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노모와 40대 아들의 10년 여행, 그 사진전

김현자 2015. 9. 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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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인 사진전 <바람이 멈추지 않네> 를 갔다와서

[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사진집이 아닌데도 사진에 우선 끌려서 선택하는 책들이 있다. 난 멋진 풍경이나 누가 봐도 잘 찍은 사진보다, 사연이 남다를 것 같은 사진에 더 끌리곤 한다. 그런 사진 몇 장 때문에 선택하는 책들도 있다. 사진이 좀 많은 책은 우선 사진부터 넘기며 본다. 사진 설명만 읽고도 공감이 가는 책들도 있다.

이처럼 사진에 우선 마음을 두었던 책들은 책을 읽다가 불현듯 떠오른 책 속 사진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내용을 읽기에 앞서 이미 봤던 사진들을 다시 보는 것으로 그날 그 책 읽기를 끝내기도 한다. 대개 이처럼 읽는 책들은 책을 모두 읽은 후 사진 때문에 다시 펼칠 때가 많다.  

"어머니도 사진 보는 눈이 있어서, 일상적인 풍경에 사람이라도 한 명씩 있어야 화면이 심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루에 몇 군데 절에 다닐 경우엔 여벌 옷을 준비해 가는 경우도 있었다. 당일로 다녀오는데 뭐하러 옷을 또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똑같은 옷을 입으면 같은 사람이라고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다르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그러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 자연 속에 어머니를 함께 담아내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행복이었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꾸밈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다. 천 원짜리 옷을 해 입었다고,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됐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 - <바람이 멈추지 않네> '들어가는 말'에서.

어머니와 함께한 여행, 사진에 담았다

 남해 두모마을.
ⓒ 안재인
 성주 법수사 터.
ⓒ 안재인
 강진 백련사 동백숲.
ⓒ 안재인
안재인의 <바람이 멈추지 않네>(쌤앤파커스 펴냄)도 이렇게 만난 책이다. 저자가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0여 년 간 다닌 장소가 1천여 곳이고, 절과 절터가 400여 곳, 차가 달린 거리로 20만 킬로미터가 넘으니 지구를 다섯 바퀴쯤 돈 거리란다. 그렇게 함께했던 여행, 그 이야기와 풍경들을 묶은 책이다.

책과 책 속 사진들이 좀 더 특별하게 와 닿았던 것은 모든 이야기에 어머니가 있고, 모든 사진마다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눈이 부시도록 피어난 유채꽃과 자운영, 황홀하게 피어난 꽃양귀비와 복사꽃과 살구꽃 속 그의 어머니를 보며, 다른 것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건만 백합 뿌리 하나에 이해할 수 없는 욕심을 부리던 어느 해 봄의 엄마 생각부터, 함께 자라온 고향 집 꽃밭 풍경들이 몇 번이고 떠오르곤 했다.  

어디서 들으신 건지, 친정엄마는 언젠가부터 가족 모임이나 친정에 갈 때면 꼭 카메라를 가지고 가 사진을 찍는 나를 "찍사!"라 부르곤 했다. 그러면서 사진으로 찍었으면 좋겠다 싶은 집안의 물건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가기도 하고, 마당의 꽃을 무조건 찍어야 하는 사명처럼 강제성을 띤 주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날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자랑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내 카메라 속 사진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니 카메라 속 사진들은 훨씬 멋있다"며. 그리고 어떤 날은 "도라지꽃이 피자마자 찍었는데 보려고 암만 찾아봐도 없다"며 서울서 김제까지 그 먼 길을 간 날 보자마자 붙들고 하소연하신 적도 있다.

"이 책에는 어머니가 찍은 사진들이 간간이 실려 있다. 내가 어머니에게 사드린 유일한 생일 선물인 자동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다. 그것이 여러 기능이 있는 고급스러운 것이 아니라도 괜찮다. 어머니의 사진이 다른 사람들의 시각에서 봤을 때 좋지 않은 사진이라 해도 상관없다. 초점이 안 맞아도, 수평이 맞지 않아도,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어머니가 찍은 사진 사진은 당신만의 생각과 느낌이 담겨 있기에 소중하다. 아니, 어머니와 내가 함께한 시간과 추억이 서려 있으니 그것만으로 족하다. 평생을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아온 어머니가 당신 이름을 걸고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사진들이다."
- <바람이 멈추지 않네> '들어가는 말'에서.

내게도, 엄마와의 이런저런 사연들이 얽혀있어서, 엄마와 주고받았던 일들이 떠올라 쉽게 넘기지 못하는 사진들이 좀 많다. 그래서 책 속 사진들이 더 특별하게 와 닿았을 것이다.

유채꽃 물결 그 한 귀퉁이 꽃 앞에 앉아 무얼 보고 있거나, 저물녘 석탑 앞에 합장하고 있거나, 마루에 앉아 있거나, 산을 오르내리는 등의 모습으로 저자의 어머니가 어김없이 들어가 있는 사진들을 보며 우리 엄마도 참 좋아할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어 엄마와 이렇다 할 여행 한번 못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과, 아픈 다리가 함께 떠올라 울컥해지곤 했다.

9월 1일, 책에 실린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는 '안재인 사진전-바람이 멈추지 않네(9.1~9.6)'에 갔다. 책을 통해 이처럼 남다르게 만났던 사진들을, 책에 실리는 사진 특성상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바람이 멈추지 않네> 속 사진들을 좀 더 크고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앞세워. 아래는 아들 안재인씨와 나눈 이야기, 그 일부다.

어머니를 찍은 사진, 어머니가 찍은 사진

 "차 안에서 찍어도 사진이 나오나?" "그럼, 나오지" "괜히 필름 버리는 것 아냐?" 필름이 필요 없는 사진기라고, 찍고 싶은 대로 원 없이 찍어보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이제 달리는 차 안에서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남한강 ⓒ정영자’ 사진 설명 전문)
ⓒ 정영자
 어릴 적엔 동네에 그렇게 많았던 제비를 이젠 좀체 볼 수 없다. 가끔 시골마을에서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담아보려 하지만, 원체 빠르게 날아가는 녀석이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머니의 사진에는 간혹 등장하는데, 사진을 찍는 순간 화면 안으로 제비가 저절로 날아든다. 참 신기한 일이다.(‘청산도 당리’ ⓒ정영자 사진 설명 전문)
ⓒ 정영자
 영월 주천강
ⓒ 안재인
- 처음에는 불목하니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공양주 보살님의 말문을 트기 위해 함께 갔다고 썼던데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절에 다니셨는데, 어머니가 다니시는 절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공양주 보살님들을 취재할 일이 있었어요. 제가 넉살이 그리 좋은 편이 못되다 보니 말 걸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30년 넘게 공양주 생활을 하신 분들을 주로 취재해야 하는데, 연세들이 다 많으시고요. 또 불가에선 입으로 짓는 죄에 대해서도 말하잖아요. 공양주 보살을 오래 하신 분들 중엔 말을 아끼는(조심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러니 대화가 쉽지 않죠.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다녀오다가 한두 장 찍어 드리게 됐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사진 주인공이 어머니가 되고 말았어요. 정작 공양주 보살님에 대한 작업은 끝내지 못하고 어머니 이야길 먼저 책으로 내게 됐네요."

- 영월 주천강 섶다리 사진 한참 봤었어요. 어머니와 함께 있는 분은?
"단종이 유배 갈 때, 저 자리에 놓인 섶다리를 건너갔어요. 역사적인 장소죠. 재미있는 것은 큰 물난리가 나면 다리가 그대로 쓸려가고, 그럼 다시 다리를 놓는데 이 일이 거의 해마다 되풀이한다는 거예요. (어머니와 함께 있는 분은) 아버지예요. 어머니 이야길 주로 썼고, 거의 모든 사진에 어머니가 들어가 있는데, 사실 아버지도 거의 함께 다니셨거든요."

- 어머니가 찍으신 사진들 참 좋더라고요. 어머니가 사진을 권하신 거니 이번 책 출간을 더 좋아하실 것 같고.
"엄마 사진이 실렸으니 당연히 좋으시겠죠.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시거나 열중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카메라 사드리길 잘했다' 싶어요. 책을 드리긴 했는데, 글씨가 작아(그의 어머니는 70대다) 아마 글은 조금밖에 읽지 못하셨을 것 같아요. 경상도 분들이시라 표현도 말도 잘 안 하시는 편인데, 그래도 참 좋아하시는 눈치예요.  

그래도 부모님이 바라는 가장 큰 행복은 결혼해 아이들 낳고 무난하게 사는 것 아닐까(그는 미혼이다) 싶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어머니는 공연히 사진 권했다고 후회하실지도 모르겠어요(어머니가 사진을 권했다. 87 민주항쟁, 그 직후 학번인 그가 데모하지 말길 바라며). 그러고 보니 제 사진전이 아니라 '정영자·안재인 사진전'이라고 해야 맞겠네요. 참, 어머니께 인세 일부 나눠드려야 했는데 미처 드리지 못했네요. 어서 드려야겠어요. (웃음)"

- <바람이 멈추지 않네>란 책 제목, 좋더라고요.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은 공양하고자 하나 양친은 기다려주지 않네(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그 유명한 말 있잖아요. 사실 어머니랑 싸우기도 잘해요(웃음). 별것도 아닌 것들로 싸우곤 하죠. 그래도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많은 것들을 보게 됐어요. 예전에는 매일 보면서도 그리 와 닿지 않던 어머니의 주름살도 한방에서 자면서 새삼스럽게 들여다보게 되거나..."

 사진책 전시관인 류가헌 제1전시관은 사진집 지원 프로젝트 전시공간이다.
ⓒ 김현자
 류가헌 마루에 앉아 본 풍경.
ⓒ 김현자
 사진책 전시관인 류가헌 제3 전시관.
ⓒ 김현자
사진이 특별하게 와 닿는 책을 읽다가, 출간에 앞서 사진전을 했다는 지난 뉴스를 뒤늦게 접하며 아쉬웠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이번 전시는 책에 실린 일부 사진들만 전시하고 있어서 좀 아쉽긴 했으나, 그래도 눈을 바짝 들이대 보곤 했던 사진들을 큼지막하게 만나며 미처 볼 수 없었던 부분까지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통해 이미 사연들을 알고 만나는 사진들이라 더 각별하게 와 닿았고 말이다.

전시가 열리는 '류가헌'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한옥을 개조한 공간이라(아마도) 기다란 마루가 있는데, 여기 앉아 기와지붕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아 한참 동안 이야기 나누다 왔다. 사진책만을 모아놓은 공간도 있으니 사진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남다른 공간이 될 것 같다. 전시는 9월 6일, 일요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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