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맥] 부르면 꼭 쓰는 슈틸리케, 그냥 가는 대표팀은 가라

임성일 기자 2015. 9. 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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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 News1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대표팀이란 모든 선수들의 꿈과 같은 곳이다. 누구나 대표선수라는 목표를 세우고 어려서부터 공을 차왔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대표팀에 들어가서 오히려 맥이 빠지는 경우들도 발생한다. 발표만 없을 뿐 이미 베스트 멤버로는 어떤 선수들이 나간다는 것이 내부적으로 다 파악이 되니까 의욕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23명 인원을 채우기 위해 들러리가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파주 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난 한 국가대표 선수의 푸념이었다. 감독의 눈을 사로잡지 못한,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의 볼멘소리일 수도 있으나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던 말이다. 내부 경쟁을 통해 건강한 긴장감을 유발시켜야할 대표팀이 명단 발표와 동시에 그냥 주전과 비주전으로 갈린다면 문제가 있다.

외부에서도 "눈 감고도 베스트일레븐을 짤 수 있다", "훈련 때 조끼를 입은 선수가 무조건 선발"이라는 이야기가 돌던 때도 있었다. 물론 월드컵이나 아시안컵 등 큰 대회를 앞두고는 고정적인 멤버가 갖춰져 꾸준히 손발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 메이저대회가 임박했는데도 주전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것도 불안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평가전 때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선발 명단이 꾸려진다면, 팀에 득 될 것 없다. 선수에게도 해다.

한 K리그 클래식 감독은 "대표팀을 다녀오면 껑충 성장하는 선수들이 있다. 하지만 전부 긍정적인 효과만 얻고 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대표팀에 뽑히지 않았을 때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일도 많다"면서 "심리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자신보다 뛰어난 선수들의 기량에 주눅 들어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있고, 뛰지도 못하고 괜히 바람만 들어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왔다가 그냥 가는 대표팀'의 폐해다. 하지만 적어도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에는 그냥 허송세월로 대표팀을 오가는 선수들은 사라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10월10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부터 대한민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슈틸리케 감독은 3일 라오스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까지 총 19경기를 이끌었다. 이 기간 필드를 밟은 선수는 총 46명이다. 다양한 선수들을 실험해야하는 부임 초기라는 것을 감안해도 꽤 많은 수치다. 일단 뽑은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 출전시키고 있다. 평가전은 물론이고 공식 대회에서도 이런 기조는 다르지 않다.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는 엔트리 23명 중 골키퍼 정성룡을 제외한 22명이 필드를 밟았다. 감기로 인한 일부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와 예기치 않은 이청용의 부상 등이 있어 불가피하게 다양한 선수들이 뛸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감안해야겠으나 대회에 임하기 전 "우승을 위해서는 11명이 아닌 23명이 모두 잘해야한다"는 소신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지난 8월 중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도 슈틸리케 감독은 3경기에 19명을 가동했다. 골키퍼가 김승규로 고정됐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필드 플레이어는 거의 다 활용했다는 뜻이다. 평가전에서도 철학은 다르지 않았다. 불렀으면 어떤 형태로든 실전에 뛰게 해 테스트했다. 덕분에 이재성, 김승대, 이종호, 임창우, 권창훈, 이주용, 권순태, 황의조 등 많은 선수들이 A매치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3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라오스전에서 마지막 쐐기골을 성공시킨 이재성이 권창훈과 환호를 하고 있다. 2015.9.3/뉴스1 / (화성=뉴스1) 박세연 기자 © News1

그저 어린 선수들을 관리하라고 부른 베테랑이 아님을 이동국과 염기훈의 예에서 볼 수 있다. 부상자가 발생해 대체선수로 발탁됐던 정동호나 주세종도 슈틸리케호의 일원으로 A매치를 뛰었다. 오로지 실력이 기준되는 정정당당한 판이 깔렸다.

왔다가 그냥 가는 대표팀에서 꼭 뛰고 가는 대표팀이 되면서 선수들 기량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성장이 눈에 보이는 선수들도 늘었다. 올 3월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재성은 어느덧 호화 군단 전북에서도 에이스급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해, 아니 불과 몇 달 전만해도 K리그 팬들 사이에서나 회자됐던 권창훈은 일약 샛별로 발돋움했다. 라오스전에서 손흥민, 기성용, 이청용 등 유럽파와 함께 어우러지던 권창훈의 모습은 흐뭇했다. 그리고, 무명에서 신데렐라로 떠오른 이정협을 빼놓을 수 없다.

해외에서 뛴다고 무조건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2부리그에서 뛴다고 아예 후보에서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일단 선택을 받으면 그래서 내부 경쟁을 이겨내면 누구든 A매치에 나설 수 있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제공되면서 슈틸리케호는 더더욱 들어가고 싶은 곳이 되고 있다. 배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슈틸리케호 출범 후 선수별 A매치 출전시간(19경기/46명)
GK(4명) : 김진현(826분), 김승규(764분), 정성룡(90분), 권순태(90분)
DF(15명) : 김영권(1141분), 장현수(952분), 박주호(856분), 곽태휘(826분), 김진수(708분), 차두리(597분), 김창수(498분), 김주영(439분), 홍철(275분), 홍정호(224분), 임창우(176분), 김기희(180분), 이주용(154분), 이용(94분), 정동호(94분)
MF(18명) : 손흥민(1,147분), 기성용(1,098분), 한국영(798분), 남태희(782분), 이재성(490분), 이청용(449분), 구자철(400분), 정우영(385분), 김민우(379분), 한교원(319분), 권창훈(270분), 김승대(180분), 이종호(155분), 염기훈(130분), 이명주(103분), 김보경(97분), 주세종(64분), 박종우(10분)
FW(9명) : 이정협(727분), 이근호(510분), 조영철(300분), 이용재(174분), 이동국(120분), 김신욱(98분), 지동원(72분), 석현준(62분), 황의조(28분)

lastun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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