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길 춥지않게" 그 한마디에..

2015. 9. 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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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9월의 주제는 '허례허식']<169>체면치레 장례 부추기는 말
[동아일보]
직장인 장승모(가명·47) 씨는 올해 7월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5년 가까이 암 투병 생활을 한 아버지였다. 올해 들어 아버지의 상태는 급격히 안 좋아졌고 5월경 임종이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아버지 병문안차 병원에 들른 장 씨의 고모부는 장 씨를 조용히 불러 수의와 관은 좋은 걸로 준비했는지 물었다. 회사를 통해 가입한 상조 서비스를 이용할 계획이었던 장 씨는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내면 모를까, 장 씨가 나서서 상의를 드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모부는 “괜히 싸구려 수의 입혀서 보내면 저승 가는 길 춥다”며 압박을 줬다. 장 씨는 “아버지가 값비싼 수의와 관을 원하실지, 오히려 쓸데없는 데 돈 쓴다고 역정을 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께 여쭤볼 수가 없고 친척 어른들 눈치도 보여서 결국 그냥 비싼 걸로 했다”고 말했다. 장 씨 아버지의 장례는 매장이 아닌 화장이었지만 별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장 씨처럼 부모의 임종을 앞두고 또는 임종 후 장례 절차에 돌입했을 때 지인들, 특히 나이 많은 친척들로부터 “고인 섭섭하지 않게 잘 보내 드려라”라는 말을 들어봤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섭섭하지 않게’는 곧 ‘남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와 같은 말이다. 고급 용품을 사용하고, 화려한 장식을 하라는 압박이기도 하다. 관습적으로 내뱉는 그런 말들은 결국 장례에서의 관습적인 허례허식으로 이어진다.

직장인 최순인(가명·52) 씨는 5월 치른 아버지 장례식을 생각할 때마다 씁쓸함을 느낀다. 임종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친척 어른들은 조문을 위한 꽃 제단의 크기부터 관을 장지로 싣고 갈 차량까지 비싸고 큰 것을 하라고 압박했다. 최 씨는 “조금이라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면 ‘효심이 부족하다’는 뒷말이 들리는 듯했다”고 말했다. 또 “정작 아버지는 생전에 ‘장례식에 많은 돈 쓰지 마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만 다른 친척들은 장례식에 쓰는 돈의 액수를 효의 척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장례식 때 쓰는 용품은 이왕이면 비싼 게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그게 예의라고 예전부터 들어왔다’는 응답이 많았다. 우리도 모르는 새 허례허식이 머릿속에 박힌 것이다. 물론 ‘효도는 살아생전에 해야 하고 장례는 검소하게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 문제는 그런 생각을 쭉 유지하며 남들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이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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