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전업주부가 '맘충이'?..왜 이들이 욕을 먹어야 하나

심영구 기자 2015. 9. 1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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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업주부에 대한 어떤 비난, '맘충이'

엄마란 얼마나 위대한지, 모성 보호를 위해 모두들 힘써야 한다고(그러니 여성들은 아이를 낳아야 한다며) 상찬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엄마들이 '맘충이'가 됐다. 특히 전업주부가 그렇다. 최근의 '여성 혐오'와 맞물려 자기 아이만 아는 일부 엄마들에 대한 비난이 '맘충이'까지 왔다는 건 알겠는데 '고귀한 모성'에 대한 찬양과 대비해보면 심하다.

특히 미취업 상태인 전업주부에 대해서는 "남편이 뼈빠지게 벌어오는 돈으로 카페나 백화점 등에서 빈둥대며 애 데리고 민폐 끼치는 그런 '맘충이'라거나 "전업주부면 집에서 애나 키우는 게 당연한데 애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놀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이런 비난의 연원을 따지면 더 멀리 있겠으나 가까이는, 엉뚱하게도 보건복지부 장관 같다.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은 지난 1월 22일 기자들과 만나"전업주부가 종일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 보육할 이유가 없다"며 전업주부의 불필요한 어린이집 이용을 제한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를 정책으로 잘 포장해 만든 게 '맞춤형 보육'이다. 부모의 필요에 따라 보육 형태를 다르게 하겠다는 건데 표현은 다르나 내용은 문 전 장관이 말한 그대로다. 전업주부가 필요하지도 않은데 어린이집에 맡긴다? (그러고 놀고 있다?) 

당장 맞벌이와 외벌이에 대한 차별 논란이 일었고 전업주부 중심으로 비판이 거셌다."가사·육아노동의 가치를 복지부 장관이 폄하했다" "출산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관둔 경우도 많다"등 항의가 커지자 복지부는 진화에 나섰다. 당시 해명자료 내용이다.

○ 우리부는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이용 제한을 전혀 검토 한 바 없음
  - 다만, 전업주부의 자녀가 어린이집 이용과 가정양육이 적절히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 시간제 보육 확대 등 다양한 가정양육 활성화 정책을 마련하겠음

○ 또한, 이와 함께 부모의 보육서비스 선택권을 강화하는 맞춤형 보육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임

● 15만 명 VS. 15만 명…우연의 일치?

8개월 정도 지나보니, 복지부의 이런 해명은 '립 서비스'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1월의 해명과는 달리 결국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이용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전엔 어느 어린이집에 보낼지만을 놓고 경쟁했으나, 내년부터는 종일 맡기기 위해서도 경쟁하게 생겼다.

'구직 중이거나 직업훈련을 받고 있거나,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장애나 질병이 있거나 환자를 돌봐야 하거나, 자녀가 많거나 임신 중이거나, 한부모이거나, 저소득층이거나'... 이런 사유에 해당하는 '전업주부'만이 아이를 종일 맡길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6~8시간 사이로 정해질 '맞춤제'을 원치 않아도 적용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를 놓고 복지부는 "부모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방안이며, "이용 제한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전업주부가 타겟도 물론 아니라고 했다.

현재 전업주부의 자녀 중에 어린이집에 다니는 2세 이하 영아는 약 15만 명이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서 종일제와 맞춤제를 80: 20 비율로 조정하겠다며 예산을 편성했는데 6~8시간으로 보육시간을 제한하는 맞춤제에 해당하는 영아는 15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정말로 공교롭게도 어린이집 보내는 전업주부의 자녀 수와 일치한다. 어쩌다보니 우연히 그렇게 됐을까?

● "국가가 책임진다"던 '무상보육'

이른바 '무상보육'이 연원이다. 2012년까지는 소득 하위 70%까지만 보육료 지원대상이었다. 나머지는 유상이었다. 그런데 2013년 3월부터 5세 이하 영유아는 전부 보육료 지급 대상자가 됐다. 2012년 예산을 짤 때만 해도 아니었는데 대선을 거치면서 국회에서 덜컥 그렇게 결정했다. 그렇게 갑자기 늘려야 했던 예산이 무려 2조 4천억 원이었다.

2012년과 2013년 계속 보육료 지원 대상을 늘려오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갈등을 빚었다.(여야 가릴 것 없이 단체장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던 것 기억날 것이다.) 그래서 국고보조율을 늘리고 3~5세는 누리과정으로 넘기는 등 정부 입장에서도 이리 저리 머리를 쓰면서 버터왔다. 기초연금은 대선공약으로는 노인 100%에게 지급하겠다고 했했다가 정권 출범 이후엔 소득 하위 70%로 바꿔버렸다. 이제 무상보육까지 왔다. 무상보육을 슬그머니 '맞춤형 보육'으로 바꾸면서 수술대에 올렸다. 

'무상보육'을 주창할 당시 여당이나 정부의 설명은 대략 이러했다."여러분의 아이,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그러면서 어린이집에 보내면 보육료를 지원하고, 가정 양육을 하면 양육수당을 최대 20만원 지급했다. 그러니 어린이집에 보내야겠다 싶은 부모들은, 비용 부담이 줄었으니 이전보다 더 보냈다.

2011년엔 2세 이하 영아의 28.6%가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2014년엔 35.4% 정도가 다닌다. 7% 정도 늘었다. 많다면 많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여전히 3분의 2 정도는 가정 양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도 영아 양육이 가급적 어린이집에서 하는 게 낫다는 걸 알기에 그렇다. 정부가 책임진다고 해서 어린이집에 보냈던 부모들, 특히 전업주부들이 왜 욕을 먹어야 할까.

●'맞춤형 보육' 필요하지만…

아이들의 어린이집 평균 이용 시간은 7시간 39분이다. 취업한 엄마는 8시간 13분, 취업 상태가 아닌 엄마-전업주부는 6시간 42분이라고 한다. 현재 12시간 종일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맡기고 있으니 이를 조정하는 건 필요하다. 그러려면 부모의 수요에 맞춰 시행하는 게 맞다.

말로는 부모의 수요에 맞춘다면서도 시범사업에서 나타난 수요는 무시하고, 예산을 할당해놓고 전업주부를 강제로 "맞춤제 하세요"하고 내몰려는 이런 행태는 신뢰받기 힘들다. 전업주부는 내몰리는 상황도 억울한데 졸지에 불필요하게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 국가 재정도 갈취하고 아이도 방치하는 '맘충이'가 돼 버렸다. 이런 욕은, 감당할 수 있는지도 가늠하지 않고 '무상보육' 카드를 던졌다가 2-3년 만에 정책을 되돌리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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