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英은 커리, 日은 카레.. 뭐가 다르지?

박상현 맛 칼럼니스트 2015. 9.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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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음식 오디세이]

일본의 대표적인 온천 관광지 하코네. 이곳에는 137년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최초의 근대식 호텔인 후지야호텔이 있다. 찰리 채플린, 헬렌 켈러, 존 레넌 등이 묵었던 이곳의 명물은 뜻밖에도 카레다. 이틀 동안 우려낸 맑은 콩소메 수프에 닷새 동안 볶은 향신료를 곁들여 만드는데, 오로지 그 카레를 먹기 위해 비싼 숙박료를 지불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부드러우면서도 농후한 카레를 밥에 비벼 먹다 보면 '이건 대체 어느 나라 음식인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자면 250년에 이르는 시간 여행이 필요하다.

인도 음식에서 사용되는 향신료는 3000종에 이른다. 향신료는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 다양한 조합을 통해 거의 무한대의 맛을 창조한다. 향신료를 수천년 동안 다뤄 온 인도인들은 경험을 통해 지역마다 집집마다 다른 조합을 만들어냈다. 이 조합을 '마살라(Masala· 혼합 향신료)'라 한다.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영국은 처음에는 후추만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뒤늦게 마살라의 매력을 발견하고 1772년 영국에 처음 소개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초대 인도 총독을 역임한 워런 헤이스팅스였다. 하지만 정향, 육두구, 바질, 강황 등 다양한 향신료를 조합해 기호에 맞는 마살라를 만드는 것은 영국인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에 착안해 세계 최초로 '커리 파우더'를 개발한 곳이 영국의 식품회사 'C&B'(크로스 앤드 블랙웰)였다.

메이지유신을 전후해 영국 해군을 모델로 창설된 일본 해군은 배에서 먹는 음식까지 따라 했다. 영국 해군의 '커리 스튜'를 모방해 자신들만의 '카레'를 만들었다. 17세 때 이를 처음 맛본 야마자키 미네지로는 3년의 시행착오 끝에 'S&B 카레파우더'를 세상에 선보이니 이것이 오늘날 일본 에스비식품의 시작이다. 한편 한국의 오뚜기식품은 1969년 '즉석 카레'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카레 가루를 생산하게 된다. 그러니까 커리파우더, 카레파우더, 즉석 카레는 각각 영국식, 일본식, 한국식 마살라인 셈이다.

일본에서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자포니카라는 짧고 통통한 단립종(短粒種) 쌀과 만나 '카레라이스'라는 음식이 탄생하고, 굵고 탄력 있는 우동 면까지 품게 된다. 심지어는 카레빵이라는 기상천외한 발명품까지 등장한다. 일본 해군의 전통을 이어받은 해상자위대는 지금도 매주 금요일 점심으로 카레라이스를 먹고 있으며, 군항인 요코스카시에서는 '해군 카레'를 향토 음식으로 관광 상품화하고 있다.

밥이 주식인 한국에서도 카레라이스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김치라는 최고의 파트너도 만났다. 일본인들은 카레라이스에 '후쿠진즈케'라는 채소 절임을 곁들여 먹는다. 하지만 발효가 잘된 신 김치와의 조합에 비하면 누가 봐도 한 수 아래임이 분명하다.

무려 250년에 걸친 마살라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규슈 에키벤 그랑프리'에서 3년 연속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하며 일본 전역의 명물이 된 사가현의 '아리타야키카레'. 28가지 향신료가 배합된 이 카레는 한국의 약선 요리를 모티브로 개발되었다. 실제로 한국인에게 익숙한 몇몇 한약재가 사용된다. 마살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시간과 대륙을 넘나드는 카레의 서사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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