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배기 난민 비극' 아버지의 절규] 이 세상에.. 아버지만 홀로 남았다

취재/양모듬 기자 2015. 9. 5.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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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으로 돌아온 부인과 두 아들

아버지는 혼자가 됐다. 터키의 보드룸 해안을 출발했던 2일만 해도 아내 레헨(35)과 두 아들 갈립(5)과 아일란(3)이 함께였다.

가족이 살던 곳은 터키 국경 근처 시리아의 소도시 코바니였다.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 반군이 뺏고 뺏기는 탈환전을 벌이고, 미군의 공중폭격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친척 중 11명이 IS에 목숨을 잃었다. 이발사였던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40)의 소원은 아이들을 터키와 그리스를 거쳐 안전한 독일에 데려가는 것이었다. 에게해 4㎞를 건너 그리스땅을 밟기 위해 뱃삯 4000유로(약 530만원)를 냈다. 지난해 말 시리아를 떠난 뒤 네 번째 시도였다. 새벽 2시 터키를 출발한 희망선은 몇 분 뒤 지옥선이 됐다.

쿠르디 가족 등 난민 23명이 나눠 탄 배는 작은 고무보트 두 척이었다. “안전을 장담한다”던 브로커는 파도가 거세지자 바다로 뛰어내리더니 홀로 해안으로 헤엄쳤다. 배는 곧 뒤집혔다. 아버지는 가족들 손을 부여잡았지만 놓쳤다. 아이들은 검은 밤바다와 고성 사이로 사라졌다. 네 시간 뒤 새벽 6시쯤 막내 아일란의 시신이 보드룸 해변으로 밀려왔다. 아이란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호텔 직원 아딜 드미르타스(18)는 “아이가 마치 잠을 자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며 “미처 감지 못한 아이의 눈을 감겨줬다”고 했다. 100m 떨어진 해변에서 큰아들 시신도 발견됐다. 부인도 숨졌다. 이날 난민선을 탄 23명 중 14명이 사망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아버지는 이날 보드룸 인근 시신안치소에서 가족들 얼굴을 확인했다. 벽에 기대 한참 눈물을 훔치던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들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옥 같던 고향 시리아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모든 꿈이 사라졌고,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운구차에 관 세 개를 실으며 “그저 아내와 아이들을 묻고 그 곁에서 쉬고 싶다. (우리 가족이 겪은 것 같은) 이런 일이 마지막이 되게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4일 코바니에 가족을 묻었다.

쿠르디 가족의 비극 뒤에는 시리아 내전, 굳게 닫힌 국경, 난민의 희망을 이용하는 밀항업자들이 있다.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국경을 넘으려는 수요가 크게 늘자 마약 밀수꾼들이 밀입국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리비아에서 지중해를 통해 이탈리아로 가는데 900~4000달러, 터키에서 그리스섬까지는 1000~2000달러”라고 했다.

업자에게 돈을 더 쥐여주면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 구명조끼는 추가로 200달러,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300달러를 더 내야 한다. 물과 음식은 100달러다. 이렇게 업자들은 밀항선 한 척당 최대 100만유로(약 13억원)를 챙긴다. 그리스에서 활동하는 밀항조직만 200여 개다. 터키 정부는 쿠르디 가족의 사망과 관련해 밀항업자 4명을 체포했다. 20~40대 시리아인들이었다.

어린 쿠르디의 사진은 세계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해변에 엎드려 자는 것처럼 발견된 숨진 쿠르디의 사진에 천사 날개를 달아주기도 하고, 주위를 장난감으로 장식했다. 외롭지 않게 엄마를 그려넣기도 했다. 쿠르디의 사진을 찍은 터키 민영 도안통신의 닐류페르 데미르(29) 사진기자는 “아이 시신을 본 순간 겁에 질렸다. 충격적이고 슬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의 절규를 세상에 들리게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리즈 슬라이 워싱턴포스트 레바논 베이루트 지국장은 “쿠르디를 죽인 건 지구촌이 해결을 포기한 전쟁과 ‘내 일도 아닌데’라는 식의 이민정책”이라고 썼다. 2011년부터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25만명이 숨졌다. 그리스 해양경비대는 이날 동(東) 에게해에서 바다를 건너던 난민 535명을 구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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