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사진도 논란인데 동영상을 내라고?

2015. 9. 2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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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Jtbc 신입 전형 논란… 지망생들 "무리한 개인정보수집, 미국 같았음 고소감"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스마트폰으로 '내가 보듬어주고 싶은 대상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40초 이내)를 제작해 온라인에 올리고 동영상 주소를 적으세요."

올해 중앙일보·Jtbc 통합공채 1차 전형을 위한 자기소개서 문항 중 일부다. 채용안내에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말하는 장면'이 필수라고 설명돼 있다. 하지만 이미 입사전형에 카메라테스트가 있음에도 1차 전형에까지 사진을 물론이고 동영상을 요구하는 것은 인권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중앙일보·Jtbc 신입채용에선 기자·PD·아나운서·경영지원·편성홍보·디지털 분야 입사지원자 중 기자직과 아나운서 지원자들은 이력서, 자기소개서와 함께 40초 분량의 셀프동영상을 제출해야 한다. PD직은 셀프동영상 대신 프로그램 개선안을 작성해 제출한다.

▲ 2015년 중앙일보·Jtbc 통합공채 1차 전형 자기소개 3번 문항의 세부사항. 사진=중앙일보 채용 홈페이지

1차 지원서에 얼굴과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을 제출하는 언론사는 중앙일보·Jtbc와 함께 채널A 방송기자직이 있다. 중앙일보 인사팀 관계자는 "중앙일보의 기자직 같은 경우 Jtbc와 통합공채로 진행되고 있고, 방송과 신문 모두를 겸할 수 있는 인재상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동영상 제출을 요구했다"며 "동영상에서 외모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기자로서 기획력이나 자질을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기자로서의 어떤 자질을 중점적으로 보느냐'는 질문엔 "아이디어와 창의성과 같은 부분은 실제로 기자가 됐을 때 취재 아이디어를 짤 때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중요하게 평가한다"면서 "외모가 평가기준에 있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PD직엔 동영상을 제출을 요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PD 전형 같은 경우는 전형위원이 따로 구성됐고 전형위원들이 요청하지 않아서 동영상을 제출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 2015년 중앙일보·Jtbc 통합공채 일정.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하지만 기자 지망생들 사이에선 서류전형에까지 동영상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과도한 개인정보수집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기자 지망생 A(28·남)씨는 "차라리 외모를 본다고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겠다"라며 "동영상을 통해 아이디어나 기획력을 본다면 PD 전형에도 동영상을 제출하게 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자 지망생B(27·여)는 "방송기자니까 외모를 평가한다는 입장은 어느 정도 수용하지만 1차 평가에서부터 동영상을 제출하라는 것은 부담이다"며 "3차에 카메라테스트 전형이 있는데 왜 별도로 1차 지원부터 동영상을 제출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개인정보 전문가인 김경환 변호사는 "직무성격상 외모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별도의 테스트나 면접에서 충분히 판단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확인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1차 지원 전형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내라는 요구는 행정상 효율성이 기하기 위한 것 같다"며 "방송기자 전형이라고 할지라도 1차 전형에서 동영상을 내는 것은 무리한 개인정보수집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부터 표준 이력서 작성을 제안해 온 청년유니온의 정준영 정책국장도 "아무리 방송기자라고 하더라고 채용과정 어느 단계에 어떤 정보를 요구할 것인지 세심한 검토 없이 1차에서부터 동영상을 요구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며 "동영상을 낼 때 구직자들이 들여야 할 비용과 품을 고려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아이디어 도용이나 지원 이후 개인정보 폐기에 관한 문제에도 민감하지 못한 전형 절차"라고 비판했다.

▲ 표준 이력서 양식 일부. 고용노동부는 지난 2007년부터 사진이나 가족관계 칸을 없앤 표준 이력서를 권장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지원서에 사진 등을 부착하는 것이 해외에서는 불법이라고 지적한 지망생도 있었다. 기자 지망생 C씨(26·여)는 "미국에서는 이력서에 사진을 제출하는 것도 고소감이라고 들었다"며 "1차지원에서 동영상까지 제출하라고 하니 화가 나긴 하지만 지원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열심히 만들어서 내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캐나다·호주 등에서는 이력서에 △이름 △전화번호 △주소 정도만 기재하며, 사진 제출 금지가 의무화돼있다. 프랑스 역시 2014년 50명 이상 직원을 가진 대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사진 부착은 물론,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익명 이력서를 법제화했다.

지난해 9월15일 방영된 Jtbc의 '비정상회담'에서는 한국에서 공공연하게 입사 시험 원서에 사진을 부착해야하고, 키와 몸무게, 가족사항까지 적어야 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 방영됐다. 패널 가운데 한 명인 미국 국적의 타일러 라쉬는 이날 방송에서 "한국에 와서 인턴십을 찾는데 사진을 붙인단 사실을 듣고 너무 충격적이었다"며 "미국 같은 경우 이력서에 사진을 부착할 경우 차별을 당할 수 있기에 금지됐고, 이런 요구를 할 경우 지원자가 회사를 고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2014년 9월15일 방영된 Jtbc의 '비정상회담' 11화 화면 갈무리. 사진=Jtbc

한국에서도 '표준 이력서'를 제작해 지원과정에서 외모나 성별, 나이 등을 알아볼 수 없게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07년부터 사진이나 가족관계 칸을 없앤 표준이력서를 권장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여·야 모두 이력서 사진 부착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었다.

2012년 주영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고용정책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현행법상 사업주는 근로자의 모집·채용 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이나 신체조건 등을 이유로 취업희망자를 차별할 수 없다"며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직무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신체적 조건 또는 이와 관련된 사진의 부착 등을 제시·요구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외모를 중시하는 채용 관행을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입법 취지를 밝히고 있다.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 등 12인의 의원들도 같은 내용의 법률안을 2013년 발의했지만, 이들 관련 법안은 2년이 지나도록 계류 상태에 있다.

이처럼 법안이 오래 계류된 상황에 대해 정준영 정책국장은 "정당들이 법률안을 발의하긴 했지만 무관심 속에 방치된 측면이 있고 실제로 민간 기업에 규제를 가할 의지가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며 "법안을 낼 때는 빠른 시일 내에 청년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겠다고 언론용으로 선전했지만 이후 실제로 법을 관리하지는 않았다"고 비판했다.

청년유니온 측은 표준 이력서 작성 외에도 △구직자들이 제공해야 할 정보 중에서 차별을 부를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해야 할 것 △채용 후에는 개인정보를 돌려받을 수 있을 것 △채용 절차 이후 개인정보를 폐기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것 △기업들도 구직자들에게 기업정보(임금, 근로시간 등)를 상호교환 할 것을 명시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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