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X파일] '바꿔치기 소변'에서 왜 마약성분이..

류정민 입력 2015. 9. 5. 10:00 수정 2015. 10. 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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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지명수배자, 혐의 감추려 누나·어머니 소변 제출..마약 양성반응, 진짜 투약자는 누구
사진출처=의정부지방검찰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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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시작부터 엉뚱했다. 필로폰 매수 혐의로 지명 수배된 A(40)씨에 대한 얘기다. 그는 경찰서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경찰 조사를 받은 이유는 마약 문제가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가정폭력 신고가 원인이었다.

결국 가정 폭력 문제로 경찰 조사를 받다가 마약사범으로 붙잡힌 셈이다.

이때부터 더 엉뚱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A씨와 가족들은 ‘황당한 시나리오’를 실행에 옮겼다. 마약 관련 지명수배자가 잡혔으니 마약 투약을 둘러싼 검사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때 A씨와 가족들이 꾀를 냈다. 아내 B씨가 나섰다. A씨 누나인 C씨와 어머니 D씨의 소변을 소형 약통에 받아 준비했다.

마약 문제로 적발된 경험이 많은 A씨의 추가 혐의를 숨기려는 목적이었다. C씨는 경찰서에서 A씨에게 몰래 약통을 전달했다. A씨는 필로폰 사건 수사를 위해 검찰청으로 인계됐다. 바지 주머니에는 누나와 어머니의 소변이 약통에 담긴 채 숨겨져 있었다. A씨는 약통의 소변을 종이컵에 따라서 자신의 소변인 것처럼 마약 수사관에 제출했다.

누나와 어머니의 소변을 제출했으니 마약은 검출될 리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잘만하면 혐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시나리오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다. 지난해 9월 검찰에 제출된 '바꿔치기 소변'에서 마약 양성반응이 나온 것이다.

A씨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A씨는 결국 1심에서 마약 투약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마약 투약 사실을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나의 다이어트 약을 먹어서 양성반응이 나온 것이라고 항변도 해봤다. 재판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한 결과 다이어트 약 때문에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꼼짝없이 마약 혐의로 실형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진실'을 털어놓았다. A씨는 지난해 9월 마약검사에 쓰였던 소변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DNA 감정을 요구했다. 대검찰청 과학수사부가 이를 조사한 결과 실제로 A씨 소변이 아니었다.

A씨가 누나와 어머니의 소변을 자신의 것처럼 바꿔치기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대검 과학수사부는 추가 DNA 감정을 통해 문제의 소변은 A씨 누나와 어머니의 소변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A씨와 누나, 어머니 등은 ‘소변 바꿔치기’ 행위를 모두 자백했다. A씨와 가족들이 수사기관을 속이고 증거를 조작하려 했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결국 A씨와 부인, 누나, 어머니 등은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수사기관을 상대로 증거조작을 하려고 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진짜 미스터리한 부분은 지금부터다. 바꿔치기 된 소변은 깨끗한 결과가 나와야 정상인데, 그곳에서 왜 마약 성분이 검출된 것일까. 검찰은 소변 검사와 무관하게 A씨가 마약 투약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도 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고 항소심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A씨 누나와 어머니를 둘러싼 미스터리다. '바꿔치기 소변', 즉 A씨 누나와 어머니 소변에서 나온 마약 성분은 설명이 안 된다. 검찰도 뒤늦게 A씨가 소변 바꿔치기 시도를 인정한 뒤 누나와 어머니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들은 투약 사실을 부인했고, 마약 전력도 없었다. 검찰은 A씨 누나와 어머니에 대한 모발과 소변 검사를 추가로 진행했지만 마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검찰도 내사 종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A씨 누나와 어머니는 필로폰 양성반응 부분에 대해서는 처벌을 면하게 됐다. 하지만 검찰은 누나와 어머니 중 한 명이 필로폰을 투약했을 것이란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바꿔치기 된 소변에서 마약성분이 검출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년의 시간이 지난 관계로 과거 마약 투약 혐의를 입증할 수 없을 뿐, A씨 누나와 어머니 둘 중 한 명의 마약 투약 자체는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A씨 누나와 어머니 중 한 명은 실제로 필로폰 투약 경험이 있었던 상황에서 자신의 소변을 제출한 것일까. 아니면 마약 투약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양성반응이 나온 걸까. 2개의 시나리오 모두 뭔가 이상하다. 검찰의 내사 종결에 따라 의혹에 대한 실체 확인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A씨 가족이 연루된 '소변 바꿔치기'를 둘러싼 미스터리, 그 진실은 무엇일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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