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강경좌파의 귀환.. 저무는 중도주의 시대

정건희 기자 2015. 9. 14.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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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사회주의자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 선출
영국 노동당 새 대표로 선출된 제러미 코빈이 12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손을 흔들어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제1야당 노동당의 당수로 강경 좌파인 제러미 코빈(66) 의원이 선출됐다. 반(反)긴축·반(反)민영화를 강조해 온 정통 사회주의자 코빈 신임 당수의 부상으로 같은 당 출신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주창, 20세기 말∼21세기 초를 풍미했던 중도주의 ‘제3의 길’은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코빈 의원은 12일(현지시간) 발표된 1차 투표 결과 과반을 훌쩍 넘긴 59.5%의 지지를 얻어 다른 세 후보를 압도했다. 후보 신청 마지노선인 35명의 의원지지조차 가까스로 넘겼던 전형적 비주류 의원임에도 본선 레이스에서 줄곧 선두로 치고 나선 끝에 ‘언더독(우승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의 반란’을 완성해 냈다. 지난 5월 총선에서 무기력한 참패로 정권 교체에 실패한 당 주류에 대한 실망감이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위기’를 강조하며 긴축과 복지 축소에 반대해 온 코빈 의원에 대한 노동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그는 당선 연설에서 보수당 정권을 겨냥해 “끔찍할 정도의 불평등과 불공평한 복지 시스템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정치는 변할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선 후 첫 일정으로 런던 총리관저 인근에서 대규모로 치러진 ‘난민과의 연대’ 집회를 택해 “절망 속에 피난처를 찾는 이들에게 여러분의 마음을 열자”며 난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코빈 의원은 노동당의 승리를 위해 전통적 좌파 공약을 과감히 버리고 중도세력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블레어 전 총리의 ‘신노동당’ 노선에 반대한 ‘사회주의 캠페인 그룹’의 일원이다. 전국공무원노조(NUPE) 출신으로 33년간 하원 의원을 지내며 500여 차례나 당론과 맞서는 투표를 행사할 정도로 반(反)기득권이라는 좌파 가치 사수에 천착했다. 선거 기간 내내 그는 보수당 정부의 재정 긴축을 강력히 거부할 것을 공약하면서 재정적자 축소의 해법으로 기업과 부유층의 탈세 방지를 내세웠다. 또 철도, 에너지 등 국가기간산업의 국유화에 대한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해 왔다.

코빈 의원의 약진이 대서양 건너에서 한창 달아오르고 있는 미국 대선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샌더스, 코빈, 민주당에 다가올 논란’이라는 기사를 통해 버니 샌더스(74·버몬트) 상원의원이 민주당 경선 초반 일으키고 있는 돌풍이 코빈을 선택한 영국 노동당 지지층의 반기득권 정서와 밀접히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수년간 압도적 차기 주자로 인식되던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과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는 샌더스 의원의 약진에는 중도주의에 대한 실망과 강성 좌파에 대한 진보진영의 갈증이 깔려있다는 지적이다.

힐러리 전 장관과 그의 배우자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블레어 전 총리와 함께 중도주의의 전성기를 구가한 인물들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2000년대 초반 글로벌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전 세계적 의제로 부상한 부의 불평등,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중도 진보에 대한 환멸이 유권자의 시선을 보다 강경한 사회주의적 처방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코빈이나 샌더스와는 이념적 대척점에 있지만 미 공화당 경선에서 극우 세력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69)의 인기 또한 ‘중도주의의 위기’라는 시대상으로 귀결된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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