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린 난민아기-소녀의 절규' 세상을 바꾼 사진

배성민 부장 2015. 9. 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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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해안서 발견된 시리아의 3살 난민아기-베트남전 네이팜탄에 부상당한 소녀

[머니투데이 배성민 부장] [터키해안서 발견된 시리아의 3살 난민아기-베트남전 네이팜탄에 부상당한 소녀]

한 장의 사진속 세 살배기 아기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차가운 파도 속 모래사장에 얼굴을 묻은 아기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차가운 주검이 된 그를 비로소 안아올린 것은 터키 경찰이었다. 아기는 엄마를 만나게 될 테지만 그것은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일 터다.

어떤 시위나 의견 표출도 한 장 사진의 힘을 누르지 못 했다.

전쟁과 굶주림을 피해 가족과 함께 그리스로 가려던 시리아의 3살짜리 아기 아일란 쿠르디는 빨강색 티셔츠와 군청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운동화까지 신고 있어 그대로 일어나 놀이터로라도 뛰어갈 차림새였다.

하지만 사진 속 아기는 얼굴을 모래에 묻은 채 움직임이 없었다. 터키 경찰은 발견 당시 아기의 주변 상태를 메모한 뒤 그를 안아올렸다. 뒤이은 사진에서였다.

그리고 하루 뒤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전세계를 비탄에 빠뜨린 쿠르디의 이름을 따 개설된 모금펀드에는 하루 만에 1만5000파운드(약 3000만원) 이상이 모였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보도했다. 펀드의 돈은 모이는 대로 시리아에서 구호활동을 해온 영국구호단체 '시리아를 위해 손에 손잡고'를 통해 쿠르디와 같은 처지의 시리아 어린이 난민의 복지와 교육 등에 쓰일 예정이다.

유럽의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난민을 의무적으로 분산 수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난민을 받아들이는데 소극적이라고 비판을 받아온 캐머런 영국 총리도 "아버지로서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아이의 시신 모습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고 말하며 난민정책 변화의 여지를 비쳤다.

쿠르디는 2일 새벽 6시 터키 휴양지 보드럼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IS)의 위협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시리아 북부에서 터키로 탈출해 소형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로 가려했지만, 배가 전복돼 엄마(35), 형 갈립(5)과 함께 숨졌다.

비탄과 공포 때로는 희열을 담은 사진은 강렬한 힘을 갖고 있다. 베트남전의 종전을 사실상 이끌어냈다고 평가받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2년 6월. AP통신의 사진기자는 네이팜탄이 투하된 직후 울면서 길거리로 뛰쳐나오는 벌거벗은 아홉 살 소녀의 사진을 찍어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사진은 당시 전 세계 수많은 매체의 1면에 실렸고 전쟁의 참상을 알려 베트남전 종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수십만 군인들의 희생보다 공포에 휩싸인 사진 속 소녀의 절규가 더 강력했다.

베트남전쟁 당시의 '네이팜탄 소녀' 판티 킴푹씨(보도 당시는 킴으로 불렸다)는 그뒤 CNN과의 인터뷰에서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던 그 끔찍한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해외로 눈을 돌릴 것만도 아니다.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던 1987년 한 장의 사진이 독재권력의 심장에 치명타를 가했다. 사진 속 주인공(당시 연세대생 이한열)은 진압경찰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최루탄 파편이 머리에 박히면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6월9일 이한열이 쓰러지고 사진이 알려진 꼭 20일 뒤에 독재정권의 사실상의 항복 선언을 내놓았다.

배성민 부장 baes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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