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하나님의 뜻".. 대성에너지의 황당 면접

조정훈 입력 2015. 9. 3. 22:04 수정 2015. 9. 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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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들 "임원면접 보면 합격이라더니, 전원탈락".. 사측 "유가 상승으로 채용 포기"

[오마이뉴스 조정훈 기자]

 대성에너지.
ⓒ 조정훈
한 중견그룹이 신규채용을 한다며 공고를 내고 서류전형을 거쳐 최종 면접까지 진행하고선 단 한 명도 뽑지 않아 취업준비생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 회사는 탈락자들에게 '한정된 채용으로 불합격했다'는 거짓 문자를 발송하기도 했다.

대성그룹 계열사인 대성에너지(주)는 지난 4월 신입사원 공채를 내고 5월 10일까지 접수를 받았다. 대성에너지는 공고문에 1차 서류전형과 2차 실무면접, 3차 임원면접을 통해 신입사원을 공개채용 할 계획임을 밝혔는데, 모두 118명이 지원했다.

당시 대성에너지는 10명 내외의 신입사원을 채용할 계획으로 1차 서류전형을 통해 5월 15일과 5월 28일 2차 실무면접과 3차 임원면접을 실시했다. 하지만 대성에너지는 갑작스럽게 채용안내문에 공지하지 않았던 '최종면접'(6월 26일)을 추가했다. 이 최종면접은 영어 프리젠테이션으로 진행됐는데, 이 자리엔 김영훈(63) 대성그룹 회장이 참석했다.

예정에 없던 4차 회장 면접 추가... 종교 편향 드러내기도

 대성에너지가 지난 4월 발표한 채용공고문.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신입사원을 공개채용한다고 밝혔지만 최종면접까지 끝내고도 단 한 명도 뽑지 않아 거짓 채용 논란이 일고 있다.
ⓒ 조정훈
당시 최종면접에 참가한 A씨는 "3차 면접을 보고난 후 인사담당자가 '회장님이 해외출장 중이라 발표가 좀 늦어진다'고 했다"라면서 "하지만 2주 후 예정에도 없던 최종 면접(4차)을 실시한다는 메일이 왔다"라고 설명했다.

A씨는 면접 도중 황당한 상황도 있었다고 전했다. 대구의 대성에너지 본사에서 2차 면접에 통과한 19명은 대성에너지 지주사인 대성홀딩스 본사(서울)에서 치러진 3차 면접에 응시했다. 3차 면접 도중 회장의 작은누나인 김정주 대성홀딩스 대표가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모든 뜻은 다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말을 영어로 말해 종교적 편향성을 드러냈다는 전언이다. 여기에 예정에도 없던 대성 창업주(고 김수근 명예회장)와 창업주 부인의 회고록을 읽고 감상문까지 쓰게 했다.

A씨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지만 지원자 입장이고 취업준비생 입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꼼꼼히 읽고 감상문을 제출했다"라면서 "이게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정에도 없는 4차 면접이 실시된다고 들었다, 4차 면접에 가니 갑자기 영어로 프리젠테이션을 발표하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대성에너지 인사담당자는 1주일 이내에 결과가 발표가 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도 결과 발표는 나지 않았다. A씨는 "인사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채용이 취소되거나 인원이 채용 인원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담당자는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A씨는 '3차 면접에 합격하면 최종 합격한 거다, 회장의 최종 결재만 받으면 출근할 수 있다'는 인사담당자의 말에 자신이 인턴으로 근무하던 회사까지 그만뒀지만, 결국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취업준비생들 '부글부글'

 대성에너지가 지난 7월 15일 최종 면접을 본 입사지원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메시지는 한정된 채용으로 불합격했다고 밝혔지만 단 한 명도 뽑지 않아 결국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 조정훈
대성에너지는 최종면접을 본 19명에게 7월 15일부터 문자를 보내 "최종면접 결과 귀하의 뛰어난 자질과 역량에도 불구하고 당사의 한정된 채용규모로 인하여 아쉽게도 선발되지 못하였음을 알려드린다"라고 통보했다.

문자를 받은 최종면접 합격자들은 자신만 합격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취업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전원이 합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부 응시자가 대성에너지에 전화를 걸어 사실을 확인하자 "분명히 채용을 했고 처음보다 적은 수의 신입사원을 뽑게 됐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에너지는 결국 불합격 통지를 하면서도 거짓으로 문자를 보내 취업준비생들을 두 번 울린 셈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취업준비생들의 커뮤니티에는 대성에너지를 비판하는 댓글이 쇄도했다. 취업준비생들의 커뮤니티인 '독취사'(독하게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 지난 7월 16일 '대성에너지 갑질, 지원자 전원 탈락'이라는 글이 게시되자 취업준비생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대성에너지에 지원한 취업준비생 '재시**'는 "우리 전도하려고 부르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수많은 회사를 탈락했지만 이번 만큼 기분 나쁜 적은 처음이다"라고 항의했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gow*****'도 "체계도 없고 소통도 느리고 갑질하고 예정에도 없던 면접전형 계속 끼워넣고…"라면서 "다 말하기에는 입이 아플 지경이다, 덕분에 별 희한한 경험을 했다"라고 꼬집었다.

 대구청년유니온은 3일 대성에너지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취업 갑질을 규탄했다.
ⓒ 조정훈
이에 대구청년유니온과 대구알바노조는 3일 대성에너지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성에너지를 규탄했다. 이들은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은 경영권의 영역이지만 구직자 입장에서는 채용되지 않더라도 그 이유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라면서 "대성에너지는 전원 탈락의 이유가 회사의 기준에 부합하는 지원자가 없어서인지, 경영 상황 때문에 부득이하게 채용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는지 공식적으로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어 "대성에너지는 지원자들에 대한 배려도, 공정함도 없는 면접과정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라면서 "대성에너지에 '희망고문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희망고문상에는 "채용 과정에서 하루 전 갑작스럽게 추가 면접을 통보해 지원자들의 순발력을 향상시킨 점, 종교적 색채가 가득한 회장님 자서전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게 해 지원자들의 신앙심을 키워준 점, 3개월 동안 면접을 지원했지만 결국 한 사람도 채용하지 않아 지원자들의 인내심을 키워준 점을 높이 평가해 이 상을 수여한다"고 적어놨다.

청년유니온은 이 상을 대성에너지에 전달하려고 했지만 대성에너지 측은 받을 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대성에너지 "유가 상승으로 채용 포기, 양해 구했어야 했는데..."

 대구청년유니온은 3일 오전 대성에너지 본사 앞에서 취업갑질에 대해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희망고문상'을 수여했다.
ⓒ 조정훈
대신 대성에너지 측은 당초 10여 명 내외를 뽑으려 했지만 유가 하락으로 채용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대성에너지 관계자는 "회사가 결원이 생길 경우 보충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올해 최대 10여 명 정도 뽑으려고 계획했다"라면서도 "국제 유가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채용하게 되면, 인건비가 상승해 가스요금이 오르는 등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 (채용을) 포기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가 채용을 최종적으로 포기하게 된 것은 6월 말에서 7월 초"라면서 "지금 생각하면 지원자들에게 설명하고 충분한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안타깝고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취업을 준비했던 청년들은 '뽑지 않겠다고 결정하고도 왜 추가로 6월 말에 최종면접을 더 보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전혀 뽑지도 않았으면서 최소 인원을 뽑은 것처럼 문자로 거짓말을 한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성에너지는 지난 1983년 대구도시가스(주)로 설립됐다가 2011년 현재 명칭으로 사명을 바꿨다. 한국가스공사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아 대구와 경북 경산시, 고령군 등 약 100만 가구에 가스를 공급해 연간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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