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난민 사태, 우리는 방관만 하고 있어도 되나?

김인기 기자 2015. 9. 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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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 장의 사진이 세계인을 울리고 있습니다. 터키 남부의 해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3살 짜리 아기 아일란 쿠르디의 얘기입니다. 지난 1일 터키에서 에게해를 통해 그리스로 가려던 쿠르디 가족들의 항해는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엄마와 3살 위의 형, 또 배에 함께 타고 있던 다른 9명의 시리아 출신 난민들도 같은 운명을 맞았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이들은 1일이나 2일에는 그리스의 코스 섬에 도착했어야 합니다.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닙니다. 올해 들어서만 지중해에서 2,600여 명의 난민이 숨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 달에 썼던 칼럼‘9월...지중해, 또다시 ’죽음의 바다‘가 되나?’(☞바로가기)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런 비극은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럽이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만평입니다. 스페인의 만평가인 미겔 산체스는 “아일란의 죽음은 유럽이 직면한 난민 사태와 독일을 제외한 유럽 지도자들의 무능의 상징”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유럽연합은 또다시 허둥지둥하고 있습니다. 오는 14일 유럽연합 내무장관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각국은 현재 상황을 논의하고, 유럽의 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다음 단계를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헝가리 장벽 (Voxeurop 8월30일)

그렇지만 과연 이런 논의들이 효과적인 조치를 내놓을지는 의문입니다. 헝가리는 이미 난민들의 통과를 막기 위해 175km에 이르는 장벽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2천만 유로를 들여 높이 4미터의 방벽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헝가리 총리의 이름을 따서 이를 ‘빅토르 오르반의 장벽’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지난 1989년 8월 19일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결국 석 달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역사적 사실을 반추하면서 ‘역사는 빠르게 되풀이 된다’라고 씁쓸해 하는 유럽인들이 많습니다. 이뿐 만이 아닙니다. 독일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난민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극우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난민 문제가 국내 정치에 연계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난민 문제는 유럽만의 문제일까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나 중동 국가 출신들이 유럽만 바라보고 있을까요? 유엔난민기구(UNHCR)는 전 세계 선진국 44개 국가를 난민 수용국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고,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들어 있습니다. UNHCR은 특히 일본과 한국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2014년 사이 일본이 13,880명, 한국이 7,050명의 난민 신청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2013년과 비교해 한 해 동안 일본은 53%, 한국은 85%나 급증했습니다. 이런 추세는 장기적으로 두 나라에 난민 신청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난민 정책은 어떨까요? 법무부 통계를 보면 1994년부터 올해 7월까지 모두 12,208명의 난민 신청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인정된 경우가 522명에 불과하고, 인도적 체류가 876명, 불인정이 6,258명, 신청 철회가 1,651명으로 집계됐습니다.(UNHCR의 자료와 비교하면 일부 차이가 납니다) 법무부는 난민 인정률이 2014년 말 기준 7.3%라고 밝혔습니다.(인정률=인정자/심사종료자) 아직 심사 중인 난민들도 있어서 단순 계산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는 아직은 난민 신청에 우리가 인색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런데도 난민 신청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습니다. 2010년 423명에 불과했는데, 2011년에 1,011명으로 천 명 대를 돌파하더니 지난 해 2,896명, 올해는 7월까지 2,669명이 신청했습니다. 이런 증가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은 외국과 비교해 어떨까요? UNHCR은 EU 28개국의 경우 2010년에서 2014년 사이 인구 1천 명 당 3.5명의 난민 신청이 있었다고 집계했습니다. 스웨덴은 무려 24.4명입니다. 물론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통계를 바탕으로 비교해 보면 한국의 인구가 지난 1월 현재 5,134만 명이니까 (유럽 국가였다면) 179,690명의 난민 신청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7,050명은 아주 일부만 들어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시리아 출신 난민도 648명이 난민 신청을 했습니다. 2명이 인정이 됐고, 이례적으로 많은 502명이 인도적 체류 결정을 받았습니다. 한국도 난민들의 행선지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지금 난민 문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앞장서 난민을 받아들이자고 설득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도 난민을 받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이나 일본도 난민 문제를 분담하자는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중해 난민 사태를 강 건너 불로만 구경할 수는 없게 됐습니다. 아일란의 죽음을 계기로 세계인들이 난민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올 가을 지중해의 비극이 이어진다면 국제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해 질 것입니다. 난민 문제에 관한 한 인류애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처럼 난민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는 자칫 국제 사회에서 돈만 벌고 책임은 지지 않는 ‘이코노믹 애니멀’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김인기 기자ik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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