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즈볼라, 그의 사전엔 타협이란 없어

파리/이성훈 특파원 2015. 9. 1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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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노동당 강경좌파 당수, 제러미 코빈 집중 탐구] - 정치도 사랑도 타협 없어 모친 임종때도 집회 참여.. 애들 학교 놓고 아내와 갈등.. 결국 이혼, 세번째 결혼 - 맥주 한잔 하고싶은 사람 "그의 이념엔 동의 안해도 그의 인간성 대부분 좋아해"

지난 12일(현지 시각) 영국 노동당의 새 당수로 선출된 제러미 코빈(66)이 공식 행사가 끝난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의회 근처에 있는 맥줏집(펍)이었다. 탁자 위에 올라선 코빈은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손을 높이 들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인민의 깃발은 붉게 물들고, 우리의 시체를 감싼다…." '적기(the red flag)'라는 제목의 노래였다. 한때 노동당의 공식 주제가처럼 불렸으나 1997년 중도 노선인 '제3의 길'을 주장하며 집권한 노동당 출신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시절 이후 사실상 금지된 곡이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코빈의 승리로 (노동당에) '붉은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노동당 당수 선거 전까지 코빈은 당내에서조차 '또라이 좌파(loony left)'라고 불리던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코빈은 전기 기술자인 아버지와 수학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사회주의자였던 부모가 만난 곳은 스페인 내전에 반대하는 캠페인 현장이었다. 사립 초등학교와 진학 중심 중등학교(grammar school)에 진학했지만 별 흥미가 없었다. 데일리메일은 "코빈은 학교에서 하는 제식 훈련을 거부하기도 했다"며 "대신 반핵(反核)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노동당에 가입한 것이 열여섯 살 때였다.

고등학교 졸업 성적도 낙제점에 가까웠다. 그는 대학 진학 대신 자메이카로 2년간 자원봉사를 떠나 영어 등을 가르치며 지냈다. 그곳에서 지금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국재단사노조연맹(NUTGW)과 전국공무원노조(NUPE) 등 노조에 들어갔다. 1974년 런던 시내 구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발을 디뎠다.

의원이 된 후로도 코빈은 북아일랜드 독립, 군주제 폐지, 전쟁 반대 같은 정치적 신념에서 타협하지 않았다. 1984년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당시 대처 총리를 암살하기 위해 보수당 전당대회에 폭탄을 터뜨렸다. 이 테러로 5명이 숨져 영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하지만 코빈은 그 직후 IRA 조직원 2명을 런던에 초청해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 등에 대해 폭로하도록 했다. 군주제 폐지 단체에 가담하고, 같은 당 소속 블레어 전 총리가 결정한 이라크전 파병에 공개적으로 반대 운동을 벌였다. 가디언은 "코빈은 의회에서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며 "대부분 장외 시위 등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당시에도 그는 좌파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코빈은 이런 원칙주의자 이미지 때문에 보수파로부터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인 '헤즈볼라'에 빗대 '제즈볼라(제러미+헤즈볼라)'라 불렸다.

사생활에서도 타협보다는 자신의 뜻을 고집했다. 1974년 코빈은 노동당에서 만난 여성 제인 채프먼과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5년을 넘기지 못했다. 채프먼은 "코빈은 외식하고, 극장 가고, 쇼핑하는 것 같은 일반인들의 생활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칠레 이민자 출신의 디자이너였던 두 번째 부인 클라우디아 브래키타와 세 아이를 뒀다. 하지만 코빈은 아이를 일반 중학교가 아닌 수월성 교육이 가능한 진학 중심 학교에 보내겠다는 브래키타를 공개 비판했고, 결국 둘은 갈라섰다. 코빈은 2013년 스무 살 연하의 커피 수입상 로라 알바레스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코빈은 늘 구겨진 와이셔츠의 주머니에 볼펜과 잡동사니를 넣고 다니는 등 패션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정치인으로 꼽혀 왔다. BBC방송은 "코빈은 맥줏집에 앉아 이야기하기에 참 편안한 사람"이라며 "그의 이념에는 동의하지 않아도 그의 인간성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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