문이지. 곧 끝날 거 같아. 왜? 엄마가 빨리 오래? 뭐 맛있는거 해준다고? 그래 알겠어. 아빠 곧 들어가."

"오늘 광화문에도 애들이 먼저 나가라고 했어요. 아빠 이기고 오라고."마지막 여섯 글자를 힘주어 말하는 그의 입꼬리가 하늘을 향한다.

까맣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머금어졌다. 이날 집회는 오후 3시30분께 서울 종로구 광화문 우체국 앞 행진을 마지막으로 끝냈다. 다음주 토요일이면 김씨는 또다시 1년2개월 남짓의 토요일 휴가를 접고 또 다시 우체국 오토바이를 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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