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0% 반납해 신규 채용" 회장님들 개운찮은 발표

송옥진 2015. 9. 4.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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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 신한, 하나 3대 금융그룹 '회장님'들이 3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연봉의 30%를 반납하겠다"고 깜짝 공동발표를 했습니다. 각 금융그룹 산하 계열사 임원들의 구체적인 동참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직급에 따라 대략 10%~25% 삭감을 검토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런 반납재원은 계열사 인턴, 신입사원, 경력직 사원 등 모두 신규 채용에 쓰인다고 합니다. 금융권에서 회장 등 경영진이 경영난 등을 이유로 임금을 자진 반납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3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공동발표 형식으로, 그것도 신규 채용을 위해 임금 삭감을 거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한다는 점에선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 분명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3개사 회장을 포함한 계열사 임원진의 연간 연봉 반납분이 70억원 수준이고 이로 연간 300명의 신규 채용이 가능하다"며 "전례를 보면 이런 임금 삭감은 최소 3~4년 이어지기 때문에 앞으로 3개사에서 1,000명에 달하는 추가 신규 채용 자리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신한금융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약 3년 간 회장 임금의 30%, 전 계열사 사장급은 20%, 부행장은 10%의 임금을 삭감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깜짝 발표'의 배경인데요. 이번 결정은 전날인 2일 윤종규 KB금융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모인 조찬 자리에서 논의돼 다음날 오후1시 일제히 홍보실을 통해 뿌려졌습니다. 하지만 3개사 모두 약속이라고 한 듯 "어제 조찬에서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 외에는 말씀드릴 수 없다"고 배경에 대해 입을 다물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데다, 이례적인 형식에 당연히 금융당국과의 '교감'이 있었을 거라는 추측들이 나옵니다. 금융당국 인사들 역시 한결같이 "발표 전까지 전혀 몰랐다"고 하지만, 자율적인 결정이라고 보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결정은 임금피크제 도입, 채용 발표 등 정부 기조에 부합하기 위한 최근 행보들과 맥을 같이하는데요.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있었든, 아니면 금융그룹 회장들이 알아서 눈치보기를 한 것이든 모양새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금융사별로 자율적으로 진행해도 충분한 일을 굳이 3사가 모여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만 봐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더구나 금융권의 자율을 강조하고 있는 최근 금융당국의 기조에도 역행하는 것이니까요. 이들 3개사 내부에서도 "당황스럽다"는 반응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돈을 갹출해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이 임시처방은 될 수 있겠지만,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됩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관련 학과 교수로서 졸업생을 취직시켜 준다고 하면 두 손 들고 환영해야 하지만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일자리 문제는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 부를 창출하는 구조로 풀어야지 몇 사람이 돈을 모아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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