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요즘 인기라는 '돈 꽃다발', 손님들이 수상하다는데..

강푸른 2015. 9. 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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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줄 거면 그냥 돈으로 주지.'
맘에 안 드는 선물을 받은 뒤 한번쯤은 이런 생각 해 본 적 있으신가요? 실제로 선호하는 선물 종류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현금은 매번 상위권에 오르는 인기 품목이기도 합니다. 반면, 선물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꽃다발은 들고 다니기가 부담스럽다거나 딱히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상품이 이른바 '돈 꽃다발'입니다. 지폐로 꽃송이를 하나씩 감싸거나, 돌돌 만 지폐를 꽃다발에 매달아 장식하는 건데요. 원하는 액수만큼 꽃다발 속에 지폐를 꽂아 넣기만 하면 되니, 풍성한 꽃다발 하나로 전달할 수 있는 금액이 최고 수백 만 원에 달합니다. 5만원 권 같은 고액권 지폐를 사용할수록 액수는 더 높아지겠죠. 출시 당시 노골적인 물신주의를 보여준다며 비판을 받긴 했지만, 보기 좋은 꽃다발에 실용성까지 더해진 '돈 꽃다발'은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선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올 봄부터 이 '돈 꽃다발'을 이용한 전화 금융사기 수법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뜯어낸 돈을 계좌에서 꺼내는, 범죄의 마지막 단계에서 '돈 꽃다발'을 동원하는 건데요. 사실 이 대목은 전화사기 범죄자들이 가장 많이 붙잡히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재빨리 통장에 들어온 피해자들의 돈을 찾아 종적을 감추려면, 지금까지 수화기 너머로 감춰왔던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은행 곳곳에 설치된 CCTV와 혹시나 잠복하고 있을지 모를 경찰은 범죄자들에게 큰 위협이 돼 왔습니다.

33살 강 모 씨 등 사기단 15명은 그래서 다시 한 번 전화를 이용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꽃가게에 전화로 주문을 넣는 거죠. 이들은 실제로 "아내의 결혼기념일인데, 매번 명품 가방만 사줬으니 이번에는 현금으로 주고 싶다"며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놨습니다. 5만 원권 100장으로 꾸민 꽃다발의 가격은 5백10만 원. 주문을 마치자마자 꽃집 주인의 계좌로 이체된 이 돈은, 사실 전화사기 피해자들의 이름으로 대출받은 고액의 대부금이었습니다.

돈의 출처를 알 리 없는 꽃집 주인은 주문받은 대로 꽃다발을 만들어 줬고, 범죄자들은 유유히 꽃집에 나타나 꽃을, 아니 그 안의 돈을 챙겼습니다. 꽃집을 은행 창구처럼 이용한 셈이죠. 십여 차례 꽃다발 주문을 이어가며 현금을 챙기던 이들의 범행은 지난 6월 전북 전주에서 처음으로 덜미가 잡힙니다. 지나치게 큰 금액을 수상하게 여긴 꽃집 주인이 범죄를 직감한 거죠. 경찰이 꽃집 직원인 척, '상품이 완성됐으니 배달을 가겠다'고 하자, '그럴 거면 주문을 취소해 달라'며 적반하장으로 맞서던 사기단은 결국 지난달 줄줄이 검거됐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강 씨 일당의 범죄로 수많은 시민이 피해를 보았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2월부터 강 씨 일당에게 사기를 당한 이들은 모두 32명, 피해 금액은 7억 7천만 원에 달합니다. 그 중 취재를 위해 통화한 피해자는, 사기단이 전화로 개인정보를 넘겨받은 지 이틀 만에 8천만 원이 넘는 돈을 대출받았다며 허탈해했습니다. 제2, 제3 금융권에서 고리의 대출을 받는 건 물론,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등 가질 수 있는 돈이란 돈은 전부 챙겨갔다는 겁니다. 금융회사를 통해 피해구제 신청을 하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긴 하지만, 대포 통장에 지급정지된 피해 금액이 남아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므로 100% 환급을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경찰은 강 씨 일당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이 대부분 대출이 급한 서민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일반 은행에서 대출 신청이 거절당한 적이 있다 보니, 대출을 받게 해 주겠다는 사기단의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거라는 거죠.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전화금융사기 관련 소식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피해자가 나오는 건 이처럼 위태로운 서민 경제 상황에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서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한 사기 범죄 수법만 갈수록 정교해지는 현실이 참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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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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