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재개발의 또다른 그늘 '북한산 들개'를 어쩌나

김기범 기자 2015. 9. 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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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 쫓겨나며 방치

산으로 숨어들어 ‘야생화’

서울시·경기도 살처분 방식

“잔인하다” 반대 목소리

인근 주민들 포획된 유기견

“불쌍하다” 몰래 풀어주기도

한낮 기온이 35~36도까지 치솟던 지난 7월30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의 한 재개발구역에선 방호복까지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버려진 개들을 포획해 보호하기 위해 나선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활동가들이었다. 동물 포획틀을 설치하는 얼굴마다 구슬땀이 흘렀다. 방호복은 감염을 막기 위한 1차 안전장치다. 이날부터 9월 초까지 이 재개발구역에서 잡은 유기견은 150개체가 넘었다. 집과 골목길 곳곳을 오가다 잡힌 개들은 카라가 고양시에 마련한 임시보호소로 옮겼다.

카라 활동가들이 폭염 속에서 유기견 포획작전에 뛰어든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버려진 개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이곳 유기견들이 인접한 북한산으로 들어가 야생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한여름의 유기견 구조활동이 북한산 탐방객이나 인근 주민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살려주세요”‘카라’ 활동가가 경기 고양시 지축동 재개발구역에서 구조한 새끼 강아지를 임시보호소에서 보살피고 있다. 카라 제공

전국의 어느 재개발구역에서든 버려진 유기견의 운명은 참혹할 수밖에 없다. 늘 굶주린 채 먹이를 찾아 헤매다 서서히 죽어가거나, 로드킬로 목숨을 빼앗기는 개들이 대부분이다. 속칭 ‘개장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잡혀 도살당하는 일도 있다. 대부분 세 가지 중 하나의 참혹한 미래를 맞이하지만, 지축동처럼 인접한 산이 있는 재개발구역의 개들은 선택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산으로 들어가 야생하는 것이다.

실제 고양시 지축동에서 멀지 않은 서울 은평뉴타운지구에서 10여년 전 버려진 개들의 상당수는 북한산으로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와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도 대규모 재개발사업 당시 주민들이 이주하며 방치한 반려견들로 보고 있다.

북한산에 들어간 유기견 중 야생에 적응한 개체들은 번식을 통해 늘어났고, 2010~2011년부터 북한산에서 유기견을 목격했다는 탐방객이나 주민들이 급증했다. 2009년부터 북한산에서 포획된 유기견 수만 315마리에 달한다. 북한산을 점령해 사람들을 위협한다고 언론에 보도된 ‘들개’들의 정체는 바로 재개발지역에서 버려진 유기견과 그 ‘자손’인 셈이다.

카라 활동가들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유기견의 야생화를 막고, 안전한 곳으로 돌리는 ‘포획작업’에 지방자치단체나 소방서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고양시 담당자는 상사에게 보고하겠다는 대답만 되풀이했고, 인근 소방서는 사람이 위협을 당하거나 위험에 빠진 때가 아니면 법규상 출동할 수 없다는 응답을 보내왔다. 언젠가 지자체의 ‘큰일’로 돌아오는 유기견 보호엔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카라 전진경 이사는 “동물 보호와 시민 안전을 위해 정부나 지자체가 담당해야 하는 유기견 포획과 보호를 동물보호단체가 대신하고 있지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며 “유기견을 포획해 보호하고, 새 주인을 찾아 입양보내는 것은 ‘북한산 들개’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북한산으로의 유입을 막고 점차 유기견 수를 줄여나가는 유일한 방법이 포획이라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막지 못하고, 유기견들이 야생에 적응하면 훗날 서울시와 국립공원사무소가 북한산에서 들개를 포획하는 작업은 몇 갑절 힘들어지거나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7월30일 동물보호단체 ‘카라’ 활동가들이 경기 고양시 지축동의 재개발구역에서 구조한 유기견들을 승합차량에 싣고 있다. 카라 제공

실제 서울시와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가 북한산에서 해오고 있는 유기견 포획은 벽에 부딪혀 있다. 2012년 이후 해마다 60~70개체를 잡고 있지만 포획한 개들은 대부분 성견이 아닌 새끼들이다.

올해 포획한 66개체 중에서도 성견은 16마리뿐이고, 50마리는 덜 자란 새끼들이었다. 여전히 야생에 적응한 성견 40여개체가 남아 있는 셈이다. 서울시는 “이미 포획틀에 대해 학습한 성체는 잡기가 어렵고, 새끼 위주로 포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진경 이사는 “눈도 제대로 못 뜨거나 어미 젖에 의존하는 어린 새끼들을 잡아다 10일 동안 가둬둔 후 살처분하는 것은 서울시나 국립공원으로서도 못할 노릇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기견의 살처분은 북한산 인근 주민들이나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립공원사무소가 설치한 포획틀에 유기견들이 잡혀도 주민들이 불쌍하다며 풀어주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골칫거리가 된 들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찬성하지만 잡아 죽이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한 대응이라는 의견도 많다는 것이다.

아파트 재개발구역에선 왜 유기견이 많이 생길까. 반려동물을 방치해 원인을 제공한 재개발지역 주민들 역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면서 반려견을 챙길 여유가 없어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전·월세를 살던 사람들은 개를 기를 수 있는 방을 다시 얻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지난 5월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에 북한산 유기견들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해줄 것을 건의했다.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되면 ‘필요한 조치’, 즉 포획 등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생화되지 않은 반려동물들은 포획하면 살처분하지 않고 다시 순화시켜 입양시킬 수 있는 길도 있다.

전진경 이사는 “활동가들이 지축동에서 포획한 개들을 순화해 입양시키고 있다”며 “특히 어린 새끼들은 입양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그러나 카라가 여름 내내 포획해 임시보호소에서 보호해온 유기견 150여개체의 운명은 아직도 불안정한 상태다. 고양시가 임시보호소 철거를 요구하면서 다시 들개가 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전 이사는 “유기견 포획은 나몰라라 했던 고양시가 카라에서 설치한 비닐하우스를 불법 건축물로 규정하고 행정대집행까지 실시할 수 있다는 통보를 해왔다”며 “고양시는 유기견들을 다 풀어놔 들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언젠가 지자체에 ‘궂은일’로 돌아올 재개발지역 유기견 문제에 대해 좀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요구였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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