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포커스]매매보다 비싼 전셋집의 '진실'

박종오 2015. 9.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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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매매보다 비싼 전세의 등장?’

요즘 전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죠. 얼마 전에는 급기야 전셋값이 집값을 뛰어넘은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서 화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잘 이해할 수가 없군요. 아무리 전세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 해도 그렇죠. 집값보다 비싼 전세금을 선뜻 치르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요? 자칫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보증금 떼이기 십상인데요.

이상한 일입니다. 먼저 보도 내용을 살펴봐야겠군요.

◇수도권 아파트 29곳, 전세≥매매가

‘부동산114’가 지난달 서울·수도권에서 매매와 전세 거래가 이뤄진 아파트 실거래가 신고 자료를 분석해 봤다고 합니다. 한국감정원이 제공한 자료였는데요.

어떤 자료인지 성격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원래 국토교통부가 매달 발표하는 매매 거래량은 거래 신고일을 기준으로, 전·월세 거래량은 임대차 계약서에 확정일자 받은 날을 기준으로 집계하죠. 매매의 경우 집주인과 매수자가 거래 계약을 맺고 60일 안에만 시·군·구에 이를 신고하면 되니 8월 매매 거래량에는 보통 6~7월에 계약한 물량도 포함되곤 합니다. 전·월세도 마찬가지죠. 7월에 집주인과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을 맺었더라도 8월에 주민센터 등에서 확정일자를 받았다면 8월 거래량으로 집계됩니다.

하지만 부동산114가 분석한 감정원 자료는 좀 달랐다고 하네요. 올해 8월 중 매매 계약과 거래 신고를 둘 다 했고, 전·월세 거래도 임대차 계약과 확정일자 수령 모두 8월에 이뤄진 물량을 따로 분류했다는 건데요.

부동산114 분석 결과, 지난달에 매매와 전세 거래가 동시에 이뤄진 서울·수도권 아파트 1291개 주택형 중 약 12%인 155개가 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 이른바 전세가율이 90%를 넘었다고 합니다. 아파트값이 10억원이면 같은 아파트 전세는 9억원 이상에 계약됐다는 이야기인데요.

△자료=부동산114
특히 전세가율이 90% 이상인 아파트 155개 중 29개는 전세금이 매매가와 같거나 오히려 비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아파트가 서울에 9곳, 경기도에 17곳, 인천에 3곳 있었고요.

정말 전세와 매매의 ‘역전 현상’이 벌어진 걸까요?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국민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이 70.9%였거든요. 인천과 경기를 합한 수도권이 72%, 서울에서 제일 높다는 성북구도 지난달에 막 80%를 넘었습니다. 집값이 10억원인 아파트 전세가 높아봐야 8억원 정도라는 이야기인데요.

부동산114에 요청해 분석에 사용한 실거래 자료를 받아 다시 뜯어봤습니다.

◇알고보니 ‘전세 최고가·매매 최저가’ 비교

아뿔싸. 일단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야겠군요. 전세금이 집값과 같거나 웃돈다는 29개 아파트는 매매와 전세 실거래가 ‘평균’을 비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8월 한 달 동안 수도권에서 거래된 아파트는 당연히 여러 채였을 텐데요. 기사가 인용한 것은 지난달에 가장 비싸게 계약된 전세 매물과 가장 싸게 팔린 매매 물건이었습니다. 실거래가 평균이 아니라 ‘전세 최고가’, ‘매매 최저가’를 비교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래서 평균값을 기준으로 다시 대조해 봤더니 집값과 같거나 이보다 비싼 전세 아파트가 최초 29개에서 10개로 확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어쨌든 전셋값보다 더 싸게 팔린 집이 있었던 건데요.

혹시 이 아파트들이 시세보다 너무 낮은 가격에 팔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집주인 사정으로 집값을 대폭 낮춰 내놓은 급매물이거나 양도소득세 같은 세금을 덜 내려고 다운 계약서를 쓴 특이 사례 일수도 있으니까요.

◇매매 시세보다 비싼 전세 ‘1곳’뿐

먼저 국민은행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아파트 매매 시세와 이 실거래가를 비교해 봤습니다. 국민은행이 제공하는 정보는 동네 부동산 중개인이 매달 시세를 직접 입력해 나름대로 신뢰할 만 하거든요. 그랬더니 전세 최고 거래가격이 8월 평균 매매 시세보다 더 비싼 건 단 1곳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 아파트는 매매 시세가 전셋값보다 적게는 1000만~2000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 이상 높았죠.

예를 들어볼까요. 서울 노원구 상계동 ‘은빛 2단지’ 아파트 전용면적 59.95㎡, 24평형을 보죠. 이 아파트는 8월에 10층 전세와 4층 매매 둘 다 2억 4000만원에 거래됐습니다. 집값과 전셋값이 같았던 거죠.

아파트 근처 중개인 분께 자초지종을 물어봤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요. 그랬더니 이분 얘기가 매매가 2억 4000만원이면 본인이 보기엔 ‘싸도 너무 싼’ 매물이라고 하네요. 아무리 저층 아파트라도 2억 6000만원은 줘야 하고, 요즘 평균 시세는 2억 8000만원을 넘는다는 거죠. 그럼 이 실거래 신고된 자료는 대체 무엇이냐고 다시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거래를 알선한 중개인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할 때 아파트 평수를 잘못 적은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 거래가격이 21평 수준인데, 21평을 거래하고 실수로 24평이라고 신고한 것 같다는 이야기였죠. 이런 실수가 종종 있다고 하는군요.

전세는 집주인이 아파트를 새 집처럼 싹 수리해놓고 담보 대출도 끼고 있지 않다면 최고 2억 4000만원까지는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실제 거래가격이 맞는다는 거죠. 일반 전세 매물 시세는 대략 2억 1000만~2억 3000만원 정도라고 하고요.

◇전셋값 밑돈 25개 아파트 “너무 싸게 팔렸네”

검증을 한 번 더 했습니다. 국민은행 매매 시세가 실제 거래가 가능한 가격보다 높은, 집주인이 부르는 호가일 수 있으니까요.

이번엔 8월 이전, 올해 5월에서 7월까지 3개월간 계약이 이뤄진 실제 매매가격 평균을 구해봤습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경기도 부동산포털’, ‘인천시 지도포털’에서 가격을 확인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 3개월 동안의 평균 매매 실거래가가 8월 전세 최고가보다 낮은 것은 4곳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집값이 전세와 같거나 되레 낮은 것으로 나타난 나머지 25개 아파트는 보통 거래되는 금액보다 너무 싸게 팔린 집이었다는 이야기지요.

아주 이상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호계삼익’ 아파트 전용면적 59.85㎡, 24평은 8월에 8층이 1억 8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맺고, 4층이 1억 2500만원에 매매 거래됐습니다. 전셋값이 집값보다 무려 5500만원이나 비쌌던 건데요.

하지만 5~7월 이 아파트 평균 매매 실거래가는 2억 600만원이었습니다. 불과 한 달 만에 집값이 8000만원 넘게 폭락할 리는 없으니 의문이 들 수밖에요. 주변 중개업소에서도 대체 무슨 소리냐고 하더군요. 요즘 집값이 계속 올라서 매매 시세가 2억 3000만~2억 4000만원 선이라면서요. 전세 매물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집주인이 2억 2000만원 정도까지 가격을 부르기도 하지만, 집값보다 비싼 전세는 아직 본 적이 없다고요.

감정원은 원래 이렇게 정상적이지 않은 거래 사례를 걸러내 공개하지 않습니다. 자체 조사한 주택 시세를 100이라고 했을 때, 아파트의 경우 매매가격이 170을 초과하거나 60 미만이면 ‘이상 매물’로 분류하는데요. 이 사례는 최하위 가격 기준을 간신히 맞췄거나, 감정원이 실수로 정상 매물로 분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매매보다 비싼 전세’ 사실은 드문 사례

두 차례 검증 결과, 이번 자료에서 전셋값이 과거 거래된 매매 평균 가격이나 현재 시세보다 비싼 건 단 1개에 불과했습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보람 1단지’ 전용면적 44.33㎡짜리 초소형 아파트 한 채 뿐이었죠. 입주한 지 30년 가까이 된 낡은 아파트여서 집값 상승 기대감이 작다 보니 전세가 나 홀로 오름세를 탄 것으로 보이는데요.

결국 ‘매매보다 비싼 전세’라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좀 과장된 이야기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집값과 전세금 차이가 바짝 좁혀진 것은 사실이지만요. 국토부도 언론 보도 이후 직접 사례 조사를 한 결과, 5개 사례 정도만 전세가 집값과 같았을 뿐 나머지는 모두 전셋값이 매매가보다 낮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번처럼 전세가 매매가를 넘어섰다는 류의 기사가 많이 노출되면 전세 상승을 부추길 수도 있는데요. 집주인들이 기사를 읽고 ‘그럼 나도 전세 좀 올려볼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는 이런 게 대단히 드문 사례라는 점을 집주인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전세 거주자분들도 ‘혹시 우리 집도 집값보다 높은 보증금 달라는 것 아니냐’ 그런 근심은 조금 덜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8월 전세 최고가와 매매 최저가, 5~7월 매매 실거래가, 8월 매매 시세 비교 [단위:만원, 자료:부동산114·국민은행 등]
△8월 전세 최고가와 매매 최저가, 5~7월 매매 실거래가, 8월 매매 시세 비교 [단위:만원, 자료:부동산114·국민은행 등]

박종오 (pjo2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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