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슨 스포일러야?" 스포일러, 그 정의에 대하여

강효진 2015. 9. 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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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진 기자]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시원과 성나정 남편의 정체는 스포일러일까, 아닐까? 지난 주 밝혀진 '복면가왕' 출연자는 말하고 다녀도 될까? '더 지니어스'의 이전 시즌 우승자는 아직 안 본 사람들을 위해 계속 비밀로 해야 하는 걸까?

스포일러란 서사 구조를 지닌 장르의 예비 관객에게 관람의 흥을 깰 정도의 지나친 사전 정보를 전하는 사람이나 행위를 일컫는 표현이다. 보통은 상영 중인 영화를 대하는 관객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매너로 꼽혀왔다.

그런데 이 '예비 관객'의 경계는 따지고 보면 참 모호하다. 예전에도 비디오는 있었지만 요즘 세상에 막 내렸다고 다신 볼 수 없는 영화는 없으니까. 이젠 방송 시간 맞춰 TV앞에 앉아있기 대신 다시보기, 다운로드, IPTV로 골라 보는 걸 선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어떤 작품의 예비 관객인 셈이다.

그렇다고 불특정 다수의 예비 관객들을 위해 본 사람 모두가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을 언제까지고 언급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너무한 처사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고, 절름발이가 범인이라는 걸 언제까지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를 스포일러로 취급해야 할까?

우선 스포일러를 대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크게 3가지로 나눠봤다.

1. 극렬보수파

모든 종류의 스포일러를 극도로 혐오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내가 보기 전까지는 모든 정보가 스포일러다"라는 강경한 방어 태세를 취한다. 장난친답시고 중요한 정보를 흘렸다간 인간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다.

"보려고 대기 중인 사람한테는 사실 그게 공개된 지 1주일이든 1년이든 스포라고 다가오지." (회사원 J씨)

"그날 방송된 드라마 내용에서 '누가 죽었다'는 기사 나는 것도 완전 열 받음." (대학원생 L씨)

2. 중도파

직접 보기 전엔 가급적 모르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미 전파를 탄 방송이나 막이 오른 영화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스포일러를 원망하기보다는 제 때 못 본 자신의 탓으로 무게를 두고 알아서 피해 다니는 쪽이다.

"그래서 나는 스포를 안당하고 싶을 땐 각종 포탈을 안감" (대학생 P씨)

"약간 어쩔 수 없다 생각... 정보를 다 막을 순 없어서. 방송 이후론 아니라고 생각하고 영화 같은 경우도 핵심 내용만 아니면 어느 정도 이해." (회사원 H씨)

"나 같은 경우엔 영화랑 방송은 스포일러의 개념이 다른 것 같아. 방송은 특정한 시간에 본방송을 하고 나면 불특정 다수가 그 방송을 봤을 거라고 생각 되고, 영화는 개봉 이후에 사람마다 보는 시점이 너무 다르니까?" (주부 B씨)

"드라마나 예능은 전파 타는 순간부터, 영화는 공식 상영 끝나는 순간부터 스포일러란 없다고 생각.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약속된 시간에 공개되는 건데 '난 아직 안 봤는데?'라고 본 사람들의 자유로운 감상평을 비난하는 건 이기적인 것 같다." (회사원 K씨)

3. 급진개화파

스포일러를 대환영 하는 입장. 남들보다 미리 알고 있다는 쾌감을 연출자의 의도대로 느끼게 되는 감상보다 더 크게 생각한다. 또는 핵심 줄거리를 미리 파악함으로써 숲을 보는 느낌으로 조망하듯 관람할 수 있어 이를 선호하는 경우다. 잘려나간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대~환~영.

"난 스포일러 좋던데. 방송 전에 일부러 여기저기 찾아서 보기도 할 정도." (회사원 K씨)

이렇듯 스포일러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유독 온도 차가 크다. 본 방송이 끝난 뒤 포털사이트에 걸려있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리뷰 기사를 두고 누군가는 감상을 나누는 용도로 쓰는 반면, 방송보다 기사를 먼저 접한 누군가는 "난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이걸 제목에 걸어두면 어떡하냐"라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그래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은 있다. 공식적인 방송이나 개봉 이전에 공개되는 핵심 정보는 반론의 여지없이 스포일러가 된다는 점이다. 치열한 의견 대립이 벌어지는 구간은 방송과 개봉 이후의 시점이다.

영원한 난제가 될 법한 이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해당 콘텐츠 공급자 입장에서의 의견을 들어봤다.

대형 영화사 관계자 C씨는 극렬보수파의 입장이었다. 그의 생각은 한 마디로 '안 봤는데 볼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얼마나 지난 콘텐츠건 간에 여전히 스포일러다'라는 것.

"극장에선 종료가 됐는데 IPTV로 안본 사람에게는 10년이 지났든, 20년이 지났든 스포일러가 아닐까요. 공급하는 입장에서 이건 딱 떨어지는 시점의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상도에 부합하는 적정선은 사람마다 다른 거겠죠. 그렇다고 해서 그 기준점이 낮은 사람이 도덕적 지탄을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딱 정의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근데 사실 저는 '식스센스'를 안 봤어요. 그 반전을 듣는 순간 아예 볼 생각이 사라져서 지금까지도 안 본거죠. 하하하."

저도 그래서 안봤어요.jpg

스포일러로 떠들썩했던 여러 프로그램을 맡아온 방송 관계자 T씨는 중도파의 입장이었다. 정보를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방송을 본 입장에서는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고 대다수의 사람이 언급하는 큰 이슈에 대해서는 당장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정보부터도 막을 길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방송 중에 유출 된다면 명백한 스포일러지만, 방송이 끝난 이후에 공개되는 것에 대해서는… 참 어렵네요. 내가 어디에 해당되느냐의 문제 아닐까요. 그렇지만 어떤 종류의 언급이든 해당 콘텐츠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고 봐요. 반전 영화에 반전이 있다고 언급하는 것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잖아요. 전에 스포일러 방지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글의 예시로 등장한 내용이 또 다른 스포일러가 됐다는 반응도 있었거든요. 정말 애매하죠."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급적 스포일러에 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요즘 시청자들은 연출진이 의도한대로 온전히 콘텐츠를 누리고 싶어 하는 경향이 커요. 내가 메인이 돼서 스토리를 쭉 따라가면서 결론까지 보고 싶은 거죠. 그래서 기다렸다가 보는 재미도 있는 거고요."

물론 이들의 의견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킬 기준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장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애용되고 있는 [스포주의] 말머리가 있다. 스포일러가 될 법한 정보가 담긴 글을 열기 전 선택의 기회를 주는 거다. 하지만 이 역시 '필수 혹은 센스'의 경계에 서 있는데, 인터뷰에 응한 대다수의 수용자들은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입장으로 의견을 모았다.

"[스포주의] 같은 표시가 매너일 순 있어도 필수적인 건 아닌 것 같아요. 해두면 센스 있는 거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욕을 먹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누군가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정보를 말했다고 비난받을 이유도 없고, 비난 할 자격도 없다고 봐요. 그저 미리 표시해주면 고마운 거죠."

결국 스포일러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로 압축됐다.

첫 번째는 무조건 공식 공개 시점에 관람하는 것.

영화는 개봉 첫 날 관람, 드라마·예능은 본방사수! 그 이후에는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는 걸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두 번째는 서로 배려하는 아름다운 사회 풍토를 만드는 것.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주제를 언급하고 싶은 입장에서는 듣는 사람의 입장을 묻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

"너 그거 봤어? 나중에 볼 거야 말 거야? 말하지 마? 아나 진짜 왜 아직도 안 봤냐고!"

수용자 역시 스포일러의 조짐이 될 법한 대화 주제가 등장한다면, 본인이 추후에 볼 의향이 있지만 아직 관람하지 못했으니 사전 정보를 차단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너 지금 탈락자 누군지 말하려고 했지? 나 주말에 몰아 볼 거야! 노노노 말하지마!!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안들린다!!!"

결론 : 우리 모두 바람직한 문화 콘텐츠 관람 풍토를 위해 서로 배려하도록 하자♥

강효진기자 bestest@news-ade.com※ 위 기사는 외부 기획 취재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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