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에 돈 더 줘라' 세금 낭비 하는 정부

손지은 2015. 9. 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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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공사 발주가격 상향책 시행.. "세금으로 건설업체 수익보장 하나"

[오마이뉴스 손지은 기자]

 성남시청 전경.
ⓒ 성남시
성남시가 건립을 추진 중인 국공립 어린이집이 건설업계의 입장을 반영한 정부의 토건 정책에 가로막혔다. 시는 당초 건립비용으로 32억 원을 예상했지만 정부가 올해부터 건설업계의 적정 공사비를 확보해주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2억5천여만 원의 세금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성남시는 지난 2013년 7월, 이재명 시장의 공약에 따라 분당구 이매동에 대지면적 659.9㎡ 규모(지하1층·지상3층)의 국공립 어린이집 건립을 추진했다. 그 뒤 2년여에 걸쳐 설계 및 주민설명회, 설계자문위원회심의 등을 마쳤고 현재는 건설업체 입찰만 남겨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달 21일 국·도비를 지원받기 위해 경기도에 계약심사를 의뢰하는 과정에서 발목이 묶이고 말았다. 시는 이전 공사의 계약 단가(실적공사비)를 토대로 한 예정가격(발주가격)을 책정해 의뢰했지만, 경기도는 행정자치부 지침에 따라 실적공사비가 아닌 '표준품셈'을 기준으로 예정 가격을 다시 책정하라는 보완 통보를 했다.

문제는 표준품셈을 기준으로 할 경우 전체 예산이 7% 넘게 늘어난다는 점이다. 현재 성남시가 예정가격으로 책정한 전체 금액 32억 원 중 7억8천만 원은 실적공사비로 산정한 비용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정부 지침대로 표준품셈을 기준으로 바꿔 계산하면 2억5천만 원이 증가한다. 이는 전체 예정가격의 7% 가량에 해당하지만, 실적공사비 적용 대상 부분만으로 좁혀서 따져 본다면 32% 이상 차지하는 금액이다.

거기에 낙찰 가격의 하한선(86.745%)을 정해두는 성남시의 현행 낙찰제도(적격심사제) 안에선 예정가격 상승은 곧 낙찰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증가한 예산이 고스란히 건설업체의 주머니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세금을 절약할 방법이 있음에도 중앙정부의 지침으로 오히려 예산을 증액해야 하는 성남시로선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김남준 성남시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전에 책정했던 예정가격보다 2억5천만 원 이상을 추가로 증액해야 하는 상황이라 난감할 뿐"이라고 전했다.

'세금 낭비 주범' 다시 불러온 정부

정부가 예정가격 측정의 기준으로 내세운 '표준품셈'은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건설공사의 예정가격을 산정할 수 있게 국가가 마련해둔 기준이다. 각 공종(공사종류) 별로 표준적이고 보편적인 공종 및 공법을 기준으로 하며, 단위 작업당 소요되는 재료 수량, 노무량, 장비사용시간 등을 수치화했다. 발주자인 공공기관은 이를 기준으로 낙찰가격을 정하고, 건설업체 역시 이 기준에 맞추어 적절한 응찰가격을 셈한다.

하지만 건설현장은 대량 주문이나 신기술을 도입 등으로 공사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발주자가 획일적으로 시공방법이나 재료·장비 등을 결정하도록 해 오래전부터 '예산 낭비의 주범'으로 지적돼왔다. 또한 지난 1995년에는 정부가 건설업체들의 이익단체인 대한건설협회에게 업무를 이관하여 10년 동안 표준품셈 생산을 담당하도록 하면서 시민단체로부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 지난 2005년에는 정부의 공사원가기준인 표준품셈이 2.6배 가까이 부풀러져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아래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은 건설교통부가 추진한 8개 국도공사의 토공사(깎기, 운반, 쌓기 등)를 대상으로 표준품셈에 따른 정부가격(정부단가)과 직접 시공을 맡는 하청업자가 원청업자에게 받은 가격(시장단가)을 공종별로 분석했다.

그 결과 경실련은 시장가격은 632억 원인데 정부가격은 1625억 원으로 900억 넘게 부풀려져 있었다고 밝혔다. 일례로 '발파암 깎기'의 시장단가는 5111원이지만 정부단가는 2배가 넘은 10409원이었고, '덤프운반'의 시장단가는 2812원이었으나 정부단가는 6493원으로 2.3배 가까이 부풀려져 산정됐다.

때문에 경실련은 "건설 장비 제조업체들의 기술개발로 공사비용이 하락하고 있지만 정부는 원가계산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현행 원가계산기준인 품셈을 폐지하고 시장단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정부 역시 이점을 인정했다. 지난 2004년 참여정부는 공사비 거품논란을 완화하고 업계 가격경쟁을 촉진해 예산절감 및 효율성 제고 등을 위해 표준품셈을 폐지하고 실적공사비 제도를 도입해 부분적으로 시행했다. 공공기관이 예정가격을 산정할 때 실적공사비를 우선 기준으로 삼고 이 기준이 없는 공종은 표준품셈을 적용하도록 했다. 

당시 정부가 도입한 실적공사비란 과거에 시행된 건설공사의 공종별 계약단가를 축적한 가격으로 시간, 규모, 지역차 등을 보정해 차기 건설공사의 예정가격 산출에 활용하는 제도다. 이는 표준품셈과 달리 재료비·노무비·경비 등으로 구분하지 않는 복합단가이므로 건설업체는 시공 지역의 현장 여건을 고려해 최적의 시공방법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공공기관이 입찰에 참여하는 건설업체 사이 기술 경쟁을 유도해 공사비를 절감하는 방식이다.

"공사비 낮추는 게 능사 아니다" vs "혈세로 건설업체 수익보장"

실적공사비 도입으로 지난 10년 동안 공공부문 공사비용이 지속적으로 하락(불변가격 기준 36.5% 하락)하자 건설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결국 대한건설협회 등 16개 건설 단체가 지난해 실적공사비 폐지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청와대 등에 제출했다. 이들은 "정부가 예산 절감이라는 명분 아래 실적공사비 제도를 도입해 공사비를 삭감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제값 주고 제대로 시공하는 풍토를 조성해 달라"고 주장했다.

공사비 산정 기준을 두고 시민단체와 건설업계 사이 의견 차이가 팽팽했지만 정부는 건설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국토부, 기재부, 건설협회 등 민관합동TF를 꾸려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된 개선안은 기존 공사비를 심의하는 공사비산정위원회에서 민간의 발언권을 높이고, 100억 미만의 사업에는 실적공사비 적용을 영구 배제하는 등 점진적으로 공사비용을 '현실화'하는 계획이다. 낮은 공사비가 시설물의 품질과 안전성 저하로 이어진다는 이유였다.

이전부터 관련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왔던 경실련은 즉각 반발했다. 민관합동TF의 개선 방안이 발표된 지난해 12월 경실련은 성명을 내고 "최초 실적공사비 역시 30% 이상 부풀려져 있었기에 지난 10년 동안 공사비가 하락한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정부안은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경영난에 빠진 건설업체들의 적자를 혈세로 메워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최승섭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 부장은 지난 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건설사들은 실적공사비 때문에 저가 수주를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세금을 집행하는 정부는 이 문제를 세심하게 봐야 한다"면서 "덤핑 입찰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는 기준에 맞게 정확하게 설계하도록 감시기능을 강화하면 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이런 문제는 제쳐두고 단순히 공사비를 덜 줘서 부실공사가 일어나는 거라고 호도하는 건 결국 건설업체의 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며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사이에 거래되는 실제 시장가격이 정부 예산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는 단가를 낮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기술기준과 한 관계자는 "실적공사비를 기준으로 예정가격을 산정하다보니 건설업체가 공사를 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가격이 떨어져 합리적 대안을 찾은 것"이라며 "단가를 낮추면 그만큼 품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고 건설업체에게도 일정부분 이익을 보장해줘야지 손해를 감수하라고 하는 건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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