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美의회,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국민 돌봐야"

워싱턴/윤정호 특파원 입력 2015. 9. 25. 03:06 수정 2015. 9. 2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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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상·하원 합동연설] 사형제 폐지·기후변화 등 민감한 이슈 '작심 발언' 美언론 "교황이 미국 정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미국을 처음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현지 시각) 기립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역사적인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섰다. 그는 이민자 보호, 사형제 폐지, 기후변화 대응 등 민감한 이슈를 직설적으로 언급했다. 미국 언론은 "교황이 미국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고 보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에이브러햄 링컨 전(前) 대통령,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빈곤 탈출 운동을 벌인 가톨릭 평화주의자 도로시 데이, 현대의 영적(靈的) 스승으로 꼽히는 토마스 머튼 작가 겸 수도승 등 미국인 4명을 거론하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위대한 대륙(아메리카)의 아들(아르헨티나 출신)로서 '자유의 땅이자 용감한 사람들의 고향'인 미국의 의사당에서 연설하는 기회를 갖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문을 열었다.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는 이어 "미 의회는 미국의 얼굴로서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국민을 돌봐야 한다"고 책임감을 강조했다. 모세가 유대인을 자유의 땅으로 인도해 보호했듯, "미 의회는 공정한 입법으로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링컨 대통령을 자유의 수호자로 부르면서 "종교·이데올로기·경제시스템이란 이름을 빌려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게 현실에서 증오가 그 자리를 차지하거나 흑백론이 지배해서는 안 된다"며 "희망과 치유, 평화와 정의를 통해 협력과 화해의 메시지를 새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정치이슈로 들어갔다. 그는 "우리가 모두 이민자의 아들(본인은 부친이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건너온 이민자)"이라며 "킹 목사가 흑인인권과 평등을 주장하고 '꿈'을 언급했는데,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이들을 인간적이고 공정하고,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 하라'는 마태복음의 황금률을 인용했다.

사형제도 폐지, 빈부격차 해소도 주장했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미국 의회는 누구보다 훨씬 더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보다 건강하고, 인간적이고 사회친화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의 다른 차원의 진보를 위해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교황의 연설 대부분은 민주당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었다. 연설 막바지에 "안팎에서 가족이 근본적인 관계마저 의문 받고 있다"고는 했지만, 공화당이 우려하는 동성결혼 대신 청소년의 절망만 걱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뒤에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조 바이든 부통령(민주)이 나란히 앉았는데, 표정이 좀 달랐다. 교황의 일방적인 민주당 편들기에 공화당 인사들은 당황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불리한 국면이 펼쳐질 것을 우려해서다. 미국 내 가톨릭 신자만 7000만명이 넘는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는 곳마다 구름 인파를 몰고 다니며 인기를 과시했다. 의사당 앞 광장에는 5만명이 넘게 모여 교황을 기다렸고, 전날에는 1만1000여 명이 백악관에서 환영 행사도 가졌다. 카퍼레이드에도 많은 사람이 몰렸는데, 교황은 불법이민자 가정의 딸을 가까이 오게 해 뺨에 입맞추며 축복했다. 바실리카 국립대성당에서 가진 미사에서는 한국어로 된 '보편기도문'이 낭독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고 권력기관인 의회 연설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노숙자와 극빈자, 이민자를 만나기 위해 성 패트릭 성당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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