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계약 바라며 1년의 절반 야근했는데..e메일 해고 통보"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행정 비정규직 ㄱ씨(29)는 지난 6월29일 퇴근시간 무렵 행정실장으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근로계약기간이 8월31일자로 만료된다. 어렵게 내린 결정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일 서울대 구내 카페에서 만난 ㄱ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ㄱ씨가 지난 8월31일자로 계약이 만료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ㄱ씨는 2013년 8월 ‘서울대 교직원으로 가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서울대 국제대학원 계약직 채용에 응시했다.
면접관은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다가 무기계약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했다.ㄱ씨는 정규직의 꿈을 안고 열심히 일했다.
연구비 관리 업무 외에 개발도상국 공무원 연수사업, 자유무역협정(FTA) 석사과정 행정운영 등 굵직한 행정업무가 맡겨졌지만 힘들다는 내색도 하지 않았다. 1년의 절반은 오후 10시까지 사무실에 혼자 남아 일했다.
지난해 말 새로 부임한 행정실장에게 ‘업무가 많다’고 하소연하자 “선생님, 그러면 무기계약직 되기 힘들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ㄱ씨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주려는가 보다’ 생각하며 힘들어도 견뎠다.
올해 초 실장은 ㄱ씨에게 “인사위원회를 열어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6월29일 계약만료 통보 메일을 보내왔다.
원장에게 섭섭함을 표하자 원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하면 제일 다치는 건 본인”이라고 했다. 교수들과 실장은 ㄱ씨를 ‘나갈 사람’으로 보고 “8월 말까지 업무처리를 모두 끝내 놓으라”고 했다.
지난달 31일은 ㄱ씨의 마지막 출근일이었다. 오후 6시, 업무를 마친 ㄱ씨는 1년10개월간 사용한 책상을 정리하고 컴퓨터 비밀번호를 재설정했다.
처음 출근할 때 가져온 연필꽂이, 미니 선풍기, 텀블러 등을 상자에 담아 들고 나왔다. 친했던 직원들과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우울하고, 허무했다. ‘그동안 열심히 할 필요 없었네’, ‘이럴 줄 알았으면 초과근무 수당이나 제대로 청구할 걸’ 같은 생각이 들어 씁쓸하게 웃었다.
ㄱ씨는 얼마 전 서울대 총학생회와 함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ㄱ씨는 “가슴 졸이며 살아가는 다른 분들을 위해서도 제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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