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중산층에 날개는 없다

2015. 9. 2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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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모래시계 중산층] 계층 이동에 성공한 줄 알았지만 어느새 빠르게 밀려난 중산층 3인 인터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주저앉아 다시 일어서기 힘든 한국의 현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분석한 2000~2014년 노동패널 자료는 한국 중산층이 붕괴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진행된 '소리 없는 붕괴'는 이석균(45·가명)씨의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겉보기에 그는 어엿한 중산층이지만, 그 속에선 가족 전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씨는 자영업자다. 서울에서 교육 환경이 좋은 곳으로 꼽히는 동네에 살고 있다. 문제는 교육비다. 자녀는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이다. 영어·수학 과외를 받는 등 한창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갈 시기다. 한 달에 사교육비로만 150만원을 쓰고 있지만 "아들이 국어도 과외를 받고 싶다는데 형편이 안 돼 못 들어준 게 미안하다"고 이씨는 말했다.

"대기업에서도 주로 비정규직 위주로 뽑아요. 자식이 공부를 못하면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높아지니까 시키는 건데, 글쎄요. 이제는 교육받는다고 저처럼 살 수 있을까요. 요즘 신문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있는 집 자식들만 유리하니까."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과연 존재하는가

그가 말하는 '있는 집'이란 초상류층을 말한다. 이씨는 어렵게 성장했다. 학비를 마련하려고 고등학교 때부터 중국집 배달, 신문 배달 등을 했다. 어렵게 공부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달동네에 살며 대학에 다녔다. 그리고 1994년 마침내 보험회사에 입사했다. 영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그는 연봉 1억원 가까이 받는 월급쟁이가 됐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성공한 직장인으로 통했다.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진입한 셈이다.

이씨의 삶의 경로는 교육이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시절을 웅변한다. 자녀를 위해 교육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한 것은 이씨 자신의 성장 과정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임금생활자의 지위를 잃어버린 뒤부터 그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지금도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난 9월6일 이씨를 만난 곳은 서울의 한 테니스장 옆 매점이었다. 컨테이너에 들어선 매점 한쪽엔 테니스 용품이, 다른 한쪽엔 음료수 등이 진열돼 있었다. 보험회사에서 중간관리자까지 했던 이씨는 계산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이날 이씨는 1200원짜리 물 2통을 배달하기 위해 아침 6시에 출근했다.

2011년 명예퇴직을 결심할 때만 해도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 "어차피 일반 대학 출신은 임원 달기가 어려우니까 일찍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회사엔 끌어주는 인맥이 없었죠. 능력대로 되는 거지 그런 게 어디 있느냐 하겠지만 그런 게 많아요."

그는 17년간 일하던 직장을 떠났다. 명예퇴직을 신청하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려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그가 회사를 떠난 뒤 얼마 안 돼 거의 정리됐다.

이씨는 퇴직 뒤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음식점을 할 만한 요리 기술도 없고, 인테리어 등 초기 비용이 1억원 넘게 드는 프랜차이즈 빵집은 부담이 너무 컸다. 퇴직금 등을 털어 편의점에 1억5천만원을 투자했다.

편의점은 이씨 같은 중간계급 이탈자들이 대거 뛰어든 '레드오션'이었다. 이씨는 다른 자영업자와 경쟁해야 했고, 이른바 '갑'인 프랜차이즈 본사와도 싸워야 했다. 65(편의점주) 대 35(본사)로 이익을 나누다보니 그가 집에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은 한 달 200만원 정도였다. 그나마도 음료수 판매량만 전국 편의점 가운데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다.

그러나 아이들 교육비에, 생활비에 오히려 빚만 늘었다. 아파트는 전세금을 까먹고 보증금 8천만원에 월세 75만원인 반전세로 바꿨다. 이를 악문 이씨는 또 다른 편의점 하나를 확장하려다 실패했다. 빚만 늘린 이씨는 2년 전 테니스숍 운영권을 얻었다.

테니스장 옆 독점사업권이라는 '블루오션'에 뛰어든 것은 그나마 성공적이었다. 많을 때는 월 700만~800만원을 집에 가져간다. 그러나 테니스장이 썰렁해지는 겨울철엔 수입이 뚝 떨어진다. 수입이 많은 것은 한철이고, 그 소득이 많다 해도 갚아야 할 빚이 더 많다. 이미 퇴직금 전부를 사업자금에 쏟아부은 상태다.

내년엔 절벽으로 몰릴 상황이다. 편의점이 있는 건물의 주인은 빌딩으로 재개발하겠다며 내년 4월까지 나가라고 통보했다. 4년 전에 낸 보증금 4천만원은 휴지 조각이 됐다. "편의점 계약 5년이 내년에 종료되거든요. 갱신하면 보통 점주가 가져가는 몫이 늘어나니까 억지로 버텼어요. 그런 희망도 사라졌죠." 이씨는 "법이 그렇다니까 어쩔 수 없는데 제가 운이 정말 없나봐요"라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테니스숍도 내년에 다시 운영권을 받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나도 산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불과 4년 전 희망퇴직을 택했던 결심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이씨는 이제 와선 헷갈린다. 당시에는 현명한 결심이라 여겼지만, 이제 그는 가정이 해체될까 걱정한다. "빚이 점점 늘어나니까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부부끼리 잘 안 해요. 스트레스 받는 걸 서로 피하려 하니까. 이러다 가정이 파탄 나면 (비싼 주거비를 감당해가며 자녀 교육 환경이 좋은) 이곳으로 안 오느니만 못한 거죠."

그는 노후 준비를 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불안하죠. 예전에 들었던 연금저축, 주식 같은 거 전부 깼고, 지금 버는 돈도 빚 갚는 데 쓰고 있으니까.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50대들이 산속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이 많잖아요. 그걸 보면서 '나도 산에 가야 하는 거 아냐'라고 가끔 불안해져요." 그는 '불안'이라는 단어를 자꾸 꺼냈다.

한국의 많은 40대가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나마 편의점과 매점을 운영하는 이씨의 형편이 낫다고 할 수도 있다. 김정민(44·가명)씨에겐 그런 유의 자산이 아예 없다.

김씨는 2012년 대기업 관리직의 삶을 끝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13년 만이었다. 다니던 건설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그도 사표를 썼다. 지금은 케이블TV 애프터서비스(AS) 기사로 일한다. 중간계급에서 노동자계급으로 옮겨간 셈이다.

김씨는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지방 사립대 출신인 그는 외환위기 뒤 채용시장이 얼어붙은 1999년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했다. "감정평가사 공부를 하다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는데 당시 면접을 보던 건설회사 임원이 '따기 힘든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며 좋게 봐줬다"고 김씨는 웃었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김씨를 빼고는 모두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이었다.

그는 중견 건설업체에 입사한 뒤 결혼을 했다. 결혼 전에 일을 했던 아내와 돈을 모아 2003년에 허름하지만 서울에 있는 아파트도 샀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는 "결혼할 당시 아내가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해서 샀다"고 했다. 김씨는 한 차례 회사를 옮겼고, 옮긴 회사가 큰 건설업체에 인수되면서 연봉이 뛰었다. 아내는 결혼 뒤 아이가 생기자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들·딸 둘을 낳았고 휴가는 제주도에 있는 고급 호텔로 향했다. 김씨는 중산층을 눈앞에 두었던 전형적인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10대 재벌을 향해 도약하던 회사가 무너지자, 중산층으로 향하던 그도 돌부리에 걸렸다. 그는 3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를 그만뒀다. 여러 군데 재취업 자리를 알아봤지만 팀장급이 된 김씨가 옮겨갈 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정규직에서 낙오한 그가 다시 정규직으로 돌아갈 기회는 생기지 않았다. 김씨는 대리운전 기사가 됐다. 대리운전을 하던 중 우연히 만난 손님의 소개로 그는 옷을 갈아입었다. 2013년 1월 김씨는 케이블TV AS 기사가 됐다.

임금 문제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교육비

그래도 그의 수입은 반토막이 난 상태다. 사무관리직으로서 그의 마지막 연봉은 5600만원이었다. 지금은 3천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생활비는 예전에 비하면 아껴쓰죠. 주말에 외식하던 것도 하지 않고, 올해는 휴가 때 어디 가지 않았어요. 아껴쓰다보니 거기에 맞춰지는 것 같아요."

김씨의 생활이 빠듯한 이유는 주거비와 교육비 때문이다. 아파트를 살 때 받은 대출은 김씨가 부모님을 돕는 과정에서 더 늘어났다. 김씨는 월 55만원씩 갚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안심전환대출로 바꿔서 55만원은 그대로인데 원금까지 갚아나가고 있다"고 김씨는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과 4학년인 아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월 70만~80만원이다. 아이들은 태권도장과 드럼학원, 미술학원을 다니고 학습지를 풀고 있다. 아들은 드럼을 배우고 싶어 했고, 딸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학교 등 공교육에서는 제공되지 않았다. 팍팍한 살림에도 김씨가 부담해야 할 몫이 됐다. 주거비와 교육비만 합쳐도 김씨 수입의 대부분을 써야 한다.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내는 일을 시작했다. 약사 보조로 일하는 아내가 월 110만원 정도를 벌자, 수입은 지출과 비슷해졌다.

신광영 교수는 한국 사회의 임금 문제를 논할 때 빠뜨리기 쉬운 게 교육비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안 쓰는 지출이 있다는 것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게 교육비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사교육비 비율이 가장 높다. 공적 방식으로 교육을 해결하면 중산층이 누리는 안정된 삶, 높은 삶의 질을 만드는 게 가능해진다."

그런 교육비까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박기준(50·가명)씨도 "불안하다"고 했다. 박씨는 서울 강남의 한 고층 빌딩에 자신만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25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박씨는 중간계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직장인의 꽃'이라는 임원 직함도 지난해에 달았다. 그에겐 연봉 1억8천만원과 자동차가 따랐다.

3년 전까지 맞벌이를 한 아내와 함께 2009년 서울 시내에 있는 아파트를 장만했다. 단칸방에서 시작해 42평 아파트로 늘렸다. 집을 살 때 받은 대출은 다 갚았다. 두 아이에게 드는 사교육비 170만원은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아이들은 영어와 수학뿐만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프로그램도 듣고 있다.

박씨의 삶은 대한민국 중산층의 꿈일지 모른다. 물려받은 재산이 특별히 없더라도 노력해서 4년제 대학을 가고, 대학 졸업 뒤 열심히 일해 임원까지 됐다. 그는 출근하기 전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며 건강도 다진다.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매달 250만원을 저축한다. 그런 그는 왜 불안할까.

연봉 1억8천만원 임원, 그도 불안하다

"주위 친구 10명 가운데 두세 명만 지금 직장을 다녀요. 그들도 언제 그만둬야 할지 항상 불안해하죠. 저도 언젠가 퇴사를 하면 아이들을 대학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돈을 벌면서 부담하는 것과 돈을 벌지 않으면서 부담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죠."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나중에 자신을 부양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씨 자신은 20여 년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그에게 스스로 중산층으로 여기냐고 물었다.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해요." 상류층은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상류층?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장 정도 돼야 상류층이죠."

모두가 몸부림이다. 중산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무너지고 있는데, 중산층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길은 도처에 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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